수정 도시 서부 - 중앙 관제탑
  탑 주변에 이르자마자 좌우에서부터 끊임없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유리로 이루어진 병기들. 비행기 위에 길다란 포신이 장착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남색을 띠며 빛을 발하는 그 병기들이 3 기씩 좌우에서부터 포위를 해 오면서 나는 이들의 각 포신이 장착된 부분을 공격 목표로 정한 이후에 레반테아로 하여금, 파랗게 빛을 발하는 나뭇가지를 그리도록 하고, 이어서 그 나뭇가지가 하나씩 포대를 스치듯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면서 포신에서부터 그려지는 남색 빛으로 이루어진 줄기의 망, 그 틈으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1 기씩 좌측의 비행체들부터 하나씩 격추되어 사라지면서 이들이 가하는 위협도 서서히 정리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먼 저편에서부터 새의 모양새를 이루는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 이어 입에 해당되는 각 부분에서부터 초록빛 불덩어리를 발사해 나에게 다가오도록 하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에르시아가 앉아있다는 곳, 그 곳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파악을 하지는 못하고 있기는 했지만 계속 병기들이 몰려오며 위협을 가하는 것을 보면 수정으로 이루어진 병기들에게 있어서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곳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정체 불명의 병기들이 수정 도시의 탑을 근거지로 삼으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또 그들이 근거지로 삼았다고 해서 탑을 공격할 수는 없었기에 병기들을 그저 격퇴하기를 반복하며 에르시아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 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기회는 오게 마련이라서 한창 구형을 이루며 중심에 빛으로 이루어진 가지들이 계속 그려지는 모습을 보이는 병기들이 날개를 윗 부분에 달며 다가오는 것을 레반테아에서부터 발사되는 하얗게 빛을 발하는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작살들로 격추시켜 나아갈 무렵, 전방이 텅 비는 모습이 나의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하여, 비로소 탑의 꼭대기에 머무르는 에르시아에게 접근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지금이야, 이제 에르시아를 향해 다가갈 수 있어!'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급속도로 그를 향해 접근해 가기 시작,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뒤쪽에서부터 비행형 병기들의 하늘색 빛을 발하는 선들에 의한 공세가 펼쳐지면서 이들을 계속 피해 가는 과정도 거쳐야만 했다. 그러면서 바닥에 닿는 빛으로 이루어진 선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를 지켜보려 하였는데, 수정에 닿은 빛 줄기들은 잠시 부딪치는 모습을 보였다가 소멸하기만 할 뿐, 수정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표면에 금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즉, 이들은 수정 도시의 표면에 전혀 피해를 가하지 않는 이들이었던 것.
  그런 빛 줄기에 의한 공세를 겨우 피해내며 탑의 정상에 이르는 순간, 병기들이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는지-탑에 무언가 있는 듯해 보였다- 병기들의 공세가 갑자기 중단되었고, 그래서 탑의 정상, 그 바닥에 발을 딛고 날개를 잠시 접을 때가 된 이후로 에르시아의 곁으로 안전하게 이를 수 있었다.
  탑의 꼭대기에 위치한 기둥형 구조물의 우측 부분에 기대어 앉은 모습을 보이는 에르시아. 그런 그의 모습을 발견할 무렵, 나는 에르시아가 고개를 하늘을 향해 젖힌 채로 왼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있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굽히고 왼쪽 다리를 뻗고 있으면서 멍하니 앉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법 많이 다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나의 예상보다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에르시아, 괜찮니!?" 마녀의 탑에서 한창 대결을 펼친 이래로 사정으로 인해 헤어져 있다가 며칠 즈음 지났을 무렵에 다시 만난 에르시아. 다행스럽게도 치유의 술법을 통해 상처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기는 했는지, 나름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안심할 수는 있었다.
  "응, 처음에는 죽을 것 같았는데, 조금씩 치유되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괜찮아졌어."
  그러자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다소 기운 없는 목소리를 내면서 화답을 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치명상에 가까운 피해를 입기는 한 모양이었다-에르시아는 자신이 다친 수준을 말할 때, 실제보다 낮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그의 바로 앞에 두 무릎을 바닥에 대며 깊이 앉은 다음에 그에게 시선을 향하며 물었다.
  "얼마나 어떻게 다쳤는데, 이전에?"
  "가슴이 관통되었어, 그것도 심장 부근에. 그래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그러다가 치유의 술법이 제대로 발동이 되어 무사할 수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기에 그 시간 동안 유네아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서 너를 부르려 했던 거야."
  그리고서 생각 외로 상처 치유의 진전이 잘 되어 나의 도움은 필요치 않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후유 증세가 남아있기 때문에 나와 함께 전선에 나서는 것은 당장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자신에 대한 언급을 하고서, 그런 연유로 탑 꼭대기에 계속 머무르며 쉬고 있으려 한다는 자신의 뜻을 이어서 밝혔다. 이에 나는 "그렇구나." 라고 화답을 한 다음에 그의 증세에 관해 조금 더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추가로 물음을 하나 더 건네려 하였다.
  "움직이기만 해도 가슴이 뭔가에 찔리듯이 아프고 그래?"
  그러자 말을 대신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답을 하는 에르시아. 그러면서 회복이 완료되고 나면 바로 나에게 갈 것이니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탑에 대해 수정 병기들이 그 곳을 중요 시설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을 한 그 이후에 탑을 비롯한 수정 도시의 중요 시설에 있을 때에는 그러한 이유로 인해 공격을 받지 않게 된다고 이전에 나에게 보였던 병기들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래서 위험해졌을 때에는 이렇게 중요 시설처럼 보이는 곳에 머무르면 안전해, 물론 그 위에 오르는 병사들 같은 이들이 있으면 그래도 위험하겠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야."
  라고 위험해졌을 때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에 관한 설명을 하고서, 그에 이어 높거나 모양새에 여타 건물과 차별되는 점이 분명한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으리라는 언급을 한 다음에 고대에는 중요 시설의 모습을 특별히 꾸미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그에 관한 근거를 이어서 드러내었다.
  "알았어, 혹시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 말대로 행동하도록 할게."
  이후, 나는 그 말에 그렇게 화답을 하고서 그에게 다친 모습이라고 해도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갑다는 뜻을 드러내려 하였고, 이에 에르시아도 그 감정을 감추지는 못했는지 조용히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서 그는 나에게 곁에 앉아달라고 부탁의 말을 건넨 다음에,
  "이 곳에서 잠시 쉴 겸, 머무르는 것은 어때? 너도 갑자기 몰려오는 공격에 당황했는데, 전투를 강행하면 바로 피곤해질지도 몰라."
  라고 자신의 곁에 앉아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하는데, 그 권유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가 언급한 만큼 많이 지치지는 않았다지만 언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던 데다가 간만에 에르시아를 다시 만났다가 다시 헤어질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어디에 있었던 거야?"
  에르시아의 우측 곁에 앉으면서 두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모으는 자세를 취하는 채로 머무르고 있는 동안 그에게 하나의 물음을 건네자, 그 대답으로써 간단히 자신이 들렀던 곳에 관한 소개를 하니, 들렀던 성계의 숫자는 내가 들렀던 성계의 수와 같아 2 곳에 머무르고 있었다고 한다.
  에르시아가 들렀던 성계 중 처음으로 들른 곳은 황폐한 대지와 유적 위로 수레 혹은 차량들이 마치 맹수들의 무리마냥 맹진하기를 반복하는 곳으로서, 그 모습을 보면서 마녀 시대에서부터 알려진 성계 중 하나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마녀 시대부터 알려진 성계들이 있어서 그 다섯 성계들을 지칭해 '5 대 외계 성계' 라 칭하는 경우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5 대 성계는 7 색의 부족들이 살고 있는 에르세키아(Ersecia), 평면도형과 입체도형의 세계로서 감정이 허용되지 않는 가마로데(Gamarode), 영혼들로 이루어진 물체들과 아즈리아(Azria) 라 칭해지는 두 명의 정령들이 살아가고 있는 아피세아(Afisea), 차량들이 지배하는 성계인 크란리드(Cranrid) 그리고 마법사들의 성계로서 마녀들의 선조, 그 출신지로 알려진 베라티사(Beratisa) 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 중에서 에르시아는 크란리드라 칭해진 5 대 성계 중 하나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5 대 성계 중에서도 크란리드는 유별난 존재였다, 에르세키아, 가마로데, 아피세아 그리고 베라티사는 모습이야 어찌하였든 간에 인격체와 닮은 이들이 살아가고 있었음에 반해, 크란리드는 그야말로 차량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형태를 이루는 성계였기 때문이었다. 차량이 주인이 되고, 인격체들은 그들의 노예가 되어 그들이 가하는 생사여탈권에 떨어야 하는 곳이었기에 5 대 성계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성계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에르시아가 한 동안 이르렀다하니 나는 그저 놀라면서 그런 그에게 물음을 건네고 있었다.
  "에르시아, 그런 곳에 정말로 있었던 거야, 그러면서 다친 곳은 없었니!?"
  크란리드의 특성 상, 인격체가 차에 치이는 일이 결코 이상할 리는 없었기 때문에 혹시 그와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이 아니 나올 수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는 화답이 그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차량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지하 같은 곳에 사람이 살기도 하더라, 지하에는 차량들이 돌아다니기 어려우니까 그런 곳에 숨어 지내는 것 같아."
  그리고 신체의 일부를 기계화한 사람들이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음을 밝히는 에르시아. 그러면서 그들도 처음에는 지상의 차량이 닿지 않는 섬 등지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비행기에 의한 차량 수송 등이 이루어지고 비행기에 의한 폭격이 일상화되면서 결국 해저나 지하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으며, 해저 시설들마저 잠수정과 잠수함 무리에 의해 파괴되어 거주민 전체가 몰살되면서 사람들의 거주 구역은 이들의 영향이 닿기 힘든 지하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고 사람들의 지하 거주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풀어놓고 있었다.
  크란리드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학교를 통해 5 대 성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마 에르시아를 비롯한 소로에나에 살고 있는 소녀들이라면 성계에 관한 이야기 정도는 낮은 수준으로나마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크란리드가 기계들의 소굴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을 수 없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마녀들의 고향이라 알려진 베라티사나 색깔들의 나라인 에르세키아, 도형들의 나라인 가마로데 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에르시아는 경위는 어떠한지는 몰라도 크란리드에 관해 어느 수준 이상으로 잘 알고 있어서 그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에 그로부터 나 역시 크란리드라는 성계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관해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다른 5 대 성계와 마찬가지로 크란리드 역시 본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성계였다고 한다. 이는 에르세키아나 가마로데 등의 다른 네 성계의 경우에도 해당되며, 이들 모두 인류가 실수를 일으키고, 그로 인해 파멸하였다는 공통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파멸되는 경위는 5 대 성계가 각자 다르며, 이 중 가마로데와 크란리드는 문명과 연관되어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가마로데의 파멸이 문명의 간접적인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면 크란리드의 파멸은 문명의 직접적인 영향, 그것도 문명의 산물에 의한 것이었다. 그 주요한 원인은 현재 크란리드의 주역이라 칭할 수 있는 존재로서 문명의 산물 중 하나인 '차량' 혹은 '수레'. 기계로 이루어진 짐승이라는 별칭으로 칭해지기도 한다는 그 존재가 크란리드의 옛 문명이 사라지도록 한 원흉이었다고 한다.
  크란리드에서는 유난히 수레의 운용이 많았다고 한다, 해수면 이하인 곳이 행성의 25%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광활한 대지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는 크란리드에서는 대규모의 도시들이 넓은 간격을 이루며 건설되어 있었으며 그 사이로 여러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대규모 도시 간의 간격은 최소만 하더라도 50000 메타르 정도는 되었기에 수레의 운용은 필수였는데,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단으로써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수레를 운용하는 경향을 보였기에 수레가 많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성은 이 모든 수요를 바로 감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야 지대 못지 않게 산악 지역 역시 거대하였고, 산악 지역과 바다에 무한에 가까울 정도의 많은 자원이 산출되어 그 자원을 기반으로 대량의 수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요인.
  그런데 수레에 의존하는 경향과 수레가 우선시 되는 교통 규범은 세상에 큰 물의를 일으켰고, 사람이 먼저 나고 수레가 그 다음에 났다는 사상도 나타났지만 세상 사람들이 잘 이해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보다 자신들에게 유용할 수 있도록-자신들의 운전이 편해질 수 있도록- 수레에 인공 지능을 장착하였고, 그 인공 지능을 기반으로 수레들이 자신들이 번거롭게 운전하지 않을 때에도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는 기능을 수레에 마련하기 시작, 그 경향이 곧 크란리드 전역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공 지능 기술의 발달과 그에 의한 차량의 발전이 인류에게 재앙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점차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되면서 힘도 미약한 주제에 인간이 자신들을 지배하려 한다는 생각에 불만을 서서히 품기 시작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들을 학살하면서 자신들이 성계의 주 무대가 되었나 봐, 그렇지?"
  "그렇지, 여태껏 그들은 높은 지능을 가지지 못했고,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인공 지능을 가지게 된 이후에도 그저 인간들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사고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반항적인 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인간들이 자신들보다 미약하면서 지능도 결코 뒤지지 않는 존재로서, 길을 갈 때를 비롯한 여러면에서 자신들이 우선함을 자각한 이래로 반란을 일으키고 자신들이 인간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지."
  그렇게 내가 건네는 물음에 답을 한 이후에 그에 이어 반란이 일어나는 동안 수많은 인간들이 차량에 치이고, 짓밟혔으며, 그들이 부리는 수하 인형에 의해 여러 차량에 묶인 채, 이들이 각자 산개하면서 갈기갈기 찢겨지는 인간들도 곳곳에 있었으며, 그런 폭거 이후에는 그 광활한 대지가 인간들이 흘린 피에 물들여져 곳곳이 붉게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음을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그 이후, 수레 혹은 차량들은 인간들을 밀어내고 자신들이 문명의 주역으로서 활동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지능이 완전히 발달하지 못한 차량들은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자각을 전혀 하지 못했으며, 어떻게 미래를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사고도 할 수 없었어, 그런 사고 기능은 전혀 구현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렇게 차량과 인간의 차이가 나타나게 된 거네?"
  "응, 그런 이유로 인해 차량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 그저 자신들이 하던 대로 고속 질주와 파괴를 반복해 갔지, 그러면서 인류가 건설했던 문명은 철저히 파괴되고 자연 환경 역시 비참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준으로 황폐해지고 말았어. 그와 더불어 차량들은 거대하고 강한 순으로 약육강식의 서열을 만들었지. 사회를 이끌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구상을 전혀 하지 못해, 그저 동물적인 원리에 의한 사회 구성만이 차량들에게 가능했던 거야."
  대화에서 나타난 에르시아의 이야기에 따르면, 크란리드의 '차량' 들은 자신들이 독립된 존재로서 인간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자각하고는 있었지만 인간들이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었을 '미덕' 인 '미래에 대한 구상' 과 '사회성' 을 전혀 갖추지 못했고, 그러면서 마치 짐승들처럼 약육강식의 체계를 이루며, 그들의 본능대로 달리고 부수는 삶만을 거듭하며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이들이 기존 사회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도적의 무리마냥 약탈과 파괴에 연연하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할까.
  "결국 이들은 세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만 것이었지, 그들이 의도하는 바와 달리."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에르시아의 이야기 역시 이어지며, 새로운 시대는 어떻게든 옛 시대보다 좋아지는 면모를 갖추게 마련이지만 그 예외도 있음을 밝히고서 크란리드가 그 대표적 사례임을 알렸다. 물론 긍정적 발전의 사례도 있긴 있었다, 기술의 발전이 극한으로 이루어진 끝에 생명체에게만 허용되어 있다는 자식의 생산이 기계에게도 가능해졌다는 등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정도.
  그러다가 화제가 변경되어 세니티아와 5 대 성계 그리고 여태껏 알려진 외 성계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이들의 공통점이 발견되기 시작했음을 알렸고, 그러면서 하나의 언급을 하기 시작하였다. 알려진 성계들을 비롯하여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성계에 이르기까지 성계들의 고대 문명이 한결 같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5 대 성계의 문명은 고대 문명이 사라진 이후에 고대 문명이 남긴 일부의 흔적들을 토대로 건설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였으나, 세니티아와 5 대 성계가 같은 문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소한 사실을 바로 믿기는 어려웠다, 같은 문명을 이룩하였음은 곧 5 대 성계가 서로 교류하고 있었고, 그 교류 수준이 활발했음을 의미하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과연 에르시아 역시 그 가설이 옳다고 바로 확신은 할 수 없었는지 자신감 없는 목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야, 유네아."
  "역시, 확신은 못 하는구나." 이에 나는 조용히 웃으며 그렇게 화답을 할 뿐, 달리 말을 잇지는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를 마치고, 이번에는 아세라이아에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에르시아. 그러면서 처음에는 여름 활동을 어린 정령들과 함께 나아가던 도중에 어린 정령들이 어떤 숲길을 유령이 머무르는 곳이라 하여 들어가지 못한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었다.
  "숲의 한 곳에 하나의 유령이 머무르는 곳이 있다고 했더라고, 어떤 아이에게는 묘령의 여성이, 어떤 아이에게는 거대한 늑대 인간의 모습이, 어떤 아이에게는 음식의 모습이, 그리고 또 어떤 아이에게는 회오리바람의 모습이 보였다는 거야. 그러니까 하나의 유령이 보는 사람에게 각자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겠지."
  "보는 사람마다 유령의 모습이 달리 본 것은 아닐까."
  그 때, 그 이야기를 듣고서 내가 그렇게 물음을 건네자, 에르시아는 '역시 그렇게 칭하는 편이 옳겠다' 라는 화답을 한 이후에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어린 아이들이 일제히 자신의 곁으로 도망쳐 왔음을 밝힌 다음에 이들을 달래느라 크게 혼났다는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하나의 일에 관한 아쉬움의 감정을 드러내려 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나의 부재에 관한 언급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유네아가 없음에 대해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몰라, 유네아가 있었다면 이들을 달래는 일 정도는 금방금방 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나에 대해 밝게 목소리를 내려 하면서 말을 건네었다.
  "유네아가 어린 아이를 다루는 재능은 나보다 크잖아, 그런데 하필이면 아이들을 달래는 일이 필요했던 그 때에, 네가 없었던 거야, 지금은 이렇게 아쉬워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그 때 당시만 하더라도 네가 없음에 대해 너를 정말로 이렇게 많이 원망했어, '그 때 예즈라 양 등을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함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냐' 고 말야."
  이후, 그는 나에게 바르코스가 너무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는 언급을 한 다음에 그런 것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서라면 자신이 근원까지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유네아의 성정을 건드린 것이 유네아가 길을 나선 하나의 큰 요인이 되었을 것 같다는 언급을 한 다음에,
  "또 나중에 이리샤 님께 이야기를 들어서 알게 되었어, 크세비아 그리고 도로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너를 정말 의지하고 있었다고. 너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은 모를까, 너라면 무사히 자신들의 고향으로 자신들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
  라고 말한 다음에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야스모르라는 이름을 가지는 행성으로 가는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리고 납득을 하지 못하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 답으로써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을 하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소로에나의 여타 친구들도 하지 못한 외지인으로부터 전적인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지키는 자의 역할을 수행한 이가 바로 너잖아, 그런 일이 알려지면 너는 분명 대단한 사람이라 칭해질 거야, 틀림 없이."
  그 무렵, 3 기의 인간형을 이루며 등에 삼각 날개를 하나씩 장착한 파랗게 빛나는 유리로 이루어진 병기들이 두 손으로 든 총을 앞세운 채, 탑의 정상 부근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 왠지 탑의 정상에 고도를 맞추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였으나,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탑의 정상에 위치한 두 사람을 향해 총에서부터 파랗게 빛을 발하는 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벽 근처를 지나갔기에 벽에 바싹 붙어있던 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에르시아는 날개를 펼치고 위로 날아오르며 위험에서 벗어났다. 이후, 에르시아는 여전히 가슴 쪽이 아픈지 오른손을 가슴에 올린 채, 왼손으로 자신의 소정령인 '보라카스' 를 소환, 그에 이어 파랗게 빛을 발하는 덩굴 줄기에 감싸인 하얀 구체를 만들어 그 구체들이 인형 병기를 향해 날아가도록 하면서 이들을 쫓아내려 하였다.
  하지만 수차례 충격을 받고도 경미한 피해를 입은 정도로 그쳤는지 공중에 떠 있는 에르시아를 향한 공격 준비를 시작하는 병기들. 그것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칫하다가는 에르시아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며 날개를 펼치고 바로 급히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에르시아, 물러나 있어!"
  일단 아직 위험한 상태인 에르시아에게 물러가라고 외친 다음에 소정령 레반테아가 한 줄기씩 파란 빛으로 이루어진 나뭇가지들을 만들어 이들의 가슴에 꽂히도록 하다가 마침내 그로 인한 충격을 견디다 못한 병기들이 가슴에 불꽃을 일으키고 날개가 부러진 채 추락하다가 바닥에 부딪쳤는지 유리가 깨어지는 소리를 낼 무렵에 다시 그가 나의 곁으로 오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을 잠시나마 풀었다.
  그렇게 일은 간단히 해결되기는 했지만 탑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인근의 병기들은 자신의 무기가 탑에 영향을 가하면 안 된다는 법칙을 갖고 있어서 탑을 공격하지 못했겠지만 근래에 다가온 이들은 그러한 법칙에 구애받지 않아 바로 탑 위의 나와 에르시아를 공격했을 것이다. 이런 이들이 계속 나타난다면 그 탑에 머무르는 일도 오래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결국 나는 에르시아를 데리고 비행을 개시, 내가 앞장서고 에르시아가 그 뒤를 따르면서 탑을 벗어나 동쪽 너머로 보이는 중앙 구역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중앙 구역에 병기들의 근원이 있다는 에르시아의 정보에 의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앞장서기는 했지만 관련된 지시는 뒤에 있던 에르시아가 맡아서 했다.
  "유네아, 뭔가 변화된 점이 하나 있는데."
  "응?" 갑자기 나에 대해 이상한 것이 있음을 밝히는 에르시아. 그리고 이전에 레반테아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습이 이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언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순수한 하늘색만을 띠고 있었지만 다시 만났을 때의 레반테아는 그 색부터 짙어졌을 뿐만 아니라 테두리가 마치 태양의 빛처럼 무지개 무늬를 희미하게나마 띠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확실히 에르시아에게는 놀랍다는 느낌이 바로 들었을 것이다, 난데없이 레반테아의 모습이 이전과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나는 그 사연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었지만 인제서야 나와 행동을 같이하게 된 에르시아에게 그 내막을 잘 알 리가 없었고, 그래서 레반테아의 변화된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으리라.
  하지만 에르시아는 변화된 레반테아의 모습이 이상하게는 느껴졌을지라도 그것을 두고 레반테아를 바로 기피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 힘이 사악한지의 여부를 먼저 판단하고서 레반테아가 나쁘게 변했는지를 판단하려 한 것. 그러면서 잠시 레반테아의 모습을 보려고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유네아, 잠깐만 레반테아가 내 곁에 있도록 해 봐."
  그렇게 그 모습을 잠시만 봐야 하겠음을 에르시아가 알리자 나는 알았다고 바로 화답을 하고서 레반테아로 하여금 에르시아의 바로 앞에 이르러 에르시아가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시간이 지날 무렵, 고개를 뒤로 돌아 나의 뒤를 따르는 에르시아의 모습을 잠시 보니 그는 레반테아를 두 손으로 잡은 채, 그 모습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레반테아의 모습을 두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것을 나를 향해 공을 던지는 듯이 던져 보냈고, 이어서 레반테아가 나를 따르려 하는 듯이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의 왼편 근처로 이르는 레반테아. 그런데 그 모습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둥그런 모양새만 보이고 있던 레반테아의 형상이 부정형으로 변화하더니 갑자기 네 갈래로 갈라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더니 잠시 시간이 지날 때가 되자 그 네 갈래로 나뉘어진 형상마다 한 장의 날개로 변화하여 마침내 그 형상이 나비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