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도시의 거탑 - 옥좌의 공간
  빛으로 이루어진 선들의 모임을 지나치고 그 너머의 열려져 있던 문을 통과한 이후, 커다란 유리 판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이전의 통로와 이어진 곳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하강 속도를 낮추고 몸을 지면과 거의 평행을 이루도록 하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려 하는 동안 그런 나의 눈앞으로 빛이 닿지 않아 내벽의 그 어떤 부분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거대한 공간의 모습이 보였다.
  '이 곳은 필시 지하일 것이다, 이 곳의 내벽 역시 투명한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을 텐데,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어두웠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출입구 근방의 상공에서는 천장 그리고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바닥을 제외하면 어떤 내벽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천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니, 천장의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공간의 거대함이 내벽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을 정도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둡다고는 해도, 불빛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간의 중심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다섯 개의 '별빛' 이 강한 빛을 발하며 어둠을 비추고 있었으며 그 주변의 곳곳에도 팔면체를 이루는 수정들이 내부에서 파랗게 빛을 발하며 어둠을 비추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빛은 밝았지만, 주변 일대까지 비추지는 못하는지 빛에서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도 바닥에 놓인 물체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의 밝기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빛들이 비추어지는 바닥은 지상의 구조물과 마찬가지로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곳곳에 수정 결정들이 생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가 거탑의 중추부인가 봐, 그렇지 라이마?"
  "아마, 그러하겠지." 그 공간의 모습을 보며 비행 속도를 현저히 늦춘 채, 고도를 낮추어 가는 동안 나의 뒤를 따르고 있을 일린의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에 이어 라이마가 그 물음에 답을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네가 예상한 것처럼 '꽃' 이 한 곳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
  "응, 확실히 그러하네, 수정 병기들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 그런 현상이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 '꽃' 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서 라이마가 건네는 물음에 일린이 답을 하는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돌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일린은 그저 아래를 향한 채, 아래로 계속 내려가고 있었으며, 라이마가 그 뒤를 따르면서 그와 비행 속도를 같이하는 채,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강을 이어가는 일린의 표정에서는 이미 긴장하고 있는 기운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데 있잖아, 라이마, 왜 이 곳이 옥좌의 공간이라 칭해지는 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 봤어?"
  이후, 다시 한 번 라이마에게 물음을 건네려 하는 일린. 이에 라이마는 그런 일린의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바로 답을 하고 있었지만 짐작되는 바는 있었는지 그가 물음을 건넨 바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였다.
  "하지만 왠지 그러할 것 같기는 해, 중앙에 이렇게 커다란 초록색 빛이 있고, 주변에 엷은 하늘색을 띠는 별빛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 곳은 실제 옥좌가 자리잡고 있지 않더라도, 옥좌를 상징하는 곳이 될 수는 있겠지. 중심에 있는 커다란 별빛이 예를 들면......."
  "왕을 상징하는 혼이 그 빛일 수 있다는 것이지?"
  그 때, 그의 말을 자르며 물음을 건네는 일린. 그러자 라이마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언급을 그가 하였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달리 대답을 하지는 않으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느덧 다섯 개의 별빛이 자리잡고 있는 곳, 그 근처에 이르고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빛의 실체 역시 나의 눈앞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 곳에 대한 기대를 한 적은 전혀 없지만, 빛의 실체가 눈앞에 드러나고 있었다.

  초록색 빛의 실체는 다름 아닌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직경이 상반신 크기 만한 거대한 구체였다. 그 구체는 내 키의 5 배 정도 되는 높이를 가지는 것으로서 밑면이 정사각형을 이루며 끝 부분이 길쭉한 사각뿔을 이루는 거대한 첨탑 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또 그 첨탑은 윗면의 넓이가 자신의 밑면, 그 2 배에 이르는 사각뿔대 형상의 받침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 받침대는 다시 직경이 높이의 2 배에 이르는 팔각기둥의 형상을 이루는 거대한 발판 위에 위치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구조의 최하층을 이루며 수정 바닥에 직접 닿고 있는 형체, 그 밑면의 직경은 내 키의 8 배 가량에 이를 정도로 길었다.
  그리고 그 빛을 둘러싸는 엷은 하늘색 빛의 실체는 그 팔각기둥형 구조물 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서, 중심의 탑, 그 대각선 인근에 위치한 네 개의 가느다란 탑으로서, 꼭대기의 팔면체를 이루는 형상 중심에서 빛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시의 가로등과 비슷한 모습을 보였지만, 조금 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시의 가로등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팔각기둥형 물체의 중심의 전후 그리고 좌우 방향으로는 수많은 계단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그 구조물을 향해 사람이 오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비스듬한 빗면을 바탕으로 수많은 낮은 단들이 놓여진 형태를 이루는 계단. 그 계단면의 폭은 팔각기둥의 직경에 거의 대등하였다.
  계단의 근방, 즉 팔각기둥의 대각선 근방에는 하나씩 내 키의 2 배만한 높이를 가지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들은 각자 다른 모습에 다른 물건들을 손에 쥐고 있었다. 바로 앞에 위치한 좌우의 조각상들에는 지팡이와 뇌정이, 그리고 뒤쪽 좌우에 위치한 조각상에는 삼지창과 낫이 쥐어져 있었다.
  초록색 빛의 기반인 탑, 그 탑의 벽면에는 알미차 사막에 존재하고 있다는 '오벨리스크(Obelisk)' 라는 이름을 가지는 첨탑처럼 무언가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어둡기도 하거니와 글자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계단이 위치하고 있다고 하나, 탑이 위치한 구조물을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덩굴 줄기들이 사각형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었기에 걸어서는 탑으로 접근할 수 없었다.
 
  마치 사당의 '신' 을 모시는 구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 구조물들이 자리잡고 있는 공간. 그 공간의 구조물들이 위치한 곳 일대에는 그 곳이 '중요한 역할을 위한 곳' 임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하나의 거대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커다란 세 동심원의 안에 태양을 상징하는 듯한 작은 원-이라 해도 그 직경만 하더라도 팔각기둥형 구조물의 1.5 배에 이르렀다-을 중심으로 두 변이 움푹 들어가는 곡선을 이루는 삼각형이 8 방향으로 그려지며 그 끝이 동심원을 벗어나고 있었다.
  '문양만 보면 흔히 말하는 태양신을 위한 사당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 곳은 본래 사당으로서의 역할을 행하는 곳이겠지? 그리고 이 곳이 옥좌의 공간인 것은 신의 옥좌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 곳에 자리잡고 있었을 신은 어떤 존재였을까.'
  바닥에 새겨진 문양의 모습까지 본 이후, 나는 다시 바로 서는 자세를 취하며 팔각형을 이루는 발판과 그 바로 앞에 위치한 두 작은 탑들의 조금은 먼 곳으로서 우측 근방에 수정 결정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 곳에 착지,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 일어나면서 그렇게 혼잣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일린 그리고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검을 칼집에 꽂고, 나렐에게서 얻었을 검을 오른손에 쥐고 있던 라이마 역시 탑들이 모인 곳, 그 우측 근방에 머무르면서 바로 앞에 보이는 거대한 발판에 의지하고 있는 탑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탑, 알미차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그 뭐더라? 그 탑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어?"
  "오벨리스크(Obelisk) 를 말하는 거지?"
  우선 일린이 물음을 건네고, 이에 라이마가 답을 하자, 일린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것을 되찾은 것에 대해 감탄의 감정을 실은 밝은 목소리를 내며 "맞아! 오벨리스크였어!" 라고 외치면서 그 오벨리스크처럼 벽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지 않느냐고 물음을 건네고 있었다.
  "그래, 그 글자들을 읽을 수 있다면 탑의 존재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후, 답을 하면서 아쉬움의 감정을 바로 드러내려 하는 라이마. 그리고 엘리시온 시대의 글자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만 추측이 가능하다고 글자들에 대한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탑 위에 머무르고 있는 빛의 모습이 점차 변화해 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구체 속에서 요동치는 것으로서, 빛을 발하는 유체의 형상을 이루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수정 조각상들이 일제히 하늘색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그에 이어 탑의 내가 위치한 방향, 그 근처에서 하얀색을 띠는 빛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둥이 솟아오른 이후에 다시 사라지면서 빛 속에서 나타났을 하나의 존재가 눈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나의 먼 앞에 위치한 첨탑, 그 근처에서 마치 두 팔을 날개 삼아 비행을 이어갔다가 다시 착지하는 듯이 어깨 높이로 벌렸던 두 팔을 내리면서 앉는 듯이 착지를 행하는 존재, 그것은 은색을 띠는 갑주형 병기로서, 그 오른손에는 검과 총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키 만한 무기를 쥐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소개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누구인지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전에도 나와 몇 차례 마주쳤으며, 수정 도시에서 일린 그리고 라이마와 대치하고 있던 이, 바로 '나렐(Narel)' 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바르코스 출신의 병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렐! 여기 있었구나!!!" 그 때, 일린이 그를 향해 다가가려 하면서 그런 그에게 외쳤고, 이에 라이마가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다급히 그런 그의 두 어깨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그의 전진을 말리려 하면서 과격해진 목소리를 내어 그런 그에게 외쳤다.
  "가만히 있어, 일린! 무작정 나선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해!"
  "놓아! 이번만큼은 그를 끝장내고 말겠어!"
  그러자 그는 더욱 격해진 목소리를 내며 라이마의 두 팔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렐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기만 할 뿐, 그들에게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있었다. 그 무렵, 라이마가 바닥에 떨어뜨렸던 검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이윽고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기를 반복하며 포물선 이동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나의 바로 앞에 위치한 계단 바로 앞에 그 날의 끝이 박히는 모습을 보였다.
  "앗! 검이!!!" 그러자 라이마가 일린의 결박을 풀고 검이 날아간 방향을 향해 돌아서려 하였지만 곧 그것이 내 앞에 놓여지는 모습을 보며 발걸음을 멈추었고, 일린 역시 나렐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그의 바로 뒤에서 그가 바라보는 광경으로 시선을 향하기만 할 뿐,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이제?" 그 이후, 일린이 라이마에게 물음을 건네자, 그는 이제 자신들의 역할은 끝난 것 같다고 화답을 한 이후에 그 답에 이어지는 발언으로써,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이 자신과 일린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것이라는 말을 건네려 하였다.
  "어째서 이 검이 나의 앞에.......?"
  당황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검술에 관심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던 나의 앞에 검이 잡아달라는 듯이 나타난 탓이었다.
  검술에 완전히 자질이 없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에르시아의 경우도 그러하였지만, 어렸을 적부터 한 동안 검술 수련에 정진한 적이 있기는 있었다. 당시, 에르시아도 그렇고, 나 역시 모험가가 되고 싶어하였고, 모험가로서 위협을 가하는 생물을 처치하기 위해서라면 검술과 같은 무기를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래에 대한 희망이 달라지고, 모험가의 꿈이 무뎌지면서 결국 검술에는 일체 관심을 들이려 하지 않았고, 자연히 검을 쥐는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소정령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검을 다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런 나의 앞에 검이 나타났고, 그래서 나는 그저 당황하고 있었다.
  '그 당시였더라면, 주저 없이 이 칼을 쥘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어렸을 당시라면 바로 검을 쥐고 나렐을 향해 다가가려 하였을 것이고, 실제로 수련한 만큼의 성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이 지난 이후에 다시 검을 잡은 그 때, 나에게는 처음 검을 잡았을 때의 낯선 느낌이 다가왔으며, 그 탓에 두 손으로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의 떨림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처음 잡았을 때의 느낌만이 들었다면 괜찮았다, 이것이 과거의 나 자신과 겹쳐지며 답답함이라는 감정을 불러오고 있었다.
  '수련에 매진할 당시라면 이런 검 따위는 오른손 하나로 얼마든지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는 동안 그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단 위에서 두 눈을 파랗게 빛나도록 한 채-처음 보았을 때에는 확실히 붉은색이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렐에게서부터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형식적이라고 말하기에 모자람이 전혀 없는 어조를 드러내는 기계적인 느낌을 주는 하나의 목소리였다.
  "환영한다, 유네아. 지금껏 여기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계적인 어조를 통해 그야말로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있던 나렐. 그 이후, 나는 그 인사에 대한 답례 없이, 곧바로 하나의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를 구원해 주었던 사람, '마리아 에르세레즈' 에 대한 물음이었다. 마리아를 떠난 이후, 병기로서의 삶을 계속 이어가려 한 그의 모습에 대해 나는 그로부터 납득이 되는지의 여부를 떠나, 일단 이야기부터 들으려 하였고, 그러면서 그 시작으로써 그에 대한 물음을 건네려 한 것이었다. 이외에도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은 적지 않았고, 형식적인 인사를 통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혹시, 마리아 에르세레즈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가 그 당시, 바르카디아(Varcadia) 요새의 지하 깊은 곳에 버려져 있던 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너와 대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검 역시 올바른 주인을 찾지 못한 채, 키에렌 왕의 손아귀에 들어갔겠지."
  한 가지 짚고 넘어갈만한 것이 있었다, 바르코스의 요새를 언급하면서 그 이름을 마리아 에르세레즈로부터 들은 바 있던 그의 고향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옛 왕국 '바르카디아' 라고 칭하고 있었음이 바로 그것.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리아 에르세레즈가 추측한 바대로, 바르코스와 바르카디아가 실제로 관련이 있음을 바로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고로, 마리아 에르세레즈는 확실히, 나에게 있어서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사실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뭐라고!?" 이윽고 마리아가 자신을 구해주면서 자신에게 바라왔던 것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바로 드러내는 나렐. 즉, 마리아 에르세레즈가 자신에게 어떤 바람을 가지고 있든 자신은 상관하지 않겠음을 밝힌 것이었다, 그가 자신에 대해 가진 바람 중에 분명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 마리아 에르세레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하려 한 적이 있던 그의 모습을 상기하며 다소 격해진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떤 말을 너에게 했든 간에, 너 마음대로 죽겠다는 건가!?"
  "그의 역할은 나를 되살리는 도움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 이상의 일은 무의미한 것일 뿐."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자신의 사명을 이루는 마지막 단계임을 밝히고서, 사명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삶을 이어가야 했기에 마리아의 도움을 받았을 따름이라는 언급을 나에게 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사명' 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마리아 에르세레즈의 부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지, 그에 대해 듣고 싶었고 그러면서 그에게 관련된 물음을 곧바로 건네려 하였다.
  "그렇다면 그 '사명' 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 줘. 그 사명이 얼마나 중요하면, 마리아 에르세레즈 양의 너를 향하였을 삶을 이어가달라는 부탁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지, 그것에 관해 납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 납득을 못하면 너의 행동을 저지할 수밖에 없잖아."
  "좋다,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다만, 그 이야기는 길어질 수 있으니, 그에 대한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부탁한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식의 화답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하는 나렐. 확실히 그가 언급한 대로 이야기는 길었다, 파라일라를 멸망시키고, 야스모르 성계를 황폐화시킨 주범인 바르코스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되었으니.


  "하지만 에레아는 제오를 섬기고 있지 않았나?"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엘리시온의 천공 신궁에서 그가 드러낸 겉모습에 불과했을 뿐이다. 여기에 있는 제오의 실상을 알게 된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내가 건네는 물음에 차분히 답을 하고서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도검으로 첨탑의 꼭대기에 위치한 초록색 빛을 가리키기 시작하였다, 마치 제오의 실체가 바로 그것임을 알리는 듯이.
  "설마, 제오 신이라는 존재가 바로 그것?"
  "그렇다. 제오를 비롯한 3 형제는 본래 그 형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이와 같은 힘의 결정체였을 뿐이지. 그것이 사람의 형상을 할 수 있었음은 에레아의 사념이 명령을 내려, 지배자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갔기 때문이었다. 제오가 지금껏 여인들을 통해 아이를 낳은 행위 역시 실제 그 배후는 에레아였다, 그리고 '영웅' 으로서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운명적 시련' 이 필요하다는 판단과 더불어 아이를 낳은 이상 필요 없어진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가 제오의 행위에 대한 질투를 하고 있음을 '연기'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제오의 의식 스스로가 다스리고 있었을 텐데......"
  "이전에 말하지 않았나, 제오에게는 자의식이 없다는 것을. 에레아는 제오를 이용해 통치를 이어가려 하였으나, 결국 한계에 부딪쳤고, 실패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에레아의 또 다른 인격이 각성하였지, 자연의 질서를 중요시하는 '게아의 딸' 로서 존재하던 자신의 모습을. 바로 그것이 에레아의 본성이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 인격이 그 육신이 죽으며 두 개의 영혼으로 분리되어 각자 다른 삶을 찾아가게 되었다고 봐야 하겠지."
  이후, 그는 왼손을 구체를 향해 높이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제오는 강대한 힘의 결정체일 뿐이라고 말하고서 제오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엘리시온의 근원을 없앨 수 없음을 알렸고, 그에 이어 그를 이길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만 그를 조작해 온 에레아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건네는데, 그 때 갑자기 구체에 봉입되어 있던 빛이 초록빛 액체와 같은 형상을 이루며 나렐의 손바닥을 향해 끌어당겨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외쳤다.
  "나렐! 도대체 무슨 짓을!?"
  이에 한 번 웃으면서 바로 답을 하는 나렐.
  "하하하...... 나의 몸에 제오의 힘을 봉입하는 의식이다. 그 의식을 통해 나 자신이 제오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 그 힘이 폭주하게 된다면 나뿐만이 아닌 주변 일대의 상황은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그의 위험한 선택에 대해 경악의 심정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이런 선택을 마리아 양께서 원하셨을 것 같아!?"
  그러자 나렐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는데, 그런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묻고서, 그에 이어 의식을 통해 자신은 내가 제오의 힘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시험할 수 있음을 밝힌 다음에 팔을 내리고 오른손을 들어 공격 태세를 취하기 시작하면서 명령을 내리는 듯이 나에게 말을 이으려 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나를 구원하고 싶다면, 우선 몸에 깃든 제오의 힘을 네 손으로 극복해 보거라."
  이후, 검을 잡은 두 손에 힘을 주고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이미 전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상,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의한 일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