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 이제부터 내 스스로 길을 가면 되잖아."
그러자 바로 그렇게 답을 하는 에르시아. 그리고 잠시 후, 이번에는 그가 앞장서면서 십자로의 앞길을 따라 계속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 방향이 곧 동쪽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가지 한 가운데를 따라 나 있는 수로를 건널 수 있는 배가 있고, 그 배를 통해 수로 너머로 이어지고 있을 강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면 편하게 페이란으로 갈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날 무렵, 에르시아는 무언가 자신의 곁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있음을 바로 밝히고서 주변 일대를 둘러보았으나, 배의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그런 수로의 모습을 보며
에르시아는 곧 아쉬움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을 지으려 하였다.
데르 샤라인 - 동부 수로 인근
멀리서 한 척의 배가 다가오기 시작한 때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물에 뜨기 위함인지 하얗게 칠해진 나무로 만들어진 그 배는 천천히 물의 흐름을 타고 나 그리고 에르시아가
위치하고 있는 수로의 우측 부근의 한 부분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당시, 에르시아가 걸어가던 속도보다도 느렸을 법한 배. 그 배는 푸른 수정으로 이루어진 수로를 따라 흐르는
투명한 물을 따라 흘러오고 있었다.
당연히 배는 스스로 움직이는 배는 아니었으며, 배 위에는 한 사람이 앉아 노를 젓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멀리 있는 관계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와 그 배 사이의 거리도 점차 좁아져 가면서 배의 모습 역시 점차적으로 자세히 드러나려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배에 탄 사람의 정체 역시 알 수 있게 되는 때가 오게 되었다.
머리에 쓰는 부분인 반구형을 띠는 부분을 중심으로 둥글고 넓은 차양이 나 있는 하얀 모자를 쓴 이로서, 소매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짧고, 치맛단이 발목 근처까지 내려오며, 몸에 거의 달라붙을
정도로 폭이 좁은 일체형 의상이며, 그 색은 모자의 색과 똑같이 하얀색이었다. 의상으로 보아서는 여성임이 확실했지만, 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있는 데다가, 머리카락도 짧아 모자를 통해 전부 가려지고
있어서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이 배의 뱃사공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
옷이 내가 예상한 사공의 옷차림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성계의 풍속과 관련이 있을 법 하니, 납득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요한 사항은 그의 외견상 특징이 아니었다, 그 배가 현재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잘 할 경우, 페이란까지 배를 통해 이동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배의 방향을 돌리기 위한 시도를 행하려 하는데, 갑자기 에르시아가 그 배를 지나칠 무렵, 에르시아가 왼손을 들며 급히 나를 부르더니, 자신을 지나치려 하는 배를 향해 다가가 달라고
연신 당부의 말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물론 배에 자신과 내가 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해달라는 당부였을 것이다.
"알았어, 바로 갈게, 조금만 기다려."
마침 나도 배의 방향을 돌리기를 청하려 하고 있었기에 그 부탁을 들어주려 하였고, 그러면서 수로 인근의 난간에 붙어 왼손으로 난간의 창처럼 생긴 장식 대를 붙잡고, 허리를 건너편의 수로를
향해 굽힌 채, 오른팔을 높이 들어 손이 수로를 향하도록 하면서 외쳤다.
"태워 주세요-----!!!!"
있는 힘을 내어 크게 목소리를 지르며 부르는 나. 그렇게 큰 목소리에 여성 역시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바로 고개를 들어 나와 에르시아의 모습을 보려 하였고, 그러면서 모자를 쓰고 있던
그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다소 어른스럽지만 그래도 소녀다운 면모가 더욱 두드러지는 이, 푸른색 눈동자를 갖고 있던 그는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시선을 향한 채, 말을 걸려 하였다.
"혹시 페이란으로 가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이리 와요."
그는 나와 에르시아 모두 비행할 수 있음을 알아차린 듯해 보였다. 당시 나도 그렇고, 에르시아도 날개를 감추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여성은 바로 알아차린 듯해 보였다. 이에 나는 달리 말하지
않고, 바로 알겠다고 답을 하며 날개를 펼치고 배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전 때처럼 바로 급하게 착지하지는 않으려 하였다. 자칫하면 배가 흔들려 위험한 상황이 다가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르시아, 배에 착지할 때에는 조심해서 착지해, 잘못하면 배 뒤집힌다!"
"설마, 배가 뒤집히기라도 하겠어~~." 나의 당부에 바로 그렇게 화답을 하는 에르시아. 물론 착지를 거칠게 해서 배가 뒤집힐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몸을 감싸는 마력이 급한 착지로
인해 일순간에 폭발하여 배에 구멍이 난 사례도 있다보니,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날개를 가진 정령들은 착지를 할 때에도 사뿐히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나 보지요? 방금 전에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요정이나 정령이라고 항상 사뿐히 내려오란 법 있나요?"
그러자 곧바로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는 에르시아. 어조가 상대방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가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고, 또 재미있게 말을 하려는
모습을 보인 탓에 나 역시, 그런 그의 모습에 대해 자연히 나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와 에르시아 모두 배의 중앙 부분에 탑승한 이후, 배의 꼬리 부분에 타고 있던 여성은 바로 배를 돌려, 동쪽을 향하도록 하면서 다시 이전 때처럼 배의 노를 저으며, 동쪽으로 펼쳐진
수로를 따라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배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로 동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뱃사공 역할을 하는 이의 이름은 '레잔 가렐브(Rezan Garelb)'. 대를 이어 데르 샤라인 일대의 배를 움직이는 일을 맡는 이들 중 한 명으로서, 가렐반 일가는 먼 고대 시대부터 이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 후손 중 한 명이 정령이 되어 가문의 대를 잇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쪽의 정령들 중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이들도 있나 보지요?"
"예, 4 대 정령, 정확히는 7 대 정령 중에서 날개를 가진 이들은 비행이 가능해요. 잠자리 날개라던가, 새의 날개라던가, 그런 것을 가질 수 있기만 하면 돼요."
그러다가 도시의 동쪽 외곽 부근에 이를 무렵, 레잔이 잠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물음을 건네자, 내가 바로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답을 하였다. 그러자 내가 살고 있는 성계의 정령에 대해 흥미를
느꼈는지, 레잔은 이전의 질문에 이어 바로 성계의 정령에 대한 물음을 이어서 건네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성계의 정령, 그 유래에 대해 알고 계세요? 혹시 알고 계시다면, 저에게 그에 대해 잠깐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하는데."
하지만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세니티아 성계의 정령, 그 탄생에 대해서는 정령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대다수였고, 나 그리고 에르시아도 그 중 한 명이라서 뭐라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에르시아가 바로 답을 하니, 그의 추측이 들어간 답은 성계가 탄생할 시에 생성된 대기의 바다 그리고 대지 등에서부터 태어난 기운이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가며, 정령이 탄생하였으며, 이후, 별빛과 달빛 그리고 어둠에서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정령이 태어나 7 대 정령이 완연히 탄생하게 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 설명에도-당연히- 레잔은 의문이 풀리지 않은 듯이 다시 한 번 물음을 건네려 하였으니, 자연의 형상에서 어떻게 인간의 모습이 구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이 그를 통해
전해져 왔다. 이전의 물음에는 나름 잘 대답을 하던 에르시아였으나, 그 물음에 대해서는 거의 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바로 아쉬움의 감정을 드러내며 그에게 물음을 건네는 레잔.
"역시, 잘 모르시나 보네요. 뭔가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했는데...... 할 수 없지요,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해 버린 탓이라 생각하면 될 거예요, 아마도."
이후, 한 동안 레잔은 그저 일행을 동쪽 저 너머로 보내주려 하기만 할 뿐, 달리 말을 잇지 않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나 역시 편안히 배의 왼쪽 부분에 누워 웅크려 있으려 하였다-배의 크기가 좁아
바로 누워 있으려면 무리였다-. 그러는 동안 에르시아는 그런 나의 건너편에 앉아 있으면서 조용히 나의 모습으로만 시선을 향할 뿐, 다른 곳으로는 시선을 향하지 않고 있었다.
그 무렵, 자리에 누워있던 나 역시 슬슬 피로가 몰려왔는지 잠이 오기 시작하였고, 한 동안은 페이란을 향해 계속 수로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며, 바로 잠을 청하려 하였다. 그 때, 들려오는
에르시아의 목소리, 이전까지는 자신이 잠드는 일에 대해 뭐라 말을 하려 하던 내가 역으로 잠들려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 즈음 놀리는 목소리를 내며 말을 건네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배가 이어지는 수로는 도시의 외곽 구역을 거쳐, 그 너머의 초원 지대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길에 뻗어있는 수로는 그대로 굽이치고 있는 강으로 이어져 갔다. 레잔의 말에 따르면
수로는 본래 동쪽으로 이어져 동쪽 지역 너머의 페이란을 지나, 그 근처의 바다로 이어지게 된다는 언급을 한 다음에 서쪽에도 바다가 있기는 하나, 거의 호수에 가깝고 그 방향으로 흘러오는 자연적인
수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수정 도시를 둘러싸는 바다에 관한 언급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 바다로 유입되는 물은 있나요?"
"예, 있어요." 이에 에르시아가 건네는 물음에 대해 바로 답을 하는 레잔. 그리고 수정 도시의 각지에 인공 수로가 있다 하고, 또 지금은 초지대가 된 곳에 수로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그 수로를 통해 물이 그 바다로 유입되고 있었으리라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이후, 그는 페이란에도 인공 수로의 흔적이 있음을 밝힌 다음에, 그 일대 역시 먼 고대 시대에는 대도시였음을 알리는 유적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언급을 하고서, 다만, 페이란 사람들은 그
건축물들의 흔적을 정교하게 만들어진 수정 구조물로 간주할 뿐, 그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는 바는 없음을 밝히려 하였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거주 구역을 만들려 하면, 옛 고대 도시 터에서 구역을 만들어 간다고. 거리 구획 등의 기반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공지에 집과 거리를 처음부터 꾸미는 것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이래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세니티아의 경우도 대략 그러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몬다스의 주요 도시나 마을은 고대의 도시 터에서 마련되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소로에나 같은 경우에는 그 옛 터에
본래 도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륙 동부 지역인 몬다스의 곳곳에는 고대 시대에 만들어진 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데르 샤라인이나 페이란의 경우는 이와 같다고 바로 단정짓듯이
결론을 내리면 괜찮을까.
이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그대로 잠들어 버렸을 테니까. 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배의 부드러운 흔들림은 나에게 편안한 잠을 불러오고
있었다. 당연히, 주변 일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다. 이대로 누군가가 강물로 밀어내면 그대로 밀릴 것만 같았다.
이대로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페이란의 근처에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찬물이 머리를 덮쳐오는 듯한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데르 샤라인 동부의 초원길 사이로
흐르는 강을 따라 나아가는 배 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치 구경도 조금 해야지, 이제 그만 자!"
그 때. 어느새 나의 곁에 앉아 있으면서 가볍게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를 내는 에르시아.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머리카락과 얼굴에 차가운 물에 적셔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용히 일어나는 순간, 나의 눈앞 멀리 자그마한 연못이 있어서, 연못을 둘러싸며 갈대 줄기들이 초록빛 이파리들의 모습을 조용히 자랑하고 있었으며, 인근에는 몇 그루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산들바람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파리들이 흔들리도록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과 그 주변 일대 곳곳에는 수정들이 자라나 태양의 빛을 받으며 무지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때, 잠을 깬 보람이 있지?"
확실히 그랬다. 만약 그 상태에서 그대로 잠들고 있었다면, 그 광경을 볼 새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로 인해 나에게 누적된 피로를 완전히 풀지 못한 채, 멍하니 눈앞에 드러나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 때, 그런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이전과 달리 다소 어두워진 목소리를 내며 물었다.
"혹시, 잠을 얼마나 주무셨어요, 얼마 주무시지 못하신 듯 한데."
사실 잠을 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5 시 30 분 즈음에 기상하여 8 시 즈음에 일어났으니, 정확히 따지면 3 시간을 넘을지는 알 수 없어도, 2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음은 확실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자마자 레잔은 바로 목소리를 내었다.
"너무 적게 주무신 것 아니에요, 설마 그 정도밖에 되지 않을 줄은......."
그리고 무슨 일을 하였기 때문에 새벽 5 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느냐고 묻자, 내가 그 답으로써 데르 샤라인에 살고 있던 8 자매가 수정 도시라는 곳의 관람을 행하려 하면서 밤늦게까지
구경을 했던지라 돌아가기까지 하려 하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밤중에 있었던 수정 도시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에 대해 거의 믿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의한 일이었다.
그러자 레잔은 8 자매에 대해 잘 아는 듯이, 이들의 장녀 격에 해당되는 이리나 그리고 라미샤라는 이름을 언급하더니, 그들이 무슨 이유로 밤늦게까지 수정 도시에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한 다음에 그들에 대해 자신이 아는 바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아이들은 본시, 여행을 하는 데에 있어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분명 그들도 꽤 이른 시기에 출발했을 텐데, 밤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음에는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그에 대해서는 언젠가 라미샤 등을 만나면 이야기를 해 봐야 하겠네요."
그 때, 에르시아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레잔에게 그에 대해서는 자신이 잘 알고 있음을 밝힌 다음에 수정 도시에 갑자기 수정으로 이루어진 이상한 괴물체들이 등장해 그로 인해 라미샤 그리고
이리나가 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위협을 우려해, 밤까지 여행을 미루었을 것이라 추측된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 때 당시 있었던 일에 관해 나름 사실대로 언급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밤까지 그 괴물체 군집이 도시에 머무르고 있었겠군요."
"그러하였다 해요." 그러자 바로 답을 하는 에르시아. 그리고 그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괴물체들이 갑자기 소멸했으며, 그로 인해 시가지가 안전해지자 그 자매들도 안심하고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리라 추측된다는 언급을 한 이후에 그들이 굳이 밤에 여행을 떠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하였다.
"그 다음 날, 페이란으로의 여행을 행할 예정이었거든요, 그 전날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하자는 심정으로 여행을 강행했겠지요. 동생들도 수정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소망 하에
잠이 오지 않았을 테고. 보고 싶은 것 마음껏 보지 못하고 여행 마치게 생겼는데, 잠이 오겠어요?"
"하기사, 아쉽게 여행을 끝마치고 싶지 않다면, 그렇기는 하겠지요."
그러자 바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화답을 하는 레잔.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네며, 노를 저어 강물을 따라 이동하는 데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데르 샤라인 일대에서는 산악 지대를 볼 수 없었다. 그 지역뿐만이 아니라 행성 전체가 평지라 여기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지경. 그러나 동쪽으로 계속 나아가니, 왼편 먼 저편에 세모꼴을 이루는
산들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며, 산악 지대가 없는 것은 아니로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산의 모습은 이전까지 보아왔던 높은 산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낮은 부분은 초록빛 이파리들로 가득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자리를 잡아 그 모습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산
중턱 일대는 초록빛 풀들에 의해 선명한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높은 부분은 추운 곳인 탓인지 검푸른 바위를 바로 드러내고 있었으며, 꼭대기 부분에는 만년설이 자리잡은 탓인지 새하얀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산에서부터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 강물이 흐르는 그 바로 위의 상공에 이르려 하고 있었다. 그 때, 그렇게 새들이 강 건너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고개를 돌리면서
지켜보다가 다시 자신의 눈앞으로 시선을 향하는 레잔.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그 새들이 어떠한 새들이며, 무엇을 위해 날아가고 있는 지에 대한 발언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루사미사(Lusa-Misa)
(1) 의 일종이에요. 본래는 산악 지대에 둥지를 마련하고 살아왔을 이들이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보금자리를 옮기기 위해 비행을 하게 된 모양이에요."
그리고 엠렌 루사미사(Emren Lusa-Misa)
(2) 라는 새의 일종이 있으며, 그 새들에 대해, 고산 지대와 같은 비교적 높은 지대에 둥지를 마련하며 산다는 언급을 하고서, 이들은
어지간하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지만, 특수한 사정이 생길 때에 집단 이주를 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자신이 언급한 새들의 소개말을 이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주요한 원인으로 몇 가지 알려진 것이 있나요?"
그 때,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난 이후, 바로 레잔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에르시아. 그러자 그는 루사미사라는 이름을 가지는 새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너무 낡게 되면, 새로운 젊은 새들에게
새로운 생활 공간을 마련해 주려 하는 경향을 가진다는 언급을 하고서, 이들의 집단 이주는 그러한 그들의 특성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언급을 뒤 이어서 하였다.
"그러면 이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이 부근에는 저 멀리 보이는 산 이외의 산악 지대란 없을 텐데."
"잘 모르겠지만, 남쪽 인근의 산악 지대로 이주해서 그 곳에 살겠지요. 이 곳만 산악 지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쪽의 여러 지역에서도 저기 멀리 보이는 곳처럼 험준한 산악 지역들이 발견되고,
그 산악 지대들이 엠렌 루사미사라는 이름을 가지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겠지요."
그 이후, 레잔은 에르시아가 건네는 물음에 대해 답을 하고서, 이들의 집단 이주는 한 동안 보이지 않고 있다가, 35 년 만에 발견하게 된다는 언급을 하고서 그 집단 이주가 있었으니, 행성의
어딘가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그러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나는 우측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으면서 그 너머 멀리 보이는 구릉지대로서, 강의 지류가 가로지르고, 지류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 가운데가 하얗게 빛을 발하는
수정 결정들이 자리 잡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목소리를 들으며 새들의 이주와 행성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려 하였고, 그러면서 레잔에게
물었다.
"새들의 이주가 어떻게 성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관련이 생기지요?"
"근래 70 년 동안 새들의 이주하는 모습이 2 번 나타났고, 새들이 이주할 때마다 무언가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추측이 나오는 거예요, 70 년 전에 새들의 이주가 있었을 때에는 데르 샤라인의
남쪽에 있는 박물 도시 '레마 레테(Lema Lete)' 에서 100 년 전부터 진행되어 30 년 동안 이루어졌지만, 진행이 부진하여 100 년 넘어서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알려진 '레마 레테의 전서' 라는 거대 백과
전서가 완성된 일이 있었고, 지난 35 년 전에 새들의 이주가 있었던 그 다음 날에는 데르 샤라인 건립 100 주년으로서, 데르 샤라인에 본점이 있는 '라티마 은행(Garkho de Latima)' 이 주관하여 여러 대형
행사를 열었던 적이 있어요."
그리고 그 100 주년 기념 행사 당시에는 페이란 등지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협력을 했으며, 그 인연에 의해 데르 샤라인과 페이란이 자매 도시가 된 적이 있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레잔.
그런 연유로 레잔은 이번에도 무언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앞으로 있을 일이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는 알 수는 없었겠지만. 페이란에 큰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을 수는 있으나, 그 행사는 연례 행사였고, 그래서 레잔이 언급한 앞으로 있을 큰일은 그 행사가 아니었을 터이다.
"그런데 있잖아, 유네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왼편 근방의 억새풀들로 시선을 향하는데, 그 때 에르시아가 나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응한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전에
레잔이 나에게 했던 말에 대한 언급을 바로 하려 하는 것이었다.
"눈 밑에 점이 있는 사람이 여태껏 계속 이겼다고, 눈 밑에 점이 있는 사람이 다음 시합에도 이길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잖아."
물론 당연한 이치다, 눈 밑에 점이 있는 사람이 계속 이겨왔다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새들의 집단 이동이 반드시 성계에 있을 큰 행사와 관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새들은 그저 자신들을 위해 집단 이동을 할 따름이지, 사람들에게 행사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그 일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씩이나 그 현상이 일치를 하였고, 일어난 일이 큰 일인 만큼,
그에 대한 불안 혹은 기대의 심리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레잔 역시 그래서 새들의 움직임을 심상치 않게 바라보았으리라.
"눈 밑에 점이 있는 사람이 마을에 오자마자, 예를 들면 산사태 같은 것이 난 사례가 몇 차례 있었다면, 눈 밑에 점이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상시와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에르시아가 건넨 말에 대해 바로 화답을 한 이후, 그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바로 그에게 당부의 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바로 알겠다고 답을 하는 에르시아.
그가 언급한 바에 대해서는 레잔 역시 알고 있기는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만큼은 예감이 무척 강하다고 말하면서 뭔가 일이 일어날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들고 있다는
언급을 뒤이어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배를 움직이는 동안, 어느덧 산들이 나란히 자리잡은 광경 역시 나를 지나치고, 굽이진 강가 너머로 수풀들이 자라나고 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나뭇가지에는 파란 꽃들이 피어나
있으며, 초록색으로 일관된 풍경에 변화를 주고 있었으며, 하늘색 꽃들이 피어난 풀밭 사이마다 무지개 빛을 내는 수정들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빛으로 수풀을 꾸미는 역할을 행하고 있었다.
그 곳에 이를 무렵, 레잔이 배의 왼편, 그리고 오른편에 앉은 나와 에르시아의 모습을 보면서 배가 고프리라 생각했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오른손에 올리면서 하나씩 가져가 달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가 오른손에 올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고기를 다지고 훈제시켜 만든 자그마한 덩어리의 일종이었다.
"혹시 정령이라서 드시지 못하신다면, 다른 것을 드릴게요."
못 먹을 것은 없었다. 짐승의 고기라면 이전부터 사냥을 통해 얻어오는 경우가 있고, 또 그것을 연기에 그을리는 방식으로 처리해서 단체로 마을에서 구워 먹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기에
그을린 고기로 만들어진 그것 역시 바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받은 한 조각의 덩어리. 그 길이가 내 새끼손가락 정도만 하여 자그마했지만, 한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나로서는 요기를 하기에 괜찮은 물건이었다. 덩어리를 감싸고 있는
막을 뜯어낸 이후, 바로 막에 감싸여진 덩어리를 한 입에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보는 고기 맛이고, 또 연기에 그을린 특유의 향이 느껴져서 먹는 맛은 나름 괜찮은 편이었다.
그 덩어리들은 레잔이 배가 고플 때마다 한 두 조각씩 먹는 음식 중 하나라고 한다. 음식을 많이 먹을 수는 없어서-배멀미가 원인인 듯 하다- 주로 작은 고기 덩어리, 치즈 조각이나 짭조름한 과자
류를 한 두 조각씩 먹거나, 레몬 즙이나 라임 즙이 담긴 병을 하나씩 마시며, 때로 고기 덩어리나 과자 류를 '안주' 삼아 레몬 즙이나 라임 즙을 마실 때도 있다고 한다. 항시 간단하게만 먹으면서 생길 수
있는 입에 피가 고이는 현상을 막기 위한 일로서, 유난히 신 레몬이나 라임 즙을 마시는 것은 그 현상의 예방에 그것만큼 좋은 음료가 없기 때문이라 한다.
"고기 등과 함께 먹으면 레몬 즙을 마실 때, 더욱 맛이 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이야기를 마치며 환하게 웃음을 지은 이후에 밝아진 목소리를 내며, 마지막 경우에 대한 언급을 하는 레잔. 그러자 에르시아가 바로 놀라면서 물었다.
"순수한 레몬 즙은 마시면서 너무 시큼하거나 아프거나 하지 않아요?"
"아프지는 않아요. 그리고 시큼하다 해도, 맛은 맛이지요. 시큼하기 때문에 시원하게 마실 경우에는 갈증이 더욱 잘 해결되는 듯한 느낌도 들고....... 시큼한 맛이 있어야 레몬이나 라임 즙 답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 물음에 바로 밝게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는 레잔.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며, 나 그리고 에르시아는 굽이진 강을 지나, 그 너머로 보이는 평야 지대를 거쳐 하나의 시가지를 가로지르면서 폭이
넓어지는 강물을 따라 나아가는 배와 함께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동쪽 하늘 높이 태양의 빛이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소요된 시간은 시계 역할을 할 만한 것을 마련하지 못해,
알 수 없었지만 대략 3 시간 정도였을 법 싶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