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란 - 서부 시가지
  페이란, 성계에 자리잡은 대륙 동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데르 샤라인에서부터 이어진 강이 페이란을 거쳐 도시의 동쪽 끝과 맞닿은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 과거부터 교역 도시로 번영하던 이 곳은 그러한 특성을 가진 곳답게 대체로 조용하던 데르 샤라인과 달리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런 특성은 항구와 맞닿은 동부 지역에 한정될 뿐, 서부 지역은 데르 샤라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근의 샹천(Xiangchen) 이나 쉐이저우(Suizhou) 를 포함한 동부 구역의 중심 도시로서, 데르 샤라인을 대표하는 서부, 중부 내륙의 도시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다는 특징을 가진 곳으로서, 의상부터 이전에 들른 도시들과 전혀 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대체로 선명한 색을 띠며 소매가 없고 치마가 긴 겉옷을 겉옷의 색과 같으나 훨씬 엷은 색을 띠는 천으로 이루어진 짧은 소매를 가지거나 길며 폭이 넓은 소매를 가지고 치맛단이 발밑까지 내려가는 옷을 받쳐입고 있는 의상이나 같은 색을 띠는 단순해 보이는 상의와 치마로 이루어진 의상, 상의와 치맛단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치맛단이 발끝까지 내려가고, 옷의 폭이 좁은 의상 등 여러 종류의 의상을 입고 있는데, 이 모두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는 이색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것들이었다.
  "과거 몬다스 지역에 사는 인간들이 입었다는 그런 부류의 옷들이네, 몬다스 남부 지역에서 이런 옷을 입은 이들의 모습이 보이던데."
  그 때, 에르시아가 배에 타고 있으면서 왼쪽 너머로 보이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혼잣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에르시아가 그런 것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바로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며 무언가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 무렵, 나의 눈앞으로 한 사람이 배가 위치한 곳 인근을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그는 하얀색을 띠는 폭이 좁고 손목 부근까지 가는 소매와 발목까지 내려가는 치맛단 등이 특징인 몸에 붙는 하얀 옷차림을 한 이로서, 등까지 내려가는 검은 긴 머리카락을 가지는 머리 위에 하얀색을 띠며, 머리를 가릴 정도의 크기를 가지는 밑면이 넓은 고깔형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건네려 한 물음은 언제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느냐는 단순한 물음이었다. 그러자 바로 근래의 일이라고 답을 하는 에르시아. 그리고 샤리에나와 함께 몬다스 일대를 여행하다가, 우연히 비를 피해 몬다스 남부 끝에 위치한 사미타이(Samitai) 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고 그 일에 대한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인근에 항구도 있고, 상당히 큰 도시였어. 항구 부근에 대학이라 칭해지는 대형 교육 기관도 있더라. 그 곳에서 그런 옷차림을 한 사람이 많이 보였어."
  그리고 사미타이의 사람들은 그런 유형의 옷차림을 전통 의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밝힌 이후에 그 연원을 알 수는 없지만, 먼 과거부터 그들은 그런 옷차림과 같은 고래부터 이어져 온 유산을 전통으로서 유지하고 있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그 의상 역시 이러한 '전통' 의 일환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그 곳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즉, 그들은 먼 옛날, 성계가 솔리아테로 칭해지던 시절 이래로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어 온 여러 관습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자신의 전통으로 소화해 갔던 것이지, 그 고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 여기면서. 그런 식으로 몬다스 일대에는 옛 시대의 유산들이 많이 남아있대. 물론, 그 전통을 이어갔던 사람들의 대는 전부 끊겼겠지만, 정령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에 있던 이들을 조상으로 여기면서 그 명맥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라넬리스 남서부 인근에도 그런 풍습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을 걸, 시간이 나면 가서 확인해 봐."
  설명을 마치며 에르시아는 마지막으로 라넬리스 인근에도 그러한 이들이 있으니 확인해 볼 것을 권하였고, 그 이후에는 달리 말할 일이 없었는지 조용히 배 위에 앉아있으며 두 손을 머리 뒤로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는 동안 그는 몸을 기울여 머리가 수면을 향하도록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 자칫하면 몸이 기울어져 물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잘못하면 물에 빠진다, 조심해."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바로 조심하라고 당부의 말을 건네었고, 그 말을 듣자마자 에르시아는 걱정 없다는 듯이 낙천적인 모습을 보이며 괜찮다고 바로 화답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레잔은 다른 말 없이, 나와 에르시아를 배를 통해 도시의 동부 지역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정으로 이루어진 특이해 보이는 가옥들이 가득한 거리의 먼 너머로 흥겨운 느낌을 주는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질 즈음, 레잔으로부터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목적지로 도착했으니,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다 왔어요, 모두. 이제 내리셔야지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부터 우선 그가 강가에 대어놓은 배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걸으며, 강가에 이르고, 이어서 에르시아가 그 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폴짝 뛰면서 강가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이후, 나와 에르시아 모두 강가에서 배를 바라보며 서려 할 즈음, 에르시아가 밝게 목소리를 내며 레잔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였다.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까지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 거지요." 그러자 바로 지나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갈 준비를 하며 화답을 하는 레잔. 그 이후, 그는 자신에게 이름을 가르쳐 줄 필요는 없다고 당부의 성격을 띠는 말을 건넨 후, 다시 노를 저어 배를 움직이면서 뒷모습을 보이는 채,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텐데, 이름을 알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왜 그가 나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느냐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에 그가 그 물음에 답을 하길,
  "하지만 저는 당신께 이름을 밝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신이라면 제가 이 곳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세상에 작게나마 알리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그런 그의 예감이 당시의 나에게는 뜬금 없다고 여기어지기도 했지만, 지금 들어서는 그 예감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나는 이 곳에서 레잔이라는 인물에 대한 작은 이야기, 그 하나를 글로써 남기려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레잔이 그런 사실을 과연 알고는 있을까, 거기까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드디어 도착했다----!!!!"
  새하얀 수정으로 이루어진 시가지의 지면을 밟으며, 에르시아가 두 팔을 높이 들어 기지개를 켜면서 있는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배가 떠난 이후, 작별 인사를 한 이후, 도시의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돌아서면서 그가 취한 행동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대해 나는 그의 피로가 확실히 풀렸음은 물론, 그가 자신이 도착한 곳에 있을 일에 대해 에르시아가 무척 큰 기대감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간주하고 있었다.
  이후, 강가를 따라 계속 걸으며, 나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가옥들이 나란히 자리잡은 곳에 여러 상점들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하나의 길을 사이에 두고 좌측에는 상점들이, 우측에는 등의 역할을 행하고 있을 꼭대기 부분이 수정으로 이루어진 가느다란 탑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었다.
  나, 에르시아뿐만이 아니라 아침 일찍 거리로 나온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 그 길을 따라 들어선 상점에서는 한 사람씩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진열되어 있는 과일이나 채소 혹은 각종 물품들을 홍보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개중에는 큰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었고, 조용히 가게를 지키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이 각각 다르듯이, 상점의 모습도 상점을 이끄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각자 다른 면모를 가진다.
  그 상점가에 있으면서 사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전에 얻어먹은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계속 배가 고파, 무언가 먹을 것이라고 마련해 오고 싶었는데,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내가 음식물을 사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결국 상점들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을 맞이한 항구 인근의 광장은 유난히 분주했다. 사람이 움직이는 사자 모양의 조형물을 움직이는 연습이 한 곳에서 행해지고 있었으며, 수정으로 만들어졌을 거대한 동물의 형상들이 자리잡은 거리 곳곳에서는 공연의 마지막 예행 연습을 위해 분장하였을 소녀들이 아침 식사를 위함인지 식당으로 운영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모였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광경이 나타나기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광경들이 모인 거리의 모습을 보며, 이전에는 느낄 수 없는 흥겨움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참 오기를 잘 한 것 같아, 그렇지, 유네아?"
  축제로 인해 분주한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에르시아가 나의 곁에 있으면서 건네는 물음. 그러는 동안 나는 그로부터 시선을 돌려, 광장으로 들어서는 서부 길목에서 광장의 분수대 근처를 바라보며 그 곳에 자리잡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나와 비슷한 바람의 정령이었으며, 다른 두 사람은 몬다스 지역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가면극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분장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의 모습은 내가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전에 헤어진 이래, 만나지 못하고 있던 샤리에나였다.
  하지만 그와 함께 있던 도로시아 그리고 크세비아 등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역시 배 안에 있어서 축제가 펼쳐지는 거리 구경을 하지 못하고 있는 탓일까.
  "에르시아, 일단 광장의 분수대로 가 보자."
  이후, 나는 그렇게 그에게 광장의 분수대로 가 보자는 말을 건네며 그의 오른손을 왼손으로 잡은 채, 곧바로 세 사람이 모인 분수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페이란 - 동부 광장
  처음 페이란을 소개할 당시에는 거론하지 않았으나, 당시 페이란의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서, 이제 막 아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저녁이라도 된 것처럼 어두웠다. 그리고 그 검은 구름은 대충 보고 있으면 확인할 수 없지만, 여러 구름들이 겹쳐서 생긴 무늬가 그려져 있어 거대한 한 장 짜리가 아닌 여러 개체가 겹쳐 있는 형상이라서 쉽게 사라질만한 그런 것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와 관계없이 축제를 맞이한 페이란의 모습은 흥겨워 보였다. 곳곳에서 동방 대륙 특유의 느낌을 주는 듯해 보이는 흥겨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거리의 곳곳에 축제를 맞이해 밖으로 나왔을 사람들이 몇 사람씩 모여 분수대 근처나 광장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주로 즐거운 일에 관한 가벼운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심각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어서 그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축제 때에는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구름이 드리워져 날씨가 어두워진 탓인지 밤을 위한 장치가 하나씩 마련되고 있었다. 유리로 이루어진 건물마다 둥그런 천으로 감싸인 등이 밝혀져 붉은 빛을 띠고 있었으며, 몇몇 건물들은 유리로 이루어진 벽면마다 초록색, 파란색 혹은 보라색을 띠는 빛으로 물들여지는 듯한 광경을 드러내며 평상시와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지 건물이 그렇게 색을 띠게 되니, 마치 보석으로 이루어진 집 같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우연히 발견한 어느 하얀 유리로 이루어진 집은 초록색을 띠는 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비취로 이루어진 집과 같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엇다.


  페이란의 서로 겹쳐진 구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떠오른 것은 바로 그 구름 요새였다. 사실 435 년의 구름 요새도 최초는 아니고, 먼 옛날 세니티아의 전설 시대에 타락한 사도들에 의해 태어난 네비유(Neville) 라는 이름을 가지는 이들을 멸절하기 위해 신이 건설하여 운용하였다는 요새가 그 시초이기는 한데.
  '설마 그 구름 요새처럼 성계의 모든 수분을 빨아들이는 능력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겠지.......?'
  구름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혹시나 있을 일에 대한 걱정이 들어 그런 혼잣말이 나오기도 하였다. 물론 무의미한 걱정이었고, 내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 바로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나는 에르시아와 함께 도시의 동쪽 광장에 이를 수 있었다. 그 곳에 이르자마자 샤리에나를 알아보고, 바로 그의 이름을 외치는 에르시아. 이에 샤리에나가 바로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잠시 후, 가면을 쓴 이들에게 무언가 당부의 말을 건네면서 그를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에르시아 양, 여기에 계셨네요,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서 세니티아에 남으실 줄 알았는데."
  "굳이 세니티아에 머무르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자 에르시아는 곧바로 그의 말에 화답을 하고서, 그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바로 물었다. 그러자 답으로써 연극을 준비하는 두 사람의 일을 봐 주고 있음을 밝히는 샤리에나. 그리고 일린, 라이마의 두 사람이 연극에 도전하겠다고 나서기에 바로 극단에 들여보내고, 준비를 시키고 있음을 밝히고서 곧 아침에 있을 공연을 위해 이들 모두 나서야 할 필요가 생겼다고 그들의 사정에 대해 알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다면 거기 있는 사람들이, 샤리에나, 너의 친구들인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자 바로 화답을 하는 샤리에나. 그리고 곧 이들을 이끌고 가야 하니, 다시 떠나야 할 필요가 있음을 밝히며 분주히 두 사람을 향해 뛰어갔다가, 바로 이들을 데리고 분수대의 왼편에 보이는 먼 곳으로 나아가며, 그 모습을 감추었다.
  "다른 사람들도 와 있을까?" 그렇게 샤리에나가 일린 그리고 라이마를 일으켜 세운 이후에, 이들을 데리고 떠나갈 무렵, 에르시아가 물음을 건네자, 내가 그 답으로써 모르기는 해도 와 있을 것이라고 화답을 하고서 한 번 찾아보자고 그에게 제안을 한 이후에 분수대 주변을 둘러보며, 어느새 분수대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오른 다리를 두 손으로 끌어안은 채, 들고 있으면서 왼 다리를 바닥으로 내리고 있던 에르시아에게 물었다.
  "에르시아, 이제 어디로 갈까, 갈 수 있는 곳이 많은데."
  "배가 고프니까, 과자라도 사 먹게, 식당 거리로 가자. 그 곳에서는 간단한 요깃거리를 파는 가게가 유난히 많을 것 아냐, 축제이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나는 에르시아를 이끌고 요깃거리를 얻기 위해 바로 식당가를 찾기 위해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잠시 쉬기 위해 폴짝 뛰어 에르시아의 우측 곁에 앉으려 하는데 그 순간, 나와 에르시아의 왼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봐, 아가씨들." 그 때,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이지요?" 라고 별 일 없는 듯이 묻는 에르시아. 하지만 그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통해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에 바로 분수대의 가장자리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을 향해 돌아선 이후, 목소리를 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바로 보려 하였다.
  흡사 작업복 같은 푸른색으로만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초로의 남성이 오른손에 책자를 낀 채, 나와 에르시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상의 모습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으며, 그가 도시의 관리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바로 할 수 있었다.
  "국가 보물 유적지에 함부로 올라서는 것은 문화재 훼손 행위 중 1 급에 해당된다. 그 사항으로 인해 일 커지기 전에 어서 내려오는 게 좋아."
  경고를 하는 듯이 차갑게 쏘아붙이는 남자.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 에르시아도 가만히 있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는지 바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그렇게 에르시아까지 내려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남자는 다른 말없이 나를 등지는 방향으로 어딘가를 향해 떠나갔다.
  "저 사람 누구야, 정령 중에 저렇게 생긴 사람은 보지 못했는데?"
  이후, 다소 기분이 상했는지, 약간 격해진 목소리를 내며 물음을 건네는 에르시아. 이에 내가 그 답으로써 예로부터 성계에 살고 있던 인간의 후예일 것이라고 말한 다음에 세니티아에도 간혹 인류의 후예가 마을에 사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고 묻고서, 그와 같은 이치로 해석하면 좋을 것이라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야, 이를 통해 분수대가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 곳임을 바로 알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수정으로 이루어진 분수대를 향해 돌아서니, 나의 눈앞으로 수정으로 이루어진 나신의 조각상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으면서 두 손으로 안은 물병에서부터 물을 흘러내리게 하는 듯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머리를 묶어 올린 미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그 조각상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물병을 물을 향해 기울이고 있었으며, 그런 형상을 따라 올라왔던 물이 그대로 아래로 작은 폭포수의 흐름처럼 수면을 때리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중 작은 물방울은 나에게 닿아 차가운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설마, 저 조각상을 내가 앉아 있으면서 건드릴 것이라 생각했나.'
  그 조각상을 올려다보며, 그에 대해 혼잣말을 할 무렵, 에르시아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와, 어디라도 좋으니 일단 식당가를 찾기 위해 나서보자고 청하고 있었다. 나신 조각상의 모습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던 나였지만, 그런 그의 성화에 결국 나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내 오른손이 그의 왼손에 잡힌 채, 그저 그가 걷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되었다.

페이란 - 동북부 상점가
  끌려오면서 이른 곳은 페이란의 동부 시가지 중에서도 북부에 해당되는 구역의 거리였다. 기나긴 길을 중심으로 좌우로 상점들이 나란히 서 있는 곳. 그 곳 역시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고 있는 탓인지 곳곳에 화려한 치장이 이루어지는 등, 들뜬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유리로 이루어진 건축물마다 색종이와 천으로 이루어진 등에 의한 치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리로 이루어진 투명한 혹은 새하얀 건물의 벽면마다 새빨간 등이 걸리고 벽면마다 형형색색을 띠는 그림이 걸린 액자가 놓여졌다. 유리로 만들어진 골대를 기반으로 한 형형색색의 천막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축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거리의 곳곳마다 용이나 사자 혹은 토끼와 같은 상상 혹은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형형색색을 띠며 빛을 발하는 거대한 수정 조각상들이 거리를 걷는 나를 반겨주고 있었으며, 이외에 길가마다 세워진 판자에 그려진 그림들과 그림이 그려진 액자가 진열된 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대한 판이 대에 받쳐지고 있는 구조물 등이 놓여진 모습이 거리의 모습이 특별한 분위기를 맞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광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점 거리 역시 빛으로 물들여지고 있었다. 광장에서보다 더 많이 물들여진 것처럼 보이는 집들. 이 같은 식으로 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모습이 보석으로 이루어진 집 같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있음 역시 광장에서 본 건물들의 특성과 유사한 데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얀 수정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파랗거나 하늘색으로 물들여져 있어서 비취의 모습을 보는 듯한 집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다만,
  "하늘색 보석으로 이루어진 집의 모습도 보이네."
  라고 말하는 에르시아의 반 농담의 성격을 띠는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그 집의 모습을 보며 하늘색을 띠는 투불투명한 돌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그 검은 무늬가 그려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둥글게 가공해 반지로 만드는 그 하늘색 보석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어둠 속에서 건물들이 보석으로 만들어진 듯히 형형색색으로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이는 만큼, 사람들도 유난히 많았다, 각자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옷차림을 한 이들이 거리를 걸으며, 진열된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개중 일부는 구조물 근처에 머무르며 구조물에 붙은 액자에 진열되거나 구조물의 유리로 이루어진 면에 직접 그려진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하얀 블라우스에 파란빛 짤막한 스커트를 입었으며, 목깃에 리본을 매고 있는 소녀 3 ~ 5 명이 모여있으면서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는데, 1 년에 한 번 있는 축제 때에 열람되는 그림들의 관람을 위해 온 이들인 듯해 보였다.
 
  그러한 길목을 축제로 인해 아침부터 유난히 분주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다가 상점 거리의 한 구석에 놓여진 빈 벽보를 우연히 발견하였다가, 그 벽보를 향해 돌아설 무렵, 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혹시, 무슨 일인지 궁금하세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나의 뒤쪽이었다-을 향해 돌아서는 순간, 나는 나의 바로 눈앞에, 오른손에 분홍색 종이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연꽃 모양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 앞머리를 뒤로 밀어내고 긴 머리카락을 등까지 내리고 있는 한 여성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의 소매가 없는 상의와 긴 치마, 그리고 하얀색을 띠며 소매 부분이 어깨와 팔목 사이에 이르고, 폭이 좁아 몸에 붙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여성, 그는 나의 모습을 보며, 축제 관람을 위해 온 외지인 아니냐고 물은 다음에 데르 샤라인에서 온 사람 같다는 언급을 한 이후에, 혹시 데르 샤라인에서 축제 구경을 위해 온 사람이냐고 물음을 건네는 것이었다.
  데르 샤라인에서 온 사람은 아니었으나, 데르 샤라인에서부터 출발하긴 했으니, 그렇게 대답을 해도 상관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였던 나는 바로 그렇다고 답을 한 이후에 그 빈 벽보를 보고,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의 말을 바로 건네었다.
  "벽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있는지 알고 싶으신 것이지요?"
  그러자 바로 내가 부탁한 바에 대한 말을 한 이후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여성. 그리고 종이에 소원에 관한 글을 쓰고 벽보에 붙이는 일이 그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 곳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축제 관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각자 품고 있는 소망을 알려서,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기원해 보기 위한 행사의 일환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설명을 이어간 이후, 벽보에 대한 언급을 한 마디 더 잇는 여성. 그리고 이와 같은 시설은 날이 보다 밝아, 점심을 먹을 시간 즈음에 행사가 개최되는 것과 시간을 맞춰 완성되고, 개방이 되며, 그 때 이후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고서, 자신이 한 말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끝으로, 대화를 마친 이후에 인사말을 전하고서, 곧바로 나의 곁을 떠나, 왼쪽 방향으로 길을 이어갔다.
  설명을 해 준 여성이 내 곁을 떠나간 이후, 다시 벽보를 향해 돌아설 무렵, 에르시아가 뭔가 알아차린 바가 있었는지 밝게 목소리를 내어 자신이 아는 바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말씀을 들으니 알겠네, 이전에도 본 적이 있잖아, 소원을 말해서 그에 관해 타일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또 작은 접시에 소망 기원이 담긴 그림을 그려 소장하게 하는 경우 말야,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그런 종류의 일 같아."
  그리고 이전에도 샤리에나가 타일에 소망 기원이 담긴 그림을 그려 지난 해, 도시의 축전이 개최되었을 때에 광장에 전시한 적이 있었음을 밝혔으나, 당시 나는 행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탓에 샤리에나가 그런 물품 전시를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라,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저 생소할 따름이었다. 그러자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에르시아 역시 내가 이전에 일을 하고 있었음을 겨우 상기하며 멋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맞다, 그 때, 너, 일을 하고 있었지? 행사장 뒤편에서 정리를 하거나 물품 운반을 맡는 그런 일."
  "그랬었지, 그 때 불꽃놀이 폭탄이 터져 불꽃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행사장에 가고 싶었던지. 차라리 마을 밖으로 보냈으면 괴로울 것은 없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그러자 내가 답으로써 작년에 있었던 축제 때에 일을 맡는 인원에 포함되어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며, 그 심정을 토로하며 말을 걸었고, 이에 에르시아는 그저 환하게 웃기만 할 뿐, 달리 대답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축제 도중에도 여러 작업을 해야 했을 뿐만이 아니라,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쓸쓸해진 거리 청소까지 맡아야만 했었다, 물론 그 수당은 상당한 편이었지만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를 이어가며, 길을 걷다가 마침내 광장에서 이어지는 길목 시작점에서 10 번째 건물에 이르렀을 무렵, 과자를 판매하기 위한 곳으로서, 손바닥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과자들을 진열하고 있는 가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투명한 유리가 초록색을 띠며 마치 녹주석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의 모습을 바라본 이후, 나는 그 가게를 오른손으로 가리키며 에르시아에게 그 가게로 가자고 청하였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