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렐에 대한 의심의 말을 내던지면서, 나의 나렐에 대한 믿음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여태껏 바르코스로부터 버림을 받아, 마리아 에르세레즈와 함께 하면서, 인간성을 얻었으리라는 그에 대한 나의 생각에 하나의 변수가 생겨난 것이었다, 물론 아직 가능성에 불과했을 따름이지만, 행여 사실일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마음에 부담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음은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나를 맞이하는 듯이 갑자기 행동을 멈춘 바르코스 군은 병기 하나조차 미동조차 하지 않는 채, 가만히 한 자리에 머무르고 있기만 할 뿐, 달리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공중 부양을 위해, 중심부의 가동은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배기 장치가 빛을 발하고는 있었으나, 만약 우주 공간 같은 곳이었다면, 그 중심부 역시 꺼졌을 터이다, 무중력 공간이라면 부양을 위한 힘을 들일 필요는 없었을 테니.
  특별한 이유 없이 행동을 멈춘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며, 그 진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서 나는 서서히 '수호자의 검' 인 것처럼 보이는 거대 병기를 향해 다가가, 마침내 그 선수 부분의 바로 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선수 부분의 자세한 면모. 중앙 부분의 양쪽에 홈이 파인 도검의 날처럼 생긴 그 부분의 홈을 기준으로 앞쪽에는 원형을 이루는 3 개의 장치가, 그리고 그 뒤쪽에는 수십 여 개의 네모난 장치들이 2 열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으며, 홈의 뒷 부분, 그 좌우측 면에는 하나씩 날개를 가진 검상의 검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우측면에는 화려하게 치장된 글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지만, 바르코스의 언어를 알 수 없었던 탓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이건 틀림없이, 수호자의 검일 텐데."
  그 때, 들려오는 한 마디의 목소리, 좌측 곁에서 나와 함께 그 거대 병기를 향해 다가가던 에르시아의 목소리였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러면서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화답을 하였다. 그와 더불어 내가 접근을 시도하자마자 그들의 행동이 갑자기 멈추었음을 알리며, 그에게 물어,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건네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예상하고 있는데?"
  이에 바로 그렇게 되묻는 목소리를 내는 에르시아. 이에 대한 추측이라면 나도 하고 있긴 했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는 에르시아에게 물음을 건넨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가 말을 열지 못하자, 에르시아가 비로소 말을 잇기 시작하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 말을 들으며, 에르시아 역시 짐작하지 못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선수 부분을 지나, 선교 역할을 행할 법한 비행체처럼 생긴 부분에 이를 무렵, 갑자기 선교에서 좌우 한 무리씩 갑주형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 나의 바로 앞에서 합류하여 사다리꼴 모양을 대형을 이루며 공중에 머무르려 하였고, 이어서 비행체로 추정되는 곳에서부터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은 곧 나타나게 될 이가 해 줄 것이라 말하고서, 곧바로 "나오너라!!!" 라는 명령을 내리는 목소리를 내니, 잠시 시간이 지난 이후에 붉은 빛 한 줄기와 함께 병기들의 바로 앞에서 은색 갑주의 형상을 이루는 비행체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다름 아닌 이전에 수정 도시 중앙의 호수 지역에 남아있던 나렐이었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었음을 잊었는지, 다시 이전의 기계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채로, 오른팔을 뻗어, 검의 끝이 나를 향하도록 하면서 말하였다.
  "도로시아라는 이름을 가지는 꽃의 나라에서 온 자를 바르카디아 요새에 머무르도록 하고 있다. 바르카디아 신전의 의식에 쓰일 제물들이 되었으니, 그리 알도록."
  그리고 파랗게 눈을 밝히면서 그들을 구출하고 싶다면, 바르카디아 요새로 오라는 말에 이어, 곧 문이 제공될 것이니, 그 문을 통해 오면 되리라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그리고 도로시아, 크세비아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겠느냐고 묻고서, 당연히 구출해야 하지 않느냐는 물음을 이어서 건네었다.
  "그 생각, 누구의 생각이지? 키에렌, 그 자의 생각인가?"
  야스모르 성계 출신으로서, 세니티아의 구원을 위해 온 도로시아 그리고 크세비아는 분명 내가 소중히 여기어야 할 필요가 있는 이들이었지만, 야스모르 성계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고, 내가 그들에게 특별한 감정 같은 것을 가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가 한 말에 대해, 나는 그저 터무니없는 추측으로서 나를 도발하기 위한 발언으로 판단을 내리고, 그와 더불어 나렐이 다시 키에렌의 지배 하에 들어가, 그의 의사대로 행동하게 되었기에, 그런 물음을 건네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건네는 하나의 물음에, 나렐은 바로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이어서 건네고 있었다. 그 때, 에르시아가 나를 앞질러서는 격정을 드러내며 외쳤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은 곧, 소중히 여기는 것은 곧 상대에 대한 '애정' 이 있음을 의미하며, 이 '애정' 은 반드시 '사랑' 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아니겠느냐는 말이잖아! 그런 궤변을 내세워서, 사람의 마음을 혼란에 빠뜨리겠다는 심산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리고 이전에 비해 차분해진 목소리를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유네아는 그저 이들을 고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마음을 기울였던 것일 뿐이야,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좋은 마음은 있었어, 그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지지는 않을 지언정, 그들의 좋은 면모에 이끌릴 수 있었지. 그러니까, 상대에 대한 모든 좋아하는 행위가 사랑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궤변이 아닌, 도로시아와 크세비아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일 뿐이며, 방금 전의 궤변은 유네아의 마음에 혼란을 가해, 그의 의지를 꺾겠다는 키에렌의 의도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주장을 내세운 다음에 다시 분기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유네아가 도로시아, 크세비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키에렌이 알고 있었을 리는 없었을 거야. 누군가에 의해 그 사실이 유포되어, 키에렌의 두뇌에까지 닿았겠지, 그래서 키에렌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가 소중히 여긴다고 간주되는 이들을 납치했을 거야. 그렇다면, 그 키에렌에게 정보를 알린 이는 유네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일 터인데, 유네아가 너를 제외한 바르코스의 병기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가 아무 말도 잇지 않으려 하자, 말을 잇지 않는 것을 보니, 그일 것임이 틀림없으리라는 말을 건네고서, 다시 한 번 격하게 목소리를 내며 외쳤다.
  "너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다, 바르코스에 의해 배신을 당한 이후, 마리아 에르세레즈의 의지를 받아, 그의 노력을 통해 인간성을 얻고, 더 나아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검까지 유네아에게 넘기기까지 했었지.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유네아, 그리고 마리아 에르세레즈라는 이름을 가지는 이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연기였다는 건가!?"
  "후후훗...... 말은 어지간히도 잘 하는군."
  그러자 바로 비웃는 듯한 목소리를 내며 화답을 하는 나렐. 그리고 자기 자신이 나에 대해 키에렌에게 밝힌 적이 있음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바로 추측을 통해 알아내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놀랐다는 말을 하고서,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다시 내렸다. 그리고 차가움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쓸데없는 대화는 이 정도로 하지, 사실 해야할 말이라면 벌써 다 했으니까. 혹시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다면, 지금 해도 좋다."
  이에 에르시아가 바로 분기를 여전히 갖고 있음을 알리는 목소리를 내며 화답으로서, 그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를 내려 하였다.
  "너를 위해 노력을 해 준, 마리아 에르세레즈나, 너를 죽이지 않기 위해 너의 몸에서부터 제오를 분리해내는 수고를 해야만 했던 유네아의 노력, 그것을 저버린 대가는 반드시 갚아야 하겠지. 그 대가를 갚게 하기 위해서라도,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너의 육신을 처절히 파괴시켜 놓도록 해 주겠어. 네 정체가 무엇인지는 이제는 상관없어, 남의 노력을 원수로 보답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의 정체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리고 나에게 이런 사람은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물론 나도 설마 했던 일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을 진작에 죽이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의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밝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죽이지 않겠다고 말하기라도 하면, 그로부터 비웃음을 살 것이 너무도 뻔해 보였다. 그래서 그의 행동에 대해, 나 역시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려 하였다.
  "나 역시 이제는 너를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 나렐.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 역시 심하게 놀라고 있었고, 그러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었지. 하지만, 결국 배신이 진심이었다면, 은혜를 저버린 대가만큼은 확실히 치르도록 해야 하겠지, 지금 이후로 너를 만나는 순간, 나는 너를 여태껏 마주쳐 왔던 바르코스의 병기와 다를 바 없이 대할 거야, 이후에는 어떤 구원의 호소도 듣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알고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애원을 듣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대해, 처음부터 신뢰를 할 만한 행동을 했다면, 가혹한 대가를 받을 일은 없지 않았겠느냐는 물음을 건네어,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사 전달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나에 대하여 바로 비웃는 목소리를 내는 나렐. 그러면서 말하였다.
  "그 말대로, 나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을지, 아니면 용서하지 않을 기회라도 마련할 수 있을 지, 한 번 지켜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어디까지 갈 지, 일단은 그것부터 이 '아론다이트(Arondight)' 의 함교 안에서 지켜 볼 수 있도록 하마."
  이후, 병기들과 함께 배 안으로 돌아가는 나렐. 그 이후, 갑자기 기계 장치의 가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나렐이 '아론다이트' 라 칭하였던 거대 비행체가 급부상하기 시작, 이어서 아론다이트를 위시한 주요 비행체들이 머리를 뒤로 돌리고서, 그대로 자신들이 나아갔던 그대로의 역으로 물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한 남성적인 기계음이 나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이 상태에서 급습을 감행하려 하기라도 했다가는 이 도시 전체가 유리 가루가 될 수도 있다, 어지간하면 가만히 있도록 하는 편이 좋을 거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병기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그대로 검은 하늘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고, 페이란을 향하고 있던 일대의 위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론다이트 측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대로, 지켜보기만 하고 있을 뿐, 다른 행동은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페이란 전체가 재앙에 휩싸일 가능성을 염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에르시아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그 역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렇게 페이란의 불안한 상황은 끝이 났지만, 절정을 이루었다가 잠깐의 사건으로 끝이 난 침공으로 인해 부서져 버린 축제의 분위기까지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위해 거리를 떠난 상태였고, 또 철회한 가판까지 있다보니, 결국 원래는 밤새도록 이어질 예정이었다는 이후의 모든 행사는 취소되어야만 했다. 그나마, 다음 날 이후,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할 조짐이 없다면 축제는 이어진다는 공식 발표가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축제를 위해 켜 두었던 건물의 빛과 종이로 만들어진 등의 불빛이 사라지며, 거리는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꼭대기에 등이 밝혀진 빛을 제외하면 모든 빛이 사라져, 어둠에 감싸인 곳이 되었다, 더욱이 축제로 인해 달아오른 분위기가 한 순간에 식은 이후의 거리였던지라 쓸쓸함은 더욱 컸다.
  "후우...... 축제가 끝난 다음의 분위기란 이런 건가."
  상황이 정리되고, 헤어졌던 일행이 모일 무렵, 예즈라가 주변 일대를 둘러보더니,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한 마디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왼편으로 돌려, 루마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끈이 달린 종이 봉투 안에 물건을 가득히 안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라? 루마 양, 그 물건들은.......?"
  "지금껏 만들어 두었던 물건이에요, 본래는 그 천막에 두려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가 만든 물건들이 깨어질 수도 있다 생각해서, 그냥 들고 왔어요."
  이에 그저 미소를 짓기만 하는 예즈라. 그리고 잠시 후에, 루시아, 파렐리아의 배가 도착해 있으니, 그 배로 가도록 하자고 말하면서 배는 페이란의 동쪽에 위치한 항구에 정박해 있으니 바로 찾을 수 있을 것임을 알리며, 동쪽 항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그에 맞추어 나 역시 다른 일행과 함께 동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 무렵,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항구의 거리는 새벽 시간 때처럼 적막한 모습만을 보이게 되었는데, 이게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축제 분위기 속에서 활발하던 곳이었던 탓에 두 순간을 비교하는 동안 묘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과연, 항구에는 루시아가 공간 이동을 위해 마련해 놓은 배가 정박해 있었으나, 배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못했다, 일전에 키에렌 측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통해, 짐작한 대로, 과연 도로시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루시아, 그리고 파렐리아는 여전히 차분히 행동을 취하고 있었지만 크세비아는 거의 울상이 된 채, 갑판 위로 오른 나, 그리고 에르시아를 반기고 있었다.
  달리 말하지 않고, 크세비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여 키에렌이 도로시아를 납치하게 된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그 때, 루시아가 갑판 위로 올라오더니, 그의 좌측 곁에 위치한 채, 나를 바라보려 하였다. 차분하면서도 침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를 내며, 그는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답을 하는 것이었다.
  "나렐이라는 자가 배로 찾아왔어요, 도로시아의 옛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물론 바르코스의 병기임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바르코스에 의해 버림을 받고, 유네아 양을 비롯한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자기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바르코스에게 추격을 받고 있으니, 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말을 하며, 받아달라고 간곡히 요청을 하자, 결국 그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요."

  파렐리아는 그를 계속 의심했지만, 간절한 요청을 거절하기에는 자신의 마음이 무거워 어쩔 수 없었음을 밝히는 루시아. 그리고, 그는 한 동안 도로시아, 그리고 크세비아와 함께 잘 지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크세비아의 수호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하였기에, 한 동안 그를 의심하다가도, 그를 완연히 믿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풀릴 때가 되자마자 바로 배신을 한 것이로군요!"
  이야기를 하면서 크세비아를 자신의 왼쪽 어깨 위에 올라가도록 할 무렵, 에르시아가 뭔가 짐작해 낸 듯이, 그렇게 물음을 건네자,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그렇다고 답을 하는 루시아.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으며, 자신이 끝까지 그를 냉정히 바라보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실책이었다고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배신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나렐이 보인 배신의 징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동안 나렐이 배신을 위한 사전 행동을 취한 적이 없었기에, 그 징조 자체를 볼 수 없었음이 그 이유. 즉, 나렐은 갑작스럽게 그 행동을 취하고, 바르코스 군을 불러왔다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배의 왼쪽 갑판의 내벽에 기대어 서 있으려 하였고, 그 곁에 에르시아가 머물렀다. 그리고 에르시아의 어깨 위에는 크세비아가 올라타 있었으나, 그 표정이 이전 때와는 달리 침울했다, 아무래도 이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그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아팠던 탓이리라. 그러는 동안 갑판 위의 한 가운데에는 샤리에나가 머무르고 있으면서 아미라, 에리타 그리고 시에나와 놀아주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야, 모두." 그 때, 온화하게 목소리를 내며, 축제 때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떨어야만 했던 어린 소녀들의 호소에 답을 하는 샤리에나. 그리고 아미라를 두 손으로 조용히 안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만큼은 축제에 대한 좋은 추억을 심어줄 수 있었는데, 어떡하니."
  그 광경을 한 동안 지켜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난 바 있어서, 바로 고개를 돌려 우측에 서 있던 에르시아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정말, 루시아 양께서 잘못한 것일까. 에르시아, 그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러한 나의 물음에 대해, 에르시아는 생각할 시간 없이, 곧바로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답을 한 이후에, 루시아의 선한 마음을 나렐이 이용한 것인 만큼, 루시아가 가책을 할 이유는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나렐에 대한 분기가 다시 폭발했는지,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를 위해 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닐진대, 이 모두를 배신해? 참 어이가 없지 않아?"
  그런 그의 목소리를 나는 에르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린 채, 그저 미소를 짓는 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 걱정을 하게 되었다, 도로시아 역시 시아란 공주처럼 바르코스에 의해 희생될 것에 대한 우려가 바로 그 걱정의 원인. 하지만 배 위에 서 있기만 해서는 그 우려를 불식시킬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야스모르 성계로 가야만 그 우려를 해소시킬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그 때, 갑판 위로 일린 그리고 라이마가 올라와, 갑판 위에 서 있던 샤리에나와 만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샤린, 여기 있었구나, 알리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올라오자마자 샤리에나와 마주치려 하면서 물음을 건네는 일린. 이후, 그는 하늘 위에 하나의 현상이 생겼음을 알리며, 누군가가 만들어 낸, 거대한 문과 같아 보였음을 알리고서, 한 동안 그 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지에 대해 알아내려 했음을 밝혔다.
  "그렇구나, 모두 수고했어, 혹시 알아낸 바가 있니?"
  그러자 바로 그에게 물음을 건네는 샤리에나. 이에 일린의 우측 대각선 뒤에 서 있던 라이마가 일린의 우측으로 다가오면서 물음에 대한 답으로써 그에 대한 언급을 하기 시작하였다.
  "야스모르 성계를 향하고 있는 듯 했어.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목표지만큼은 거의 확실해."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바르코스 측이 이전에 선언한 대로, 성계를 향하는 문을 마련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며, 그러면서 가급적이면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제 어떻게 도로시아를 바르코스 군이 해할지 모른다, 라는 생각이 그 근거.
  "그 문은 어디에 있지? 동쪽 바다 멀리에 있는 거야?"
  "응." 이후, 샤리에나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하는 일린. 이어서 라이마가 루시아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음을 밝힌 다음에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안에 도로시아를 납치하며 배신을 가한 나렐을 벌하고, 도로시아를 구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이어 건네고 있었다.
  "그래야 하겠지, 우선은 루시아 양께 사실을 알린 이후에 관련 논의를 시작하도록 할게."
  그 이후,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배 안으로 들어가는 샤리에나.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날 무렵, 선상 회의가 있으니, 모두 오라는 루시아의 지시가 파렐리아를 통해 들려왔고, 그 지시에 따라, 나와 에르시아, 그리고 크세비아도 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배의 내부로 들어오게 되었다. 회의는 이전에 아이들의 공연을 위해 활용되었던 그 식당 건물 내부에서 이루어졌다.

  지금껏 예즈라와 더불어 헤어져 있던 레야라, 그리고 리레아까지 참석한 가운데에 여행에 나서고 있는 13 인과 3 명의 어린 소녀들까지 포함된 16 명이 모인 식당에서는 식탁의 문의 왼편, 그 한 가운데에 앉은 루시아를 중심으로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제는 처음에는 '야스모르 성계에서의 행동 방침' 에 관한 것이었으나, 이후 곧바로 '문에 들어가야 할 사람' 에 관한 것으로 변경되었다, 파렐리아가 문을 관측한 결과가 나오면서부터였다.
  파렐리아의 관측 결과에 의하면 문은 상태가 불안정한 탓에 배가 들어갈 수 없으며, 사람도 9 사람 이상은 들어가지 못해, 그 제한을 초과할 경우, 늦게 들어온 사람들을 포함해 불안정해진 차원 공간의 특성에 의해 각자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8 사람까지만 문을 넘어가는 것이 허용된다는 말이지요?"
  루시아의 왼편 곁에 있던 파렐리아가 그렇게 발표를 마친 후, 나의 건너편에 있던 의자, 그 가장 오른쪽에 보이는 부분에 앉았던 루마가 그렇게 물음을 건네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는 화답을 하였고, 그 이후, 우선은 필수적으로 가야 할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도록 하겠음을 밝히며,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렸다.
  첫 번째로 언급된 이는 일린과 라이마로서, 샤리에나로부터 들려온 정보를 통해 라이마가 현재, 키에렌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검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통해 이들이 선별되었다. 두 번째로 언급된 이는 나와 샤리에나. 그리고 세 번째로 언급된 이는 3 명으로 예즈라, 루마 그리고 리아레안이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1 명. 혹시 거론되지 않은 이들 중 한 사람이 자원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이후, 발표되지 않은 사람 중에 자원할 사람 1 명이 있는지에 대해 묻는 루시아. 그 때, 그의 바로 왼편 가운데에 앉아있던 나, 그 우측에 앉아있던 레야라가 오른손을 들며 물었다.
  "혹시 루시아 양이나 파렐리아 양께서 나서실 일은 없는 건가요?"
  "저희들은 여기서 남은 사람들과 함께 도시에 머무르려 해요, 혹시 바르코스 군단이 또 강하하거나 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에 바로 파렐리아가 그렇게 화답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나의 건너편, 그 우측에 세 어린 아이들을 곁에 둔 채, 앉아있던 예즈라가 자신은 남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리레아와 레야라가 동시에 나설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그러자 바로 당황하는 목소리를 내는 루마.
  "하지만 리아레안 님도 그렇고, 예즈라 님께서도 야스모르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는 말을 건네기 시작하는 루마. 그러면서 예즈라는 여러 경험을 거친 숙련된 마법사로서, 마법 능력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면에도 능하고 있음을 밝히며, 야스모르의 수장인 키에렌, 그리고 배신을 가한 나렐을 정신적으로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 역시 필요할 수도 있음을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레야라 혹은 리레아 두 분 중 한 사람은 잔류해야 할 텐데...... 그렇다고, 9 명이 나서면 공간에 무리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곤란하고......."
  이런 의견의 엇갈림으로 인한 어려움에 놓였는지, 바로 난감해 하는 표정을 짓는 루시아. 그러자 내 왼편 곁에 앉은 에르시아가 바로 화를 내며 말하였다.
  "역시 바르코스가 곱게 문을 내어줄 리 없었어요, 그들이 어째 호의적이다 싶었다니까요."
  "저도 바르코스에게 뭔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런 것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네요, 하지만 바르코스가 가한 대가치고는 얌전한 편이네요, 그래도 적게 나마 사람들이 곱게 들어가게 해 주기는 하니까요."
  이후, 루시아는 바로 환하게 미소를 띠며 문에 대해 그런 언급을 하는데, 그 때, 파렐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로 식당을 나서려 하였다. 그러자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당황한 채, 물음을 건네는 루시아,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있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문의 상태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 그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그는 바로 문을 박차고 나갔으며, 이후, 급히 뛰어가는 발소리가 잠시 문 너머를 통해 들려왔다. 이후, 루시아가 다시 차분히 표정을 지으며 모임이 계속되며, 그와 함께 레야라 그리고 리레아가 8 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잔류하기 위한 인원을 정하는 일에 관한 토의가 계속 진행되었다.
  이후, 샤리에나가 나서서 자신이 잔류하겠음을 밝히고, 그 이유로서, 자신은 본래 유네아 등을 지켜봐 주는 역할을 맡고 있었음을 언급하는데, 그 때, 갑자기 파렐리아가 다시 돌아온 다음에 루시아의 바로 우측 뒤에 서 있으려 하면서 문의 상태에 변화가 생겨났음을 알리려 하였다. 그러자 바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 파렐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에 대해 물음을 건네는 루시아.
  "문의 상태가 변화했다면, 어떻게 변화했다는 거지?"
  이어 그에 대해 언급을 하기 시작하는 파렐리아. 문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다시 문이 생겨나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이어서 그 문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배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불안정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확실히 이전의 문보다는 안정성이 커졌어요. 8 명 이상 들어갈 수 있는 지의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정도면 9 명이 안으로 진입해도 무리는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은 할 수 있었지요."
  "9 명이 들어갈 수 있다면, 먼저 언급된 7 명에 레야라 양, 리레야 양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요?"
  그 때, 내가 앉은 곳, 그 왼쪽 끝에 위치하고 있던 샤리에나가 바로 발표를 행한 파렐리아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면서 물음을 건네자, 파렐리아는 "그러하겠지요, 아마?" 라는 화답을 하고서 일단 9 명이 나아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도록 하자는 제안을 건네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으니, 에르시아의 모습이었다. 이상하게도 나의 우측에 앉은 에르시아는 자신이 거론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차분히 앉은 모습만을 보이고 있을 뿐, 딱히 불만 같은 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그의 면모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고개를 돌리며 에르시아에게 그에 대한 물음을 바로 드러내는 목소리를 내었다.
  "에르시아, 무슨 일이야, 9 명에도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도, 아쉽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러자 바로 밝게 표정을 지으며 답을 하는 에르시아. 그리고 배에 들어올 무렵, 샤리에나에게 미리 상의를 해, 샤리에나에게 자신을 대신해 나서줄 것을 당부했음을 밝히는 것이었다. 즉, 본래는 나와 에르시아가 야스모르에 나서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를 대신해 일린 그리고 라이마와 친분이 있는 샤리에나가 나서게 되었으며, 그 대신으로 샤리에나를 대신해 자신이 시에나, 에리타 그리고 아미라를 보살피는 일을 맡게 되었다 한다.
  "잘 할 수 있겠어, 세 아이를 보살피는 일 말이야?"
  "하면 되겠지." 한 동안 외부 활동에만 전념하던 에르시아의 특성 상, 간만에 하는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추측을 하며, 그렇게 물음을 건네자, 에르시아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심정을 드러내려 하는 듯이 낙천적인 목소리로 화답을 하였다.
  그렇다 해도, 낙천적으로 생각할 만은 했다, 오랜만의 일이라 해도, 경험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샤리에나를 대신할 이가 없다면 그라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또, 경험이 경험인지라 옛 일을 상기하며 세 아이들을 보살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러하기에 그를 믿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이어서 하기도 하였다. 그 때, 이번에는 크세비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크세비아도 인원에 포함이 되는 지의 여부를 묻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크세비아는 어떻게 되지요? 그 역시 인원일 텐데, 들어갈 수 있나요?"
  "인원이기는 하지만, 작으니까 제한 인원에는 포함되지 않겠지요."
  루마가 건네는 그 물음에 파렐리아는 곧바로 괜찮을 것이라 화답을 하면서 일단은 9 명, 크세비아를 포함하면 10 명의 인원이 문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그 회의를 통해, 야스모르로 나가게 될 9 명의 인원이 정해지게 되었으며, 그 이후에 곧바로 문이 위치한 상공 바로 아래의 해수면까지 배를 움직이기 시작, 검은 하늘 위로 새하얀 빛을 발하는 곳에서 멈추었다. 검은 하늘 위에 떠올라 있는 거대한 물체, 그 물체를 자세히 보니, 여러 원들이 겹쳐 무지개색을 발하는 빛으로 이루어진 작은 원반을 이루고 있으며, 원반 자체가 불안정한 무늬를 그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크기는 직경부터 3.5 메타르 정도였기에 배가 들어가기에는 무리였다. 애당초, 배가 들어갔을 때의 불안정성부터가 아닌 크기부터가 문제였던 것. 정확히 말하자면 무리하게 배를 집어넣었다가 공간 자체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으리라. 또 이후에 조정되었다고는 하지만 빛은 심하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자칫했다가는 뭐라도 문제가 생길 법해 보였다. 이런 문의 너머로 나를 비롯한 9 명의 인원이 들어가, 야스모르 성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었다.
  그 빛이 위치한 곳, 바로 아래의 해수면으로 배가 이르렀을 무렵, 나를 비롯한 9 명의 인원들과 루시아, 파렐리아가 갑판 위에 올라가 있으면서 '문' 이 생성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내 머리 위에 두 무릎을 바닥에 대고 있는 채, 올라 앉아있던 크세비아로부터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9 명의 인원 전부가 들어가도 괜찮은 거예요?"
  "8 명 이하로만 들어갈 수 있는 문보다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니, 그 정도는 허용되겠지, 일단 된다고 가정하고 들어가도록 하자는 것이 파렐리아 양의 생각일 거야."
  이에 내가 그 답으로써 밝게 목소리를 내며 말을 건넨 이후, 고개를 들어 크세비아에게 이제 갈 것임을 알리면서 머리 위에 있으면 위험하니까 어서 내려오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였다. 그러자 바로 알겠다고 답을 하는 크세비아. 그리고 폴짝 뛰는 방식으로 나의 오른쪽 어깨 위에 착지한 다음에 그 어깨 위에 올라앉은 채, 긴장하는 표정을 지으려 하였다.
  이후, 내가 뱃머리의 바로 앞까지 걸어가면서 비행을 준비, 그 이후에 바로 비행을 개시하면서 문이 위치한 곳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크세비아는 앉은 상태로는 역시 위험했는지 나에게서 떨어져, 우측 곁에 위치한 채로 나와 함께 비행을 이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눈앞 멀리서부터 수많은 하얗게 빛을 발하는 원들이 겹치고, 그 원들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진 무지개빛을 띠는 거대한 원반의 모습이 점차 나의 눈앞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원반이 시선을 채워가다가 마침내 나의 눈앞을 가득히 메울 때가 되면 그 원반을 통해 야스모르 성계로 갈 수 있게 될 터였다. 여행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곳에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야스모르와 가까워져 가는 동안, 나는 조용히 크세비아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고, 그의 감정 상태를 가만히 보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크세비아는 곧 야스모르에 이르는 동안, 불안해졌는지 떨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토록 가고자 하였던 야스모르였는데, 막상 그 성계로 돌아가려 하니,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불안감에 머리가 짓눌려 불편한 표정이 자연스레 나온 듯 싶었다.
  이런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목표를 향해 거창하게 목표를 정했다가, 막상 그 목표를 실행할 때가 되니, 마음이 불안해지는 경우가 바로 그것. 그 목표의 실행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경우에 그런 감정이 더욱 분명해진다고 한다. 크세비아 역시 그런 불안감에 짓눌린 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괜찮을 거야, 크세비아. 별 다른 일 없을 테니까, 기운 내야지, 안 그러니?"
  "그건, 그래요. 유네아 양께서도 가장 위험할 수밖에 없을 법한 곳으로 무작정 뛰어드시면서 평온한 표정을 짓고 계신데, 제가 유난히 위험한 일에 시달리겠어요?"
  그러자 크세비아 역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밝게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답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불안감에 시달릴 때에는 격려의 말을 전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했다, 크세비아 역시 그런 격려의 말에 바로 밝게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이기는 해도 나름 힘을 얻을 수 있긴 했나 보다.
  그렇게 그를 데리고 문을 향해 점차 다가가는 동안 문득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생겼고, 그러면서 소정령 간 통신을 통해 루시아에게 연락을 취해, 그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예, 말씀해 보세요." 그러자 바로 응답을 하는 루시아. 그러자마자 나는 바로 그에게 묻고자 하였던 한 마디 말을 바로 그에게 건네는 목소리를 내었다.
  "혹시, 이번 일이 끝난 이후에는 배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세니티아로 돌아가도 될까요."
  다소 무모한 물음일 수도 있었으나, 루시아는 바로 밝게 목소리를 내며 화답을 해 주었다. 어려운 일을 해낸 만큼, 그래도 된다는 답이었다. 그러면서 하나의 전제 조건을 언급하니, 도로시아를 무사히 구출하고, 크세비아 그리고 도로시아가 무사히 성계에 이를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걱정 마세요, 그 정도 일 즈음,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러자 나도 에르시아가 나의 걱정에 대한 답을 할 때와 같이 답을 하였다.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에르시아의 사고가 나에게도 전파된 것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갈 무렵, 어느새 나는 빛이 모여 이루어진 문의 바로 앞에 이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목소리를 내는 크세비아. 그런 그의 심정이 떨리는 목소리에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네요." 그리고 그에 이어 마음의 준비는 해 놓고 있었는지에 대해 묻자, 나는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화답을 하고서, 항시 마음의 준비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거론하였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나는 문의 면에 닿고 있었고, 그러면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무지개 무늬가 나의 눈앞을 가득히 메우기 시작하였다. 이후, 내가 눈앞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