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방어선이 뚫리면서 드러난 그 내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안으로 들어가야 함을 직감하고, 바로 내부를 따라 나 있는 긴 원통형 통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탑의 외형에 등이 밝혀진 창문 하나 없는 모습을 통해 직감을 한 대로, 탑의 내부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으며, 벽면의 내벽을 따라 사각 대열을 이루며 설치된 하얀 등이 주변의 어둠을 희미하게나마 비추고 있을 따름이었다.
  원통형 통로를 따라 내려가는 동안에는 그 어떤 개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그저 고요하기만 할 따름이었으며, 그래서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천천히 통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크세비아가 앞장서고, 그 뒤를 나와 샤리에나가 따르는 방식으로 대열이 구성되어 탑의 통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뒤쪽 근처에서 라이마 그리고 일린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응답하는 샤리에나의 목소리가 뒤 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다급히 탑의 내부를 통해 들어온 모양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이들의 존재에 대해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바닥에 이르고 싶어하는 듯이 다급히 나아가는 크세비아를 따르며, 샤리에나 그리고 일린, 라이마와 거리를 둔 채, 탑의 바닥 구역에 이를 무렵, 나의 눈앞으로 검게 보이는 바닥에 하얗게 빛을 발하는 무늬가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바르카디아 신전 내부 - 중추 회랑
  크세비아의 설명에 따르면 그 탑의 바닥은 바르카디아 신전 내에 위치한 '왕궁의 옥좌' 를 향한 '알현의 길', 그 시작 지점으로서 좌우에 두 개씩 대열을 이루고 있는 각 기둥들의 끝에서 타오르는 횃불이 밝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으로써 그 끝에 문이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옥좌의 너머에는 복잡하게 길이 나 있으며, 그 통로의 끝으로 나아가는 것으로써 바르카디아의 중추에 이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옥좌의 너머에 바르카디아의 중추와 이어진 미궁이 자리잡고 있겠네, 그렇지 않아?"
  이후, 그의 설명을 듣고 내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그러할 것이라고 답을 하는 크세비아. 이후, 그는 옥좌를 향하는 알현의 길은 거대한 검의 형상을 이루며, 지반을 따라 불길이 흐르고 있기에 이를 두고 '불꽃의 검' 이라 칭하며, 다른 명칭으로 '수호자의 검' 인 '앙귀르바달(Angurvadal)' 이 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앙귀르바달은 검의 나라인 라이필라의 전설에 언급되는 물건으로서, 평화 시에는 어두운 불길을 일으키고, 전쟁 시에는 격렬한 불길을 일으키는 검이라 하였다. 과거 어떤 영웅이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사용한 물건으로서, 바르카디아에 위치한 '알현의 길' 이 항시 어둡게 붉은 불꽃이 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그렇게 명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이 그 설명에 이어지고 있었다.
  설명이 이어진 이후, 크세비아가 설명한 대로, 횃불을 따라 나 있는 길을 지나가려 하면서, 나는 바르카디아의 중추로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하나의 존재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렐' 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였다.
  이전에 수호자의 검인 아론다이트를 이끌면서 성계를 침공하면서 배신의 의사를 드러내었던 나렐. 그러나 아론다이트를 위시한 바르카디아 요새의 전선이 뚫리고, 내가 요새의 중심에 위치한 신전의 내부로 돌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렐의 모습은 계속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내가 신전의 내부로 들어갔다면 어떻게든 신전의 안으로 들어가, 나와 마주치려 할 텐데. 이러하다보니 그가 왜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면서 소정령 간 통신을 통해 리아레안과의 연락을 취하려 하였다. 그러면서 은색 갑주의 형상을 이루는 병기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어서 그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나렐'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명령에만 따르는 병기로서, 아무런 감정도 가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가 나렐이 아님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시 바르코스에 귀의한 나렐이 리아레안과 바로 마주치다가 희생될 이는 아닐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음을 통해 그가 건물 내부 같은 곳으로 들어왔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혹시 어디에 있느냐고 리아레안에게 다시 한 번 물음을 건네 보았다.
  "실례지만, 리아레안 님, 지금 어디에 계신 거예요? 건물 내부인 것 같은데."
  "지금요?" 그러자 바로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를 내는 리아레안. 그 이후, 그는 곧바로 자신의 위치에 대해 바르카디아 요새 뒤쪽에 위치한 통로 내부임을 밝히고서 마리아 에르세레즈가 통로 안으로 들어설 때, 그 통로를 이용한 것 같다는 언급을 하고서, 마리아 에르세레즈가 그러한 통로 진입법을 알려주었다고 자신이 그 통로로 들어선 경위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예즈라 그리고 루마와 함께 미궁을 따라 돌며, 나와 합류하기 위해 나서고 있음을 밝힌 다음에 신전 내부의 중추와 직통으로 연결된 듯 하나, 통로의 끝에 위치한 철문이 밖에서는 열 수가 없어 중추로는 갈 수 없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이렇게 리아레안으로부터 전해진 통로 안으로 들어온 일에 관한 설명이 끝날 무렵, 어느새 나는 어둠에 잠긴 검은 성벽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성벽은 횃불로 둘러싸인 길의 끝에 위치한 그 성벽의 중앙에는 네모난 모습을 보이는 거대한 문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문가의 좌우에는 하나씩 거대한 횃불이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 그 성문은 왕궁의 옥좌와 바로 이어져 있는 만큼, 성벽의 문가에는 몇 명씩 성문을 지키는 자가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성문 앞에는 팔 관절이나 배부가 부서진 채, 은색 갑주 형상을 이루는 몇 병기들이 쓰러져 있었다. 투구는 사각뿔 모양의 위에 칼날처럼 생긴 뿔이 달려 있으며, 어깨의 문장에 바르코스를 상징할 법해 보이는 금빛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이들이 갑주가 벗겨져 내부 기관을 드러내는 채, 연기를 뿜어내며 파괴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문 역시 열려 있었다. 아무래도 먼저 내부로 들어왔을 누군가가 성문의 내부로 들어서게 된 모양이었다.
  '누가 이 안으로 들어간 것일까.'
  문이 부서진 이후,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온 이는 분명 나와 크세비아였을 것이다. 예즈라, 리아레안 그리고 루마는 다른 곳에 있다지만, 이제 통로 안으로 들어온 이들이 나보다 먼저 성문 안으로 들어갔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문을 파괴하지 않고 통로 안으로 들어갔을 것일까. 그에 대해 나의 우측 곁에 위치하고 있던 크세비아가 바로 답을 해 주었다.
  "혹시 이전에 그 문장이 위치한 바닥을 보신 적 있으시지요?"
  "응." 이에 내가 그렇다고 바로 답을 하자마자, 크세비아는 바르코스 주요 인사들이 궁전으로 들어서기 위해 행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바르코스 주요 인사들이 신전으로 들어가, 궁전으로 진입하기 위해 행하는 일이 있어요, 신전의 한 구역에 위치한 공간 전이 장치를 통해 알현의 길로 직접 들어서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에요. 그 때, 인사들이 전이 이후에 처음 도달하는 곳이 바로 그 문장이 그려진 곳이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전의 그 문장이 공간 전이를 위한 곳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성문 안으로 병기들을 파괴하며 들어온 이는 바르코스 군의 관계자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이어 그렇게 뒤통수를 때리는 방식으로 성문 안으로 들어설 군의 관계자라면 어떤 이가 있을 지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었으나, 그에 대해 명확한 추측이 나오지 않았기에 그 추측에 대한 발언은 신중하게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자, 크세비아. 어떤 이가 안으로 들어갔는지 알아봐야 할 필요도 있잖아."
  그러면서 나는 크세비아에게 그렇게 당부의 말을 전하면서 먼저 열린 성문의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크세비아가 그런 나를 따라 성문의 안으로 들어가 그 너머의 어둑한 공간으로 들어서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예상이 가능할 법한 하나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수호자의 검, '앙귀르바달' 이 위치하고 있음을 감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바르카디아 신전 내부 - 왕궁의 옥좌
  알현의 길로서, 그 자체가 수호자의 검, 앙귀르바달이기도 한 그 길은 화산 분출이라도 일어난 듯이 갈라진 틈 사이로 불길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곳은 길게 갈라진 틈이 발생해, 그 틈 사이를 붉은 빛을 발하는 물질이 채워 붉은 선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있었다. 검은 바닥 위로 불길이 일어나고 있으니, 성문을 지나듯이 걸어가기만 해서는 위험했고, 따라서 낮게 공중을 비행하면서 전방을 향해 움직여 갔다.
  곳곳에는 쓰러진 병사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이 중에는 파편만 남은 이들이나 부서진 채, 불길에 휩싸인 개체들의 모습도 눈에 띄고 있었다. 촛대로 추정되는 기둥들은 부러져 있었고, 일부가 녹아서 금빛 줄기를 이루며, 바닥이 갈라져 생성된 붉은 줄기와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파괴된 흔적만이 남은 통로. 그 통로의 저편으로서 검의 자루와 날이 마주치는 부분에 해당되는 구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을 검은 천의 불타는 흔적을 지나친 이후, 나는 그 너머로 보이는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시설의 모습과 그 너머의 통로 끝에 문이 위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문을 통해 왕궁의 너머에 위치하고 있을 미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불길에 휩싸인 기계 장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그 좌우에 음성 발산을 위한 장치가 부착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왕궁은 왕의 목소리를 전달해 주는 기능 수행을 위한 공간일 따름이었음을 그 모습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키에렌 왕은 바르카디아의 중추에서 이 곳으로 목소리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고 봐야 하겠네, 그렇지 않아, 크세비아?"
  이후, 내가 그렇게 물음을 건네자 크세비아는 바로 그러할 것이라고 답을 하고서 이제 건너편에 위치한 미궁을 지나면 바로 중추에 이를 수 있음을 밝히고서 어서 미궁으로 들어가도록 하자는 말을 건네었다. 그 무렵, 샤리에나가 그런 나의 좌측 곁에 이르렀다가 바로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이 앞장서도록 할 테니, 그 뒤를 따라오도록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자신이 앞장서면서 미궁의 길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바르카디아 신전 내부 - 지하 미궁
  알현의 길, 그 너머로는 하나의 통로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통로는 유리로 만들어진 듯해 보이는 내벽의 곳곳에 붉은 등이 빛을 발하며 작게나마 어둠을 비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통로의 폭은 몇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에 그치지 않았으며, 통로의 곳곳마다 아르카(Archa) 모양을 이루는 문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였다. 그 폭은 대략 50 메타르 정도. 그리고 한 구역의 거리는 대체로 그 10 배인 500 메타르 정도였으니, 길목 간의 평균 거리는 대략 1500 메타르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 길이 왜 미궁으로 칭해지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길을 깊이 파고들 때마다 갈림길이 계속 생성되고, 이로 인해 가야할 길의 경우가 늘면서 그 곳이 왜 미궁이라 칭해지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바로 들게 되었다. 처음 중추 구역으로 들어서는 자들이라면 자칫했다가 이런 미궁에 돌입하였을 때, 영영 길을 잃을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다.
  이러한 미궁의 설치 사례는 주로 고대 신전에서 찾을 수 있으며, 신전으로의 허가되지 않은 출입을 방지하거나, 특정인을 가두어 놓는 것에 활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신전으로의 출입 같은 경우에는 허가된 사람에게는 미궁을 통할 수 있는 방도라던가, 길을 알려주고, 그 방도를 아는 것으로써 바로 신전으로의 출입을 할 수 있도록 적용하며, 특정인을 가두어 놓는 경우에는 길을 복잡하게 만들어 쉽게 탈출하지 못하기 위해 적용을 한다.
  그 지하 미궁은 두 가지 목적 모두에 부합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길목의 곳곳에 금속화된 인간의 잔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금속화가 된 이후, 요새에 머무르고 있다가 탈출하는 도중에 미궁에서 헤매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미궁에서 나오지 못한 채, 기능이 정지되었으리라.
  샤리에나가 찾는 길이 반드시 올바른 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일린, 라이마 역시 길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다 보니, 그저 샤리에나가 나가는 대로,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도리를 찾을 수 없었다. 크세비아를 두 손으로 안은 채, 조용히 샤리에나의 바로 뒤를 따라 길목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샤리에나도 길을 바로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어려움 없이 길목들을 통과해 가려 하고 있었다, 길목을 지날 때마다 소형 전투 비행기들이나, 인간형 병기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위치한 곳마다 지나가다 보면, 길을 찾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였을 수도 있고, 자신이 에르세레즈로부터 알아낸 길이 올바른 길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왠지 저 개체들이 중추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확실히, 그래. 키에렌 왕은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길마다 병기들을 배치시켜서 이들이 혹시나 자신을 향해 오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저지할 수 있도록 하려 한 듯 싶지만."
  이후, 샤리에나가 그 병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라이마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로 드러내고서 그 병기들을 돌파할 수 있다면 이는 자신을 향해 더 빨리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임을 왜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 이어, 일린에게 그 발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 라이마. 그러자 일린이 바로 답을 하였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어, 서투름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야." 이에 아니라고 답을 하는 샤리에나. 그러면서도 길목마다 병기를 배치한 일은 성급한 판단에 의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언급을 한 이후에 일단 자신을 비롯한 이들에게는 이득이 되는 만큼,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그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후에도 길목마다 병기들이 배치된 모습이 나타났으며, 그 때마다 일린 그리고 라이마가 빛으로 이루어진 창 그리고 하늘색 불꽃으로 이들을 추격해 격추시키며 앞길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미궁을 밝히는 등의 색은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해갔다, 다른 특성을 가진 곳에 이르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을까.
  그러다가 어느 정도 앞으로 나아갔을 무렵, 나는 좌측으로 이어지는 길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방향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크세비아를 이끌고 그 길로 나아가며, 길목에 이르는 샤리에나, 일린 그리고 라이마에게 잠시만 기다려 줄 것을 부탁하며, 그 길을 따라 비행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길은 나선형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결국 막힌 통로였으며, 그 끝에는 해골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이제껏 보아왔던 광경에 익숙하던 나 그리고 크세비아를 놀라게 하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기계가 모사한 골격의 형상이 아닌, 인간이 남긴 해골의 모습 그 자체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것이잖아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크세비아가 우선 그 해골을 향해 다가가려 하였고, 이어서 내가 그 뒤를 따르며, 그 해골의 근처에 이르려 하였다, 그 해골이 위치한 곳 어딘가에 무언가 글이 새겨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의한 일이었다. 대개 궁지에 몰려 죽을 때에 사람은 그 심정을 어딘가에 글로 새겨넣는 경향이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해골의 근처에 이를 무렵, 나는 그 해골이 위치한 곳, 좌측 근처의 벽면에 무언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로 이루어진 벽에 새겨진 문장은 다음과 같은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


  글의 길이만큼, 새겨진 글의 대열도 상당히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죽어 가는 사람이 새긴 글치고는 상당히 긴 글의 대열.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길게 글이 새겨졌을 것인지는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번 갇힌 이후에 희망이 끝났음을 감지하고서 삶을 이어가며 조금씩 새겨 넣었으리라. 금속으로 변이한 미궁의 내벽에 상당히 깊게 새겨졌으니, 보통의 일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벽에 글자를 새긴 이는 누구였을까, 깊은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뜻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의지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글을 새긴 이가 아닐지라도 왕에게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이라면 도처에 있었을 것이며, 이런 이들이 저항의 의사를 가지고 기계 군단에 대항해 나아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유네아 님, 어서 출발해요, 왕을 물리쳐야 하잖아요. 이런 사람들의 의지가 더 이상 그야말로 헛된 것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지 않고 계세요?"
  그러할 리가 없었다, 물론 분개는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의 소망은 금속으로 변해버린 행성에서 이대로 잊혀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었고, 그 생각이 아까운 것으로 남지 않기 위해 바로 행동에 돌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바로 비행을 개시하여 샤리에나, 일린 그리고 라이마가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유네아 양, 거기서 무엇을 보셨던 거예요?"
  "무언가 이끌릴만한 것이라도?" 그렇게 돌아올 무렵, 샤리에나를 시작으로 라이마가 이어서 나에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물음에 나는 내가 가능한 수준 하에서 대답을 하였다. 그러나, 샤리에나, 일린 그리고 라이마의 그 누구도 해골이 발견되었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놀라거나 시시해 하지 않고, 그저 차분히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죽어서나마 인간성을 지켜낸 이도 있긴 있었네."
  그 때, 일린이 샤리에나에게 그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이에 대해 샤리에나는 특별한 대답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하였으나, 쉽게 나오지 못하는 모양으로, 라이마 역시 그러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하였다.

  일행이 다시 합류한 이후, 이번에는 일린, 라이마의 두 사람이 앞장서고, 그 뒤를 샤리에나 그리고 내가 따르면서 앞을 지키는 병기들의 제거를 이들이 맡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샤리에나가 내가 앞장설 때처럼 뒤에 있으면서 조언을 행하여, 이들이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앞장서고, 그 뒤를 내가 따르면서 이전에 비해 훨씬 여유로운 상황이 찾아오게 되어 길을 지나면서 주변 일대를 둘러보는 일은 물론, 크세비아와 잠시 동안이나마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대열의 뒤에 있을 무렵, 먼저 말을 걸어온 이는 크세비아였다. 내가 파랗게 빛을 발하는 등이 어둠을 비추는 통로를 지나다가, 무언가 생각이라도 났는지 크세비아가 나에게 물음을 건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서 바로 집에 갈 수 있다면, 유네아 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평상시 같았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기 집으로 가기를 택했을 법한 질문. 그러나 현 상황에서 그런 답이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나 역시 무언가 일에 관여되어 있으며, 그 일이 나와 인연이 있는 이에게도 관련되어 있는 일인 이상, 그 일에서 쉽게 손을 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가고는 싶지,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집에 갈 수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쉬움의 감정을 드러내며, 답을 하는 나. 그러자 크세비아가 다시 물음을 건네어, 이번에는 집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집에 가서 바로 하고 싶은 일로 무엇이 있는지 말씀드려 주실 수 있겠어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오랫동안 바깥 세상에 나가 있다보니, 평상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하던 것들도 할 수 없게 되어 그에 대한 그리움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크세비아가 건네는 물음에 대답을 하려니, 잘 대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집에서 평상시 하던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답을 하고서, 그 이유로써 일상의 일부였던 일들도, 오랫동안 집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그리운 것이 되었다는 언급을 이어서 하였다. 그 때, 이런 크세비아와 나 사이의 대화를 듣고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앞장서던 라이마가 자신의 곁에 머무르고 있던 일린에게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
  "집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무엇을 하고 싶은데?" 갑작스러운 물음에 잠시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일린. 그러나 곧 그는 이내 차분해지면서 솔직하게 답을 해 보라고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어, 라르니온 남쪽의 그 지역 있지? 거기서 해변 구경을 마음껏 해 보고 싶다."
  "그래?" 그러자 바로 그런 그의 말에 반응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린. 그러는 동안 라이마는 라르니온의 동남부에 위치한 티오부엔(Tyobuen) 이라는 곳에서 바다 구경과 더불어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축제 구경도 하고 싶다는 말을 일린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일린은 라이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해변 구경을 마음껏 하고 싶다는 말이 이어진 이후, 무언가를 떠올리려 하는 듯한 모습을 라이마가 보이려 할 즈음에 일린이 라이마에게 그가 쉽게 떠올릴만한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묻고서, 바로 그에게 하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티오부엔 일대에서는 아사이(Acaj) 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나무 열매로 무언가 음식을 만들거나 하잖아, 혹시 그에 대해 알고 있어?"
  아사이, 그에 대해서는 그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그저 고개만 갸우뚱거리는 채, 멍하니 일린 그리고 라이마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기만 하고 있었다. 도중에 마가(Maga)(1) 라든가, 파파쟈(Papaja)(2) 등의 낯설지 않은 과일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해서, 라이마가 음식을 밝히는 이일지도 모른다고 추측을 하면서 그렇게 음식의 이름까지 거론된 모양이었다.
  "라이마라는 분이 본래는 음식을 자주 찾으시는 분이신가 봐요."
  그 때, 이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바로 나의 우측 곁에 이르며 물음을 건네는 크세비아. 그러는 동안 일린에게서 라이마에게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가 잇달아 들려오고 있었다.
  "혹시 있지 않아? 아사이라는 열매를 갈아서 만든 음료에다가 연유를 뿌려서 먹는 것. 그렇게 설명을 하면서 일린은 라이마라면 관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했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러자 라이마는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말하면서,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런 것도 있었구나, 여태껏 들어보지는 않은 것인데."
  그리고 무엇인지는 몰라도 맛이 좋다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보겠다고 말하였다, '단풍 액' 처럼 다르시스 주변 일대에는 찾을 수 없는 물건일 듯 싶기도 해, 두고두고 이용하려면 집으로 가져가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


  한창 먹을 것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무렵, 이들의 눈앞으로 큰길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와 더불어 대량의 인간형 기동 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내, 이들을 발견하자마자 달려들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이어지는 포격에 일린 그리고 라이마가 좌측 그리고 우측으로 움직여 피하고서는 좌측과 우측의 내벽 근처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이들에게 빛을 발하는 창과 지면을 향하는 하늘색을 띠는 가는 광선으로 반격을 가해, 공격의 근원인 병기들에게 하나씩 닿도록 하였으며, 그 공세에 하나씩 병기들이 격추되며,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많은 병기들이 나타난 적이 없지요, 유네아 님?"
  "응, 이 미궁에서는." 이후, 크세비아가 건네는 물음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일린 그리고 라이마가 병기들과 대치하는 통로의 중간 지점,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십자로 하나가 더 있는 모습만 보일 뿐, 미궁의 끝에 이르렀다는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병기들이 괴멸하고, 일린 그리고 라이마가 샤리에나의 인도를 받아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가면서, 내가 그 뒤를 따르다가 이들의 뒤를 따르는 채, 먼 앞의 광경을 주시하려 하였다. 이후, 이들이 십자로에 이르렀을 무렵, 나는 먼 앞을 내다보다가 그 폭 넓은 통로의 너머에 위치한 십자형 통로의 끝에 거대한 문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문의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 중 한 명은 금색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한 사람은 보라색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하얀 옷과 검은 타이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으면서 오른손에 보라색 빛으로 이루어진 날을 가진 검을 갖고 있었으니, 이들이 누구인지 그 모습을 보며,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리아레안 님, 그리고 루마 양과 예즈라 양이잖아, 저기 있는 이들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