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서 나는 나 자신이 눈앞에 붉게 물든 하늘이 아닌 하얀 벽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으며, 나 자신 역시 날개를 펼치고 날지 않고, 노란 바닥의 한쪽 구석에 놓여진 작은 침상 위에 누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또 다른 꿈의 세계에 이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급히 몸을 일으켜 침상에 앉은 다음에 주변 일대를 둘러보기 시작하는데, 그 때, 나의 우측 벽면, 그 왼쪽에 위치한 문에서부터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위와 아래를 잇는 것들로서, 문의 전체에 걸쳐 일정한 간격을 이루며 배치된 8 개의 살들과 좌우를 잇는 것들로서 윗부분과 중앙 그리고 아랫부분에 4 개씩 배치된 살들이 서로 교차되고 있으며, 내가 위치한 쪽이 종이가 발라진 형태를 이루는 작은 문. 그 작은 문에서부터 나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그에 이어 한 여성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혹시 깨어났나?" 늙은 여성의 문 안쪽에 위치하고 있을 나를 부르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예~." 라고 밝게 목소리를 내어 화답하였고, 그러자 여성은 "다행이구만." 이라고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화답을 한 이후에 들어가겠음을 알리더니 문이 바깥쪽으로 열리면서 그와 함께 한 여성이 허리를 숙이면서 작은 문을 거쳐 방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였다.
  밝은 회색을 띠는 짧은 머리카락과 회색 눈동자를 가지는 여성으로서 어두운 회색을 띠는 얇은 옷 위에 밝은 살색을 띠며 길고 폭이 넓은 원통형 소매를 가진 겉옷, 그리고 주황색을 띠는 발목 근처까지 내려가는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옷을 편안히 걸친 모습을 보이는 이로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세월의 역정을 겪었는지, 그의 얼굴 위로 수많은 주름살이 나 있었다. 눈은 많이 가늘어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나, 눈동자 색은 선명했으며, 눈 자체는 맑았다.
  그런 외양적 특징을 가지는 여성. 그 여성은 잠시 후, 자리에 앉은 나의 근처에 이르더니 조용히 나의 근처에 두 무릎을 꿇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앉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온전히 깨어난 모양이로군, 그래 다행이다.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너무 당황하기도 했고, 네가 혹시 목숨을 잃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리고서 내가 어떻게 자신의 앞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 여성. 집에서 천을 하나 구해서 그것을 가지고 바느질을 하는데, 갑자기 집 인근의 나뭇가지가 이유도 없이 격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상한 일이다 싶어 집 밖으로 나가보니, 내가 나뭇가지 위에 놓여진 채, 의식을 잃은 모습을 발견하고서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서 나를 끌어내 방으로 데려왔다고 설명을 하고서, 여성은 지금은 괜찮아졌으니 다행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 이후, 그는 걱정스러워 하는 목소리를 내며 말하였다.
  "어떻게 이 곳에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여행을 한 듯해 보이니, 일단 몸부터 씻어서 피로를 완전히 떨쳐 내거라, 외양 정리도 할 겸."
  이에 나는 알았다고 화답한 다음에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문을 향해 다가간 이후에 문 왼편의 고리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문을 밀어 그것을 열어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그 때,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나에게 여성이 긴장된 목소리로 문 높이가 낮으니 머리가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다그쳤다. 여성이 허리를 굽히며 안으로 들어갈 때부터 알아본 문, 그 문을 보자마자 나 역시 허리를 굽힌 채, 조심스럽게 문을 나섰고, 그와 함께 문 바로 앞에 나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와 그 앞의 돌로 이루어진 받침대 위에 놓여진 신발을 발견, 마루 위에 앉은 채, 오른쪽 신발부터 하나씩 신고서 다시 일어났다.
  그 이후, 나는 씻으러 갈 곳을 찾으려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신을 신은 채로 바닥에 무릎을 대고 두 손을 바닥에 대며 누운 자세를 취하며 문 너머로 고개를 내민 다음에 그에게 어디로 가야 목욕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여성은 방에 앉아 침상을 정리해 주면서 그런 나의 물음에 바로 답을 해 주었다.
  "이 곳을 나섰을 때,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건물로 가면 된다. 어두우면 조명을 밝히면서 이용해라. 수건 등은 안에 있으니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

  이후, 나는 목욕을 하기 전에 내가 자리 잡은 곳이 어떤 곳인지 일단 파악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우선 내가 나선 집을 향해 돌아섰고, 그와 함께 나의 두 눈앞으로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고대 라넬리스 양식과 비슷해 보이는 건축물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푸른 기와로 만들어진 지붕이 하얀 벽면과 나무로 만들어진 기둥이 주가 되는 작은 건축물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집. 집의 다른 부분도 나름 깔끔해 보이기는 했지만, 지붕이 화려해 보였던지라 대비가 되었다. 그 이후, 집을 등지는 방향으로 돌아선 다음에 집의 너머로 보이는 광경, 그리고 하늘의 모습을 하나씩 시선을 향해 보았다.
  도둑이 들 걱정이 들지 않았는지, 세니티아의 경우처럼 담이 없는 집. 그 집은 초록색을 띠는 작은 풀밭으로 덮인 거친 고원 같은 곳의 위에 서 있었으며, 그런 집을 파랗게 빛을 발하는 하늘을 꾸미는 하얗게 빛을 발하는 수많은 별들과 별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강물의 형상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대지의 오른편에 보이는 곳에는 커다란 나무가 몇 그루 자라나 있어서 단조로워 보일 수 있었던 대지를 꾸미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시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 하늘은 분명 밤하늘이었는데 하늘이 어둡지 않았기에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그리고 현재 시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다.
  집이 초원 위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초원 위에 하나의 집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곧 인근의 시냇가 너머로 나에게 친숙한 돌로 만들어진 집들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 하나가 위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또 늙은 여성의 집 근처에 몇 채의 집이 또 위치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근에 그 집만 있는 것이 아님을 비로소 확인한 이후에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나는 조용히 우측에 위치한 작은 건물에 이른 후, 그 나무로 만들어진 문의 왼편에 위치한 손잡이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돌로 이루어진 작은 공간으로서 출입문 왼편에 커다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내 키의 1/3 정도 되는 높이를 가지는 통에 투명한 물이 채워진 광경과 출입문 우측의 벽에 쇠로 만들어진 막대 하나가 설치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후, 나는 옷을 하나씩 벗어 쇠로 만들어진 막대 위에 하나씩 걸쳐놓은 이후에 뒷짐을 진 채, 조용히 원통에 이르렀고, 그 이후에 두 손으로 통의 테두리를 잡고, 통에 채워진 물의 면 안으로 왼발부터 들여보내며 목욕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은 내가 앉았을 때에는 가슴 높이까지 차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물이 무척 차가워 물 속에 처음 있을 때에는 가슴에 두 손을 올리며 가슴의 온기를 손으로 느껴야 할 정도였지만 그렇게 온기를 느끼면서 계속 물 속에 있다 보니, 그 차가움에 적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그러한 물의 차가움을 시원함으로 여기며 물 속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머리카락과 얼굴에도 물의 차가운 기운이 전해질 수 있도록 두 손으로 물을 모아 물을 흩뿌려 머리와 얼굴에 닿도록 하여, 그로 인해 몸 전체에 퍼진 차가운 기운이 머리카락과 얼굴에도 전해졌다. 그렇게 머리카락과 얼굴까지 차가움이 느껴지자 나는 온전히 개운한 느낌을 받으며 계속 몸을 씻으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물이 차갑기는 해도, 수정을 직접 녹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했던 탓인지, 그 물 속에 있으면서 나 자신 역시 물의 깨끗함과 순수함을 이어받아 나의 마음까지 물 속에서 정화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까지 품고 있었다.
  그렇게 깨끗하고 차가운 물 속에 있으면서 마음이 정화될 것 같은 느낌을 가지면서도 마음이 온전히 편안하지는 못했다. 이전의 실수로 인해 동행하던 이들 전부와 헤어지고 말았으며, 이전의 세상에서 만난 이와도 사고로 인해 헤어져, 이들의 행방에 대한 생각과 헤어진 이들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은 무사히 나와 다른 곳에 이르렀겠지만, 자신들의 곁에 내가 이르지 못한 모습을 보고 행여 나를 찾아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것에 대한 우려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걱정의 감정을 항시 마음에 노출시킬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머무르게 된 집 인근에서 즐길만한 것은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하늘이 바로 감동을 받아, 나에게 나와 헤어졌던 이들을 데려다 줄 리도 없고, 이미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이른 이들을 찾을 수 없는데, 걱정을 하고 있을 경우에는, 그 걱정을 계속 이어가며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될 일에 대한 우려가 되기도 하였기에 그러하였다.
  그러면서 그 생각을 마음 속에서 떨쳐내기로 마음을 먹고, 그것을 위해 머리에 차가운 기운이 닿아, 그 차가운 기운이 머리를 식히면서 걱정의 감정까지 해소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찬 물 속에서 누워있는 동안 점차 마음이 편안해져 갔고, 그와 더불어 잠의 기운까지 나를 찾아와 나의 두 눈꺼풀에 힘을 가해 두 눈이 감겨지도록 하고 있었다. 이후, 찬 물로 채워진 통 속에서의 잠은 소정령 레반테아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와 그로 인해 내가 잠이 깰 때까지 이어져 갔다.
  "유네아, 지금 어디에서 뭐하고 있어?"
  "지금은 이름을 잘 모르는 어느 성계의 풀밭 위에 있는 집에 머무르고 있어, 그 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중이야. 물은 차갑지만 그래도 참 맑아서 마음까지 정화될 것만 같아."
  레반테아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 그 목소리는 한 동안 다시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에르시아의 목소리였다. 이제는 그레이스 블루라는 이름을 가지는 도시를 지나치면서 세니티아와 아주 먼 곳에 위치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에르시아가 나와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지만 당장에 물어볼 바는 아니라는 생각에 그의 목소리에 일단 귀를 기울이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에르시아는 밝게 목소리를 내면서 그래도 내가 집에 머무르고 있다니 다행이라고 말을 하고서,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중요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서 그에 대한 물음을 건네려 하였다.
  "그 집에 누가 살고 있어? 좋은 사람이야?"
  그 물음에 나는 욕조 안에서 웅크려 앉는 자세를 취하고, 레반테아가 나의 바로 앞에 이르도록 하면서 화답을 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할머니 한 분께서 집에 홀로 머무르시고 계시지, 좋은 분이셔."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다행스럽지 못하다고 해야 할지, 에르시아는 라넬리스에 남은 이르야 혹은 라사엘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 내게 일어난 일들, 예컨대 내가 풀턴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도시를 힘과 폭력으로 지배하려 한 이를 쓰러뜨린 일이나, 공간 전이 도중에 일어난 일로 인해 동행하던 이들과 헤어지게 된 일에 대해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동행하는 이들은 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물어보지 않고 있었다.
  "에~이, 아쉽다! 실은 그 사람이 산적 두목이었다, 이랬다면 이야기가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너는 내가 어디 나갔다, 하면 꼭 사고가 나기를 바라니?"
  이에 나는 반 즈음 장난기 어린 밝은 목소리를 내며 그렇게 되묻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에르시아가 장난삼아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어도, 내심으로는 나에 대해 편안한 집에 있게 되었다고 간주하면서 그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그런 나의 생각이 곧 그의 생각이라도 되었는지, 에르시아가 그 생각을 드러내는 듯이 목소리를 내려 하였다.
  "사실, 네가 낯선 지역을 여행한 일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은 그렇게까지 특이하지 않아도 좋아. 네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간 일 자체가 특이한 일인 데다가, 유네아가 산적 두목에게 습격을 당해 갑자기 도망가는 일을 겪기라도 했다면, 재미라기보다는 걱정부터 앞섰을 거야."
  "실제로는 그러면서, 실없는 농담은 하지 말아야지!"
  이에 내가 다소 목소리를 높이며 그렇게 말을 하자, 에르시아는 그저 웃는 목소리만 낼 뿐, 한 동안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내가 머무르는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려달라고 부탁의 말을 건네었고, 지역의 특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려주겠음을 알리고서 지역을 조금 둘러보았다고 생각할 즈음에 다시 나에게 연락을 취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에르시아가 그 당시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그에 관해 물음을 건네려 하였고, 이에 에르시아가 답으로써 곧바로 "변함 없이 잘 지내고 있어." 라는 간단한 답을 하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정말?" 이라고 묻자, 밝아진 목소리를 내어 "응." 이라고 화답을 한 이후에 자신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자세히 해 주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지내고 있어, 지금까지 하던 일을 모두 끝내, 당분간 할 일이 없어져서 그래. 덕분에 잠도 지금까지 숙면을 취하지 못한 만큼, 실컷 자고 있지."
  그리고 "내가 와 줄까, 너의 곁으로?" 라고 물었지만 공간 전이 수단도 없는 이상, 에르시아가 나의 곁으로 와 줄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오지 않아도 돼." 라는 화답을 하였다. 이후, 에르시아로부터 어떤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다가, 갑자기 그로부터 마침 이웃집에서 빵과 치즈 조각 그리고 삶은 달걀을 보내왔다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이어 삶은 달걀이 갓 만들어진 것이라 그러한지, 무척 따뜻함을 알리고서,
  "그래서 생각났는데, 유네아, 식사 제대로 하고 있어?"
  라고 물음을 건네었다. 이에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화답을 하는 나.
  그레이스 블루에 있었던 동안, 나는 종일 식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레이스 블루에 통용될만한 돈이 없기도 했지만, 또 그 곳의 공업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은 사정이 유난히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무언가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것-나뿐만이 아니라 루마를 비롯한 도시에 있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리라-.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화답을 한 이후에 그에 이어 하루 정도 굶었다고 해서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은 없다고 말을 해 주면서 물음을 건네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에르시아의 당혹해 하는 목소리를 들을 것을 예상하였지만, 그런 나의 예상과 달리-다행스럽게도- 비교적 차분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에르시아는 곧 나의 사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만하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발언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러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지역에서 통용될만한 화폐가 없으면 다른 이에게 신세를 져야 하는데, 그 사람 역시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을 테니까."
  이후, 에르시아는 그래도 계속 굶기만 해서는 전투를 할 수 있는 힘을 제대로 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다음에는 어떻게든, 그리고 무엇이든 간에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먹도록 하라고 말한 이후에, 곧바로 그에 이어 욕탕에서 나갈 때가 되면 집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 보라고 당부를 하였다. 그 당부에 이어, 에르시아는 나에게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말한 다음에 내가 이전에 언급한 대로 내가 머무르고 있던 지역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가 되면 다시 연락하겠음을 알렸다.
  그에 이어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 역시 중요한 정보를 얻어온 것이 있으면 연락해서 나에게 알려주겠음을 알렸다. 이후, 레반테아에서는 잡음만 들려올 뿐, 에르시아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에르시아와의 통신을 끝내고, 레반테아의 모습이 다시 사라진 이후, 나는 두 발을 앞으로 조금 내미는 자세를 취하다가 곧, 욕조 안으로 미끄러지려 하는 듯이 움직이면서 목만 수면 위로 내민 채, 조용히 욕조 위에 누워 있으려 하였다.
  그 때, 갑자기 그로부터 무언가라도 먹으라는 말을 들은 탓인지 지금껏 아무렇지 않던 나의 배에서 격렬히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에 대해 나는 그레이스 블루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계속 억누르고 있던 욕구가 이전의 발언을 통해 억제가 갑자기 풀려 무너지면서, 담이 무너지자마자 그 너머로 물이 흘러내리는 듯이 갑자기 분출하였기 때문이리라고 간주하면서 배의 진동을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삶에도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통처럼 생긴 욕조를 나선 이후에는 집에 살고 있는 여성에게 요청이라도 해서 무언가라도 먹도록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가만히 누워 있는 채, 조용히 눈을 감으려 하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시 눈을 뜨고 두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모으는 자세를 취하며 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나는 우측에 보이는 창가 너머로 하늘을 대신해 자그마한 사람의 머리가 보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짤막하고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장난기 어린 얼굴 모습, 문득 길을 지나가다가 나의 모습을 엿보게 된 소년 같아 보였다. 물론 나쁜 의도로 창가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자꾸 보고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그러면서 창가를 향해 보고 있지 말라고 크게 목소리를 냈고, 이에 놀랐는지 소년의 모습이 창가에서 사라졌다.
  이후, 나는 차가운 물 속에 다시 누운 다음에 잠시 물에 머리까지 물에 잠기도록 하였다가 다시 머리를 내미는 일을 반복하면서 잠시 더 물 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더 이상 오래 머무르면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몸을 일으켜 욕조 위에 앉았다가 천천히 일어나고서 곧바로 욕조를 나섰다. 그러다가 욕조의 투명하고 깨끗했던 물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을 느끼며 몸을 닦지 않은 채, 다시 욕조를 향해 돌아서서 물의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려 하였다.
  그러면서 거울에 비친 듯이 나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앳된 소녀의 모습. 물에 젖어 날카로워 보이는 머리카락과 둥그런 눈동자가 보였다. 그 얼굴 모습은 분명히 선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한 동안 내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 얼굴 모습에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전에 주니아를 만난 탓인지, 수면에 비친 모습이 다르게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했는데, 수면을 바라보면서 그런 일이 없었음에 대해 다행스러워 하면서 다시 허리를 펴고, 옷과 수건이 걸린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서 나는 수건으로 대충 몸과 머리카락을 닦고, 속옷과 치마부터 한 벌씩 옷을 입은 다음에 욕조를 기울여 내가 사용했던 물을 밖으로 따라낸 다음에 욕조 근처의 수도를 틀어 하얀 물줄기가 격한 소리를 내어 비워진 욕조를 다시 채우도록 하다가, 욕조의 수면이 가득히 채워질 때가 되자 수도의 작동을 중지시킨 후, 신을 다시 신고서 발걸음을 옮겨, 욕실을 나섰다.
  물기를 조금 남긴 채, 욕실을 나서고서 다시 마루에 앉는데, 그 때 문이 열리며 여성이 허리를 굽히며 밖으로 나왔다가 나의 좌측 근처에 이르자마자 자리를 잡아 앉고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다음에 차분히 목소리를 내어 자리에 앉은 나에게 물었다.
  "목욕은 잘 했나?" 이에 나는 그렇다고 화답을 한 다음에 에르시아가 이전에 나에게 한 말을 상기하면서 그에게 부탁의 말을 전하려 하였다.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무언가라도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그런 나에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물음을 건네는 여성.
  "배가 고프다고? 지금껏 먹지 못하고 있었나?"
  "예,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집에 먹을 것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으나, 여성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그런 나의 물음에 지금은 식재료가 떨어져서 당장에 죽이라도 줄 수 없게 되었다는 화답을 하였다. 그리고 집에서 먹을 것을 얻어먹고 싶다면 며칠 정도는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하고서 나에게 하나의 제안을 하였다.
  "서쪽 인근의 마을에 가면 풍족하게 사는 마을이 하나 있어, 그 곳에서 마음씨 좋은 사람을 하나 만나 신세를 질 수 있다면 배를 채울 수는 있을 게야."
  그리고 자신도 무언가를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면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앉은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는 집을 나가도 된다는 말을 하고서, 그에 이어 작별 인사는 필요 없으니 그것에 대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을 건네었다. 이에 나는 알았다고 화답을 한 이후에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그의 바로 앞에 섰다. 그 이후, 그가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할머니의 바로 앞인데, 인사는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허리를 굽히며 조용히 인사말을 건네었다.
  "신세 지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후, 나는 다시 허리를 펴고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나, 그런 그가 나의 인사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조용히 늙은 여성의 집을 떠나, 그 인근의 풀밭을 잠시 돌아다니는 고원 지대 위를 걸으며 집의 왼편에 보이는 곳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동안 나의 왼편 인근에는 몇 채의 집들이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전에 만났던 그 할머니 이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겠지만 밖에 나가지 않았을 따름인 것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을 잠시 본 이후, 다시 먼 앞으로 시선을 향하면서 하늘의 왼편, 그 한 곳에 달의 모습을 커다란 망원경으로 보고 있을 때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작은 행성 하나가 떠 있으며, 그 오른편에는 작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이는 자그마한 행성, 아니 행성의 모습을 한 형체가 떠올라 있었다.
  '달과 비슷해 보이지만, 달은 아니야, 공중에 떠 있는 행성 상 대륙의 일종인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그것들에 대해 그렇게 추측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한 번 가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초원 지대의 다른 곳을 보려 하는 순간, 왼편에 자리 잡은 대륙의 한 곳이 갑자기 노랗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나는 '등이 켜졌다.' 라는 혼잣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등을 켜면서 시간 같은 것을 알리는 역할을 행하는 사람이 그 곳에 있는 모양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그와 더불어 그 곳으로 한 번 정도는 가 보도록 하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하였다.
  그렇게 길을 걷는 동안, 나는 풀이 자라나지 않아 갈색을 띠는 부분이 길게 이어져 하나의 길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그 길을 따라 나서다 보면 사람이 사는 곳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따라 나서기 시작하였다. 대개, 그런 형태의 길은 사람들이 계속 밟다 보니, 풀이 자라나지 않게 되어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길을 밟기 위해서는 어딘가 한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실제로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아세라이아 등에는 이러한 형태의 길이 나 있지 않다-.
  그러면서 길을 걷다가 문득 나의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과연 이전에 보았던 소년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는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이로서 때묻은 하얀 셔츠와 하얀 스커트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갈색 신발을 신은 작은 아이 하나가 나를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순박해 보여 호감이 갔던 그 아이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일단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서, 그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지금껏 나를 계속 따라오고 있었던 거야?"
  이에 겁을 먹었는지 떨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는 아이. 그러는 동안 그는 움츠러들었는지 가슴을 두 손에 올린 채, 나를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나는 두 다리를 모은 채, 땅에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해, 그와의 눈높이를 맞추려 하고, 그와 함께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이제 안심할 수 있겠니?" 그리고 무서운 사람이 아니니까 안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면서 "정말 그래도 돼요?" 라고 묻는 목소리를 내었다.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과 달리 나의 귓가에서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라? 너, 여자아이였구나!" 이에 나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그에게 그렇게 물었고, 그 물음에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화답을 한 이후에 나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언젠가 동요에서 보았던 '파란머리의 천사' 를 실제로 본 것 같았다는 말을 이어서 하였다.
  아무래도 나의 모습을 동경하면서 나를 따르게 된 것 같아 보이는 소녀. 그 소녀는 이전의 그 말에 이어 하나의 소원이 있다는 말을 건넨 다음에 내가 "그게 뭐니?" 라고 묻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바로 알리는 말을 건네었다. 무언가 어린 아이다운 소원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과 달리 그 소녀의 목소리는 의외로 어른스러운 소원을 하나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가 많이 아파요, 병원에 가야 한다는데, 병원으로는 제 집에 돈이 없어서 못 간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가 어떤 소원을 품고 있는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의 치유되지 못하는 병을 내가 치유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막막한 감정으로 착잡해지기 시작하였다, 나 역시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지, 몸의 병균을 없애거나 몸에 생긴 이상 세포를 없애는 능력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대지의 정령들이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어서 그에게 어떻게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을 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어떻게든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 보면 나오겠지, 당장에는 어렵겠지만 함께 찾아보도록 하자꾸나."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오른손을 나의 왼손으로 잡으며 나란히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갈 곳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곳으로서, 그 곳에서 소녀의 어머니를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고, 그를 그 곳으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주어진 그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음을 상기하면서 그것이 없음에 대해 한탄하며 한 마디 혼잣말을 건네었다.
  '나에게 생명의 빛이라는 수정이 있다면, 그 문제는 바로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없다고 해서 세니티아로 갈 수 있을 리도 없으니, 그 물건을 이용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고, '생명의 빛' 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수정에 대한 생각은 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바라보고 있는 부유 대륙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모습에 대해 여자아이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자아이에게 왼편에 위치한 부유 대륙을 가리키면서 그 대륙에 대한 물음을 건네었다.
  "얘, 혹시 저 위에 떠 있는 것에 관해 알고 있니?"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