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해는 이상하게 날씨가 빨리 추워지지 않는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바깥에 나가 있어도 바람의 기운이 차갑지 않게 느껴질 정도이니.
푸른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가득하여 하늘이 하얗게 보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날은 확실히 밖으로 나가기에는 좋은 날이다. 평소 같으면 추워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날에는 왠지
모르게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옷가짐을 바르게 하고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주변의 집을 둘러보면서 길을 나아가다가 마을의 동쪽 끝에 이르렀다. 바로 앞에 있는 언덕길을
바라보면서 혼자서 말하였다.
"오늘은 숲으로 가 보아야지. 숲에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언덕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에 나는 숲으로 들어설 수 있는 오솔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떨어진 여러 색의 나뭇잎으로 덮인 오솔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길 주변에 자라 있는 수많은 나무들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 나무들은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는지 붉은 색, 노란 색 그리고 갈색으로 변한 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모든 잎들을 떨어뜨려 겨울 나무의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걸어가면서 잠시 동안 고개를 아래로 향하여 오솔길에 싾인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올려
수많은 나뭇잎들을 떨어뜨려 잎을 거의 남기지 않은 나무들의 모습을 잠시 보았다. 무척 추워보이는 모습이다. 나뭇잎을 계속 달고 있으면서 겨울을 지내면 안 되는가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나무도 생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면서 지나친다.
걸어가는 동안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마음에 든다. 그 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을 거닐다가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렀다.
가끔씩 빛의 정령들이 모이기도 한다는 곳이 이 곳이었다.
밑동만 남은 나무들 중에서 한 가운데에 있는 나무로 다가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때 나의 바로 왼편에 하얗게 빛나는 이상한 나뭇가지가 노란색을 띠고 있는 나뭇잎 위에
놓여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뭇가지와 이파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손으로 그들을 주워 올리고 이들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하얗게 빛나는 나뭇가지가 눈에 띄였기에 자연히 그에 시선이
기울어졌다. 잠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께서 찾아오셨군요."
"어라, 손님이라니?" 나는 놀라면서 혼자서 말한 다음에 일어나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는 채로 서
있는 금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을 가진 한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매는 짧고 치마는 긴 하얗고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그 소녀, 숲에 살고 있는 빛의 정령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손에 들고 있는 빛나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보이면서 당황하는 목소리로 돌려주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 동안 그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말하였다.
"당황하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는 다시 마련해도 괜찮은데....... 그 물건들, 가지기를 원하신다면 가져도 괜찮아요."
"가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필요 없는 물건이라서......."
그녀가 한 말에 나는 곧바로 답을 하였다. 그리고 빛나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그녀에게 건네었다. 그녀는 알겠다는 말을 전하고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건네 받았다. 그리고
계속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채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이상한 날이에요. 오늘은 날씨도 춥지 않아서 아직 겨울이 다가오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아직 겨울의 기운이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하고 있는 탓일까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려 하였다. 그 때 그녀가 다시 한 번 나에게 말하였다.
"무슨 일이든지 잘 할 수 있으려면 일찍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지금부터 좋은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하려고 해요. 준비는 일주일 동안 하려고
하는데, 일주일이면 충분하겠지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 때 그녀가 무언가 바라는 바가 있음을 알리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저어,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응....... 오늘 밤에 이 곳으로 다시 와 주시지 않겠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부탁이니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고 들어주겠다는 답을 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엘리샤(Elisha)' 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듯한 이름이었다. 잠시 후 소녀는 나에게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나는 그에 대한 답으로써 내 이름과 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소녀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서 일주일 후에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서 헤어졌다.
엘리샤라는 소녀가 일주일 후에 찾아올 나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무척 좋은 일일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일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가 보아야 알 수 있을듯 싶다.
엘리샤와 헤어진 후에 나는 곧바로 돌아섰다.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 때 루세나(Lucena) 가 뒷짐을 지고 있는 채 나무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내가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루세나는 곧바로 책갈피로 쓸 나뭇잎을 찾고 있다는 답을 하였다.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들 중에서 책갈피로 쓸
만한 나뭇잎을 찾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밝은 목소리로,
"반드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래."
라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어? 아에실 언니,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표정이 무척 밝아 보이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루세나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서 나중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하고서 그녀의 곁을 떠나갔다. 루세나에게 엘리샤를 만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에는 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 나는 밀가루로 떡을 구워서 먹으면서 엘리샤의 모습을 떠올렸다. 너무도 밝고 아름다웠던 엘리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모습, 어쩌면 그 소녀를 만나고
약속을 한 일이 오늘의 가장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밤에 어떠한 일이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하였다.
그리고 밤이 되었다. 밤이 되자 흐렸던 하늘도 이제 개어 짙은 푸른 색의 하늘이 온전히 본 모습을 드러내려 하였다. 맑아진 하늘의 모습을 보며 좋은 일이 있을 것임에 대한 예감을
가지며 다시 마을을 떠나려 하였다. 엘리샤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날씨가 맑아진 만큼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나의 뒤를 따라오는 이가 있었다.
루세나였다. 그녀는 나에게 어디로 가려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건네었다. 이에 나는 이야기를 해 주기로 마음을 먹고 오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루세나는 무슨 이유로 엘리샤라는 이름의 소녀가 나를 부르려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말을 하고서 따라가려 하였다.
마침내 언덕길을 지나 엘리샤를 만난 숲으로 돌아왔다. 그 곳에는 빛을 발하고 있는 한 소녀가 공손히 두 손을 내린 채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엘리샤임을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루세나에게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린 후에 함께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약속대로 정말로 와 주셨네요. 고마워요, 아에실 님. 헛된 약속 한 번 하고 다시 돌아오시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와 주셔서 다행이에요. 응, 제가 아에실 님을 부른
이유가 있다면, 제가 아름다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이를 누군가에게라도 전해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가 겨울에 이 곳을 찾아오시는 분께 그 무언가를
선물로써 전해주려 하였어요. 그래서 이 곳을 찾아오신 아에실 님께 미처 준비하지 못한 선물을 전해 드리기 위해 약속을 한 거예요."
그러자 루세나가 나를 대신해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선물은 무엇이지요?"
"잠시 후면 알게 될 거예요.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를 바라겠어요."
루세나의 물음에 답을 한 이후 그녀는 두 손을 가슴 가까이로 모으면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채 두 눈을 감고 주문의 영창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나와 루세나는 그녀가 주문의
영창을 행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에게 주고자 하는 선물의 모습에 대한 기대를 마음 속에 품으려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와 루세나는 빛의 기운이 마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빛의 구와 같은 모습의 빛의 기운들은 하늘 곳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마을 바로 위의 하늘에 머무르려 하였다. 루세나가 그 모습을 보면서 혼자서 말하고
있었다.
"엘리샤의 선물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저 하늘의 빛이 가르쳐 줄 듯 해 보여, 과연 무엇일까나."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났을 때에 빛의 기운이 여러 곳에서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모인 빛은 빛으로 이루어진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빛으로 이루어진
새들과 별들 그리고 천사들과 요정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와 루세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의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밝은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혼자서 말하였다.
"와아, 아름다운 모습이야."
"정말, 이제 알겠어. 엘리샤라는 빛의 정령이 전하려 하는 선물이 저 빛의 형상이었구나!"
그 때 빛으로 이루어진 형상이 마을 위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에 엘리샤가 두 손을 내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나와 루세나에게 웃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선물은 이 정도로 할게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잘 받아주세요.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요. 그 때에는 마을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이후 나와 루세나는 엘리샤에게 밝은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서 그녀와 헤어진 후에 급히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마을 바로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빛의 형상을 마을
안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기 위해서였다. 약속을 잘 지키면 가끔씩이라도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을 때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한 순간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