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돌아다니고 있다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처음에는 당황하였다. 바람의 정령 이외에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할 숲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바람의 정령이 아닌 어느 남자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당황하고 있다가 곧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 곳에 머무르고 있는 어느 혼령의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 하였다.
  한참 동안 숲 속을 계속 달려 나아가면서 숲 곳곳을 둘러보려 하였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그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달리는 일을 멈추고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려 하였다. 길 근처에 다른 나무들보다 앞에 서 있는 큰 나무에 무심코 등을 기대려 하였다. 그 때 갑자기 나무가 뒤쪽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넘어지는 줄 알고 놀란 나는 곧바로 돌아서서 나무의 모습으로 눈길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나무가 내가 기댄 방향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줄기가 제법 굵어 보이는 그 나무의 모습을 보고 당황하면서 혼자서 말하였다.
  "대체 이 나무는 왜 이러지? 줄기가 이 정도의 굵기를 가지고 있다면 뿌리도 상당히 깊이 자라 있을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줄기가 굵다면 당연히 뿌리도 깊게 나 있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뿌리의 상태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면서 나무와 흙이 닿는 부분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흙에서 드러난 뿌리의 길이가 마치 어린 나무의 뿌리인 양 무척 짧았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곧바로 놀라는 심정을 말로 표현하려 하였다.
  "이상한 나무네, 뿌리가 자라지 않고 있는 나무잖아."
  그 때 나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전에 들려왔던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를 이상하게 여기려 하지 마."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나의 곁에 있는 듯, 그 소리는 이전보다 더욱 크게 들렸다. 그 목소리를 놀란 나는 곧바로 일어나서 나무를 등지고 누구냐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때 나의 뒤쪽에서 바로 나의 뒤에 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나무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설마 이 나무가.......?" 그 때 다시 한 번 남자의 그렇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나무의 표면에서 눈과 입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혼이 깃들어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무인 듯 싶었다. 그러한 나무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그 나무가 입을 움직여서 나에게 말하였다.
  "나는 걷고 싶어. 다른 동물들은 걸어다닐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 걸어다닐 수 있게 해 줄 수 없어? 걸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뭐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당혹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가 걸어다니고 싶다니, 당치않은 소망이었다. 나무는 식물이다. 물과 양분이 충분한 땅 위에서 태양의 기운을 받기만 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대신 뿌리를 내리고 한 곳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만약 땅에서 벗어나게 되면 땅의 물과 양분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지 않고 있는지 그 나무는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만을 나에게 보이고 있었다. 그를 통해서 나는 그 나무의 뿌리가 자라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뿌리를 자라지 않게 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거야?"
  그는 그 물음에 곧바로 그렇다는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러한 그 나무의 두 눈을 바라보며 강한 어조로 나무는 걸어다닐 수 없다는 뜻을 밝히려 하였다.
  "나무는 걸어다닐 수 없어. 뿌리로 땅과 양분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해.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어 죽게 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너는 너 자신을 망칠 수도 있는 헛된 소망을 가지며 나에게 그를 이루게 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을 해 달라는 소망이라면 들어줄 수 없어!"
  그러자 나무는 걸어다니면 무엇이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부탁을 하였다.
  "걸어다니면 좋잖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꽃들이 피어있는 곳으로 가서 꽃들에게 인사도 할 수 있고, 숲 속의 공주님을 만날 수도 있잖아."
  숙명 문제를 떠나서 신체 구조상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하기를 바라는 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이룰 수 없는 소망을 단념할 수 있도록 그를 설득하려 하였다.
  "꽃들이라면 내가 화분에 심어놓은 몇 송이 꽃을 보여줄 수 있고, 숲 속의 공주님이라면 내가 찾아서 너를 찾아가도록 할 수 있어. 내가 못하면 내 친구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해 볼게. 그 모습을 보기만 하면 되잖아, 그렇지 않아? 네가 보지 못한 존재를 보여주는 일은 나 혹은 내 친구가 해 줄 테니 걸어다니고 싶다는 소망은 이제 단념해. 네가 걸어다니지 못하는 이유는 운명 문제를 떠나서 너의 신체 구조가 본래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를 이해했으면 해."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망을 단념하지 않으려 하는 듯,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보였다. 한 숨을 쉬면서 그를 설득하는 일을 체념하였다. 그리고 그의 소망대로 그가 땅을 벗어나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보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물음을 건네었다.
  "정말로, 걸어다니고 싶어?"
  그는 당연하듯이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그러자 나는 그에게 소망이라면 들어주겠다는 뜻을 밝히고서 나무에게서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의 영창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주문의 영창을 행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가 되자 두 눈을 떴다. 나무의 오른편에서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무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으며 어느 나무는 뿌리채 들어 올려지기도 하였다. 다른 나무는 견디고 있었지만 뿌리를 내리지 않은 나무는 금방 들어올려져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나무는 곧바로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아, 나도 이제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어느 정도 멀리 날아갔을 때 바람은 멈추었다. 주문을 영창하면서 그가 상당히 멀리 날아갔을 때 바람이 그치도록 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그치면서 날아가던 나무는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도끼에 잘려 쓰러진 나무의 모습과도 같았다. 밑둥까지 온전히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었다. 쓰러진 나무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려 하였다. 이제 눈과 입은 보이지 않았다. 환상이었나 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급히 마을로 돌아갔다. 다른 아이들을 불러 쓰러진 나무를 다시 본래의 위치에 심어놓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섯 명이 힘을 합쳐 간신히 쓰러진 나무를 다시 본래의 위치로 옮긴 후에 심어 놓을 수 있었다. 이후 다른 아이들 중 몇이 뿌리가 자라지 않은 나무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었으며 나는 이에 그 나무의 뿌리에 잠시 문제가 생겨서 그러하다고 설명을 하고서 내가 어떻게든 정상의 상태로 돌려놓겠다고 말을 하였다. 그 후 다른 아이들이 떠나가자 나는 그 나무의 모습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혼자서 말하였다.
  "이전의 일을 통해서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까. 얻었으면 좋겠는데."
  이후 나는 날아서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이후에 그 나무를 정상의 상태로 돌려놓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건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나는 그렇다는 대답을 하고서 이제 괜찮아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이후에는 친구들이 그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소망은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 자체를 무시하는 무모한 소망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이루어질 수 없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나 나무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은 이룰 수 있어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은 이룰 수 없듯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사실을 나 자신이 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