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는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날도 어두웠는데 이제 구름이 걷히면서 날씨가 많이 맑아졌다. 하지만 이제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듯, 차가운 바람이 이
곳으로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이제부터라도 겨울 준비에 들어가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집 안에 놓아두고 있던 창검
(주1) 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나무를 자르는 데 있어서 창검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창검은 바람이나 번개의 기운을 불러오거나 결집시킬 수 있어서 그 힘으로 나무를 쉽게 잘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숲으로
나아가서 모든 잎을 잃고 가지만 남긴 나무들 사이의 길로 들어섰다. 집 안을 따뜻하게 해 줄 불을 지피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나무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무에 달린
가지를 잘라야 할 필요가 생긴다. 물론 가지를 자르는 일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나무는 누군가가 가지나 줄기를 잘라서 가져가더라도 이를 두고 크게 원망하지는 않는 듯해 보였다. 아픔이
느껴질 텐데, 그래도 이를 두고 원망하지 않다니, 무척 고마운 존재이다.
(주2)
제일 가지가 많아 보이는 나무의 바로 앞으로 왔다. 그리고 날개를 펴고 떠오른 후에 가장 아래에 있는 굵은 가지로 시선을 기울였다. 그 이후에 두 손으로 창검을 쥐고서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가 되자 두 눈을 떴다. 창검의 날이 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하얗게
빛을 발하는 창검의 날로 가지를 두 번 두드린 다음에 혼자서 말하였다.
"자아, 이제 시작한다!" 그리고 창검으로 가지를 힘껏 내리쳤다. 번개의 기운이 날과 함께 가지를 순식간에 나무에서 떨어지게 하였다. 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곧바로 다른 가지로 나아가서 같은 방법으로 가지를 베어 바닥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창검에 빛을 발하게 한 번개의 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베어낸 가지의
수는 50개. 그리고 번개의 기운이 창검의 날에서 사라진 후에 베어낸 가는 가지의 수는 30개. 모두 80개의 가지를 한 나무에서 베어내었다. 제법 굵은 가지도 있었지만 몇 되지
않았다. 가지의 수를 모두 세어 본 나는 창검을 허리에 매어놓은 다음에 베어냈던 가지들을 나무 밑동에 모아놓고서 다른 나무를 향해 나아갔다.
이전에 보았던 가지가 많은 나무 만큼 많은 수의 가지를 가지고 있는 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나무의 모습을 보자마자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창검의 날에 번개의 기운을
불러와 빛을 발하게 하고서 가지들을 잘라내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베어낸 가지의 숫자가 모두 100개. 번개의 기운이 날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 베어낸 가지의 숫자가 60개, 그리고
번개의 기운이 사라진 후에 베어낸 가는 가지의 숫자는 40개에 이르렀다. 모두 합쳐 180개의 가지를 모은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다시금 창검을 허리에 매어놓고서
이전에 머무르고 있던 나무에 모아놓았던 80개의 가지를 한 곳으로 모은 다음에 두 손으로 안으며 들어 올렸다. 하나씩 들면 무겁지도 않은 가지가 많은 수를 들고 다니 어느 정도 무게는
있었지만 들기에는 충분할 정도에 그쳤다. 80개의 가지를 들고 100개의 가지가 모인 곳으로 나아간 후에 내가 베었던 모든 가지를 모아놓았다. 들고 다닐만한 무게는 되었지만 문제는
이들의 양이었다. 두 손으로 끌어안아서 들어 올리기에는 너무도 많은 숫자였다. 무언가를 불러와서 들고 가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왔다갔다 하면서 들고 나설 수밖에. 이번에는 너무 많이 베었다."
그리고서 처음 들었던 80개를 다시 들고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에 빠른 속도로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서 착지한 후에 집으로 들어서려 할 때였다.
이르스야(Irsja) 가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많이 베어왔다는 말을 감탄어린 어조로 말하였다. 이에 나는 웃는 모습을 보이며 답하였다.
"오늘 따라 나뭇가지를 많이 베어오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나뭇가지들을 집의 창고 안에 들여놓고 가지를 베는데 사용하였던 창검을 상자 안에 집어넣은 다음에 다시 나무를 베어낸 곳을 향해 나아갔다. 나뭇가지가 싾인 곳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기에 나뭇가지들이 싾인 곳으로 가는 일 자체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100개의 나뭇가지 중 50개를 들고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그 때 집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던 이르스야가 나뭇가지들을 두 손으로 들고 집을 향해 다가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물음을 건네었다.
"어라? 리잘라, 또 나뭇가지들을 가지고 오는 거야?"
"응, 이들 말고 또 있어. 오늘은 작년보다 많이 베어서........"
이르스야가 건넨 물음에 나는 곧바로 답을 하였다. 그러자 이르스야는 나의 행동을 지나쳤다고 여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러면 나무가 화낼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베어. 그래야 나중에 나무를 벤 일을 두고 후회하지 않지."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이르스야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답을 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들어간 다음에 가져온 50개의 나뭇가지들을 하나씩 넣어놓다가 20개는 남기고서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50개와 손에 들고 있던 20개의 가지를 합쳐 70개의 가지들을 들고 날아오르고 이후에 유나(Juna) 의 집 근처로 나아갔다. 그 동안 유나라도 겨울
준비 때문에 나무를 베고 다녔었는데 이들을 전해 주면 자신이 할 일이 줄어들어서 기뻐할 것으로 여기면서. 가지들을 유나라의 집 근처에 싾아놓은 다음에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샘의
물로 손을 씻고서 집으로 돌아갔다.
창고에 싾아놓은 수많은 나뭇가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서 말하였다.
"이제는 당분간 추위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지금은 싾아 놓기만 하고 있다가 날씨가 아주 추워질 때가 되면 그 때 하나씩 쓰도록 하자. 작년에는 조금 많이 써서 창고에
싾아 놓았던 나뭇가지들이 다 떨어졌었는데 이 정도라면 이 중의 반 정도는 남아서 내년까지 사용할 수 있을 거야."
나뭇가지들을 조금씩 아껴서 쓰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창고의 문을 다시 닫고서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포개 올린 두 팔에 머리를 올리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잠시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을 통해 불어왔지만 그 바람은 내가 불러오는 잠기운을 이기지는 못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 눈을 부비적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집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가 집의 문 앞에 편지 한 장이 바닥에 놓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얀색
종이로 이루어져 있는 편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면서 쓰여진 글을 읽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 리살라에게."
그 후 나는 편지의 장을 뒤집어서 그 면에 쓰여진 글을 읽어보았다. 유나의 글이었다. 나뭇가지들을 전해 주어서 무척 고맙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있던 나에게서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나중에 반드시 보답해 주겠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욱 밝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가 되면서 이르스야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찾아오기도 하는 등의 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오늘 하루는 보람 있는 하루였다. 내일은 어떠할까, 평온한 하루가 될까. 하루
종일 잠을 자는 일만 하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날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The End
(주1) : 창끝 부분이 소검으로 이루어진 짧은 창. 폭풍, 번개를 부르는 이들이 호신용을 겸하여 바람이나 번개의 기운을 불러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무기로써
사용하는 일도 있지만 대개는 바람이나 번개의 기운을 이용해서 나무 등을 자르는 데에 사용한다. 바람 혹은 번개의 기운이 어지간히 단단하거나 굳은 사물을 칼의 날로 하여금 베거나
자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주2) : Sylphid 들은 나무 줄기를 필요할 때마다 베어낸다. 그리고 그 때마다 어린 나무 2 ~ 3 그루를 그 곳 근처에 심는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 1 그루를 심는
경우도 있음.) 그리고 가지를 베어낸 이후에는 봄이 되었을 때 가지가 잘라진 나무에 치유의 주문을 사용하여 나무가 가지를 빠른 시기에 회복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