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바깥으로 나아갈 때마다 공기가 차가워졌음을 느끼게 되는 날이었다. 눈이 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조차 들어오지 않고 있다. 어서 눈이 왔으면 좋겠는데.......
  그러한 생각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마을에 눈을 내리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양 끝에 칼날이 달려있는 봉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날개를 펴고 근처의 산으로 날아 오르려 하였다. 그 때 나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친구인 살리나(Salina) 였다. 그 아이는 날개를 편 나의 모습을 보자마자 먼 곳으로 나아가려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건네었다.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 라는 답을 하고서 멀리 나가지는 않으려 한다는 대답을 하였다. 그 다음에 곧바로 근처의 산으로 간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러자 살리나는 나에게 평온한 모습을 보이려 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다가 와."
  라는 말을 전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아이가 말한 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겠다고 답을 하고서 마을 바깥을 향해 뛰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을 밖에 이르렀을 때가 되자 산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자아, 이제 시작이야, 눈을 내리게 하는 일."
  그리고서 펼친 날개로써 높이 오른 다음에 산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의 언덕 한 가운데에 이른 후에 착지를 하고 날개를 접은 다음에 산 아래를 내다보기 시작하였다. 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 아래로 자그마하게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곧바로 눈앞에 펼쳐진 푸른 하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혼자서 말하였다.
  "오늘은 잠시 모습을 감추고 있어 주어야 하겠어."
  나에게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눈의 힘을 다루는 주문 중에 눈을 내리게 하는 주문이 있었다. 일정 지역을 눈으로 덮을 수 있는 주문이지만 잘 사용하면 마을을 눈으로 덮을 수도 있는 주문이었다. 그 주문을 사용할 수 있다면 마을이 눈으로 덮여서 한 동안 아이들이 눈을 가지고 놀면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며 미소를 띠고 있는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의 영창을 시작하려 하였다.
  "하늘을 떠도는 무수히 많은 차가운 기운이여, 그대에게 명령을 내리겠노라. 이제 한 해의 마지막 계절이 다가오고 바람이 불어 나무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이파리를 잃었고 풀은 생기를 잃고 색이 바래어 세상은 쓸쓸해졌나니......."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요. 좋지 않은 일을 하고 계신 듯 한데......."
  그 목소리를 듣고 놀란 나는 곧바로 주문의 영창을 멈추고서 나를 부른 이의 모습을 향해 돌아섰다. 하늘색의 짧은 소매를 가진 상의와 다리까지 내려가는 엷은 푸른색을 띠고 있는 치마를 입고 있으며 허리까지 내려갈 정도에 이르는 길이의 하늘색 머리카락과 푸른 색의 눈동자를 품은 두 눈을 가진 소녀였다. 나는 그 소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을 건네었다.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바람의 성전' 을 지키는 이라고 칭한 다음에 나에게 다시 한 번 물음을 건네었다.
  "혹시 기상 현상을 바꾸시려 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였다. 그리고 내가 무엇 때문에 주문을 영창하려 하였는지에 대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제 겨울이 되고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눈도 내렸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기 시작하였어요. 하지만 눈이 내릴 것이라는 소식이 계속 들려오지 않자 이 마을과 그 주변에라도 눈을 내리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눈을 불러오려 하였어요."
  그러자 소녀는 활짝 웃는 표정을 짓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내가 전한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하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늦을지는 몰라도 언젠가 이 곳에는 눈이 내리게 될 거예요. 마을과 그 주변 일대가 눈으로 뒤덮이면서 세상의 모습이 지금과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세상이 하얗게 변한 모습을 보게 되면 감탄하시는 일도 가능하지요. 이는 당신께서 눈을 불러왔을 때보다 더욱 즐거운 일로 다가올 거예요. 기다림 끝에 맞이한 눈이기에. 당신뿐만이 아니라 마을에 살고 계신 다른 분들께서도 기다림 끝에 보게 된 눈을 반갑게 맞이하려 할 거예요."
  그 후 그녀는 평온한 미소를 짓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시 한 번 말하였다.
  "눈을 불러오는 일에 대한 만류는 하지 않도록 할게요. 그 일 역시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기다림 끝에 바라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감정은 당장에 바라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감정과는 많은 차이를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지요. 잠시 동안이라도 그에 대한 생각은 해 주시길 바라겠어요."
  그 후 소녀는 작별 인사를 하고서 나의 곁을 떠나갔다. 나는 그러한 소녀에게 작별 인사를 해 줌으로써 답례를 한 다음에 언덕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소녀가 전한 말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태양이 남쪽 하늘 높은 곳에 이르려 할 즈음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오늘은 돌아서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첫눈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새해가 될 때까지 눈이 오지 않는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눈을 불러온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면서 말하였다.
  "기다리는 거야. 기다릴 수 있는 동안까지. 기다림 끝에 맞이하고자 하는 바를 맞이하는 날을 보내게 된다면 그 때 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기쁜 나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어느 때 보다도 마음이 들뜨게 될 그 날이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며 여러 나날을 의미있게 보내도록 하자. 그래, 그렇다면 신께서 반드시 이 마을에 눈을 내리게 하실 거야."
  마음을 정한 나는 다시 산을 내려오기 위해 날개를 펴고 마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마을 입구 바로 앞에 이를 수 있었다. 그 때 살리나가 나에게 다가와서 물음을 건네었다.
  "루세나, 오늘 어디서 무슨 일을 겪고 왔어?"
  "산에 잠시 있다가 왔어." 나는 우선 산에 있다가 왔다는 대답을 하고서 내가 하려 하였던 일과 소녀를 만난 이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살리나는 감탄을 하는 듯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채로 두 손을 가슴 가까이로 올리면서 말하였다.
  "와아, 루세나가 오늘은 좋은 가르침을 받고 왔구나. 그래, 첫눈이 올 때까지는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할 거야. 그래야 나중에 첫눈을 맞으면서 크게 기뻐할 수 있잖아. 잘한 일이었어. 루세나, 정말로 네가 눈을 불러왔더라도 좋아하였겠지만 네가 그러한 결정을 마음 속으로 내리는 모습이 더욱 좋게 느껴져. 다음에는 그러한 너의 집으로 내가 과자를 들고 찾아올게. 응, 언제가 좋을까. 내일이 좋을까, 모레가 좋을까....... 아, 내일 아침에 찾아갈게, 괜찮지?"
  그녀가 하는 말에 나는 웃는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는 답을 한 다음에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답례를 듣고서 약속을 하고서 헤어진 다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산 위에서 나는 기다림의 의미에 대해서 한 가지 정도는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