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들어서부터 자그마한 얼음 알갱이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날이 어두워지면서 많은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 위로 내리는 하얀
가루와도 같은 눈의 모습을 보면서 집 안에만 머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지며 대문을 나섰다. 밖으로 나와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려 하는 나를 차가운 바람이 맞이하려 하였다.
마을의 거리에는 다른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과 같은 때라면 아이들이 밖에 많이 나와 있어야 할 텐데,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가 보다. 오늘 기상대에서 밤에 눈이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알렸었는데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눈을 맞으며 홀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손을 허리 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이 눈을 맞도록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루가 하늘의
아득히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내리고 눈이 싾여서 하얗게 보이는 마을 한 가운데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가 눈앞의 광경을
보면서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마을 한 가운데에 엷은 하늘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하얀 옷을 입은 이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를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하늘색 긴 머리카락 아래로 가늘게 떠져 있는 푸른 색 눈동자를 품고 있는 눈이 있었다. 멀리서 하얗게 보였던 옷은 소매의 길이가 팔목에 이를 정도에 이르는
상의와 다리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길이의 치마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조용히 혼자서 말하였다.
"무슨 일이기에 이 곳으로 찾아와서 주저 앉아있지? 무슨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나?"
그 때 그가 고개를 들어 나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긴장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돌아 앉으려 하였다. 나의 모습을 보고
무서운 이로 여기는 듯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무섭지 않은 이임을 알릴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에게 시선을 향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무서운 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모습을 보며 두려워 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러자 그는 곧바로 나 또래 정도에 이르는 소녀의 목소리로 "정말이에요?" 라고 되물었고 나는 이에 곧바로 웃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 안도의 한 숨을
쉬고서 그는 자신이 어떠한 이인지에 대해 알려주려 하였다. 소녀는 이 곳에서 아주 먼 곳에 있는 '눈의 궁전' 에서 온 눈의 정령이며 산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눈을 내리게 하려다가
지쳐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었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예제라(Jesera)' 라고 밝힌 다음에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건네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르쳐 준 후에 그녀를 집으로 들어보내려 하였다.
예제라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를 들여오고서 나는 따뜻한 차를 마련해 오겠다는 말을 전하였으나 그녀는 괜찮다는 답을 하고서 잠을 자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전하고서 잘
만한 곳을 찾는 물음을 건네었다. 그 물음에 나는 침대가 있는 방을 향해 다가간 다음에 문을 열고 그 방의 모습을 보게 하도록 하고서 그녀가 방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방문이 열린
방의 곁에 서서 말하였다.
"이 방을 사용하시면 되어요. 본래는 제가 쓰는 방이지만 원하신다면 이 곳에서 지내셔도 괜찮아요."
"정말, 당신의 방을 제가 사용해도 괜찮은가요?"
나는 그 물음에 웃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는 답을 하였다. 그러자 그는 밝은 느낌을 주는 목소리로 고맙다는 답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향해 나아가려 하였다. 나는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서는 눈의 정령을 지켜보면서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눈을 감고 잡들었을 때가 되자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서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예제라의 모습이 무척 귀여워
보였다. 고향에서도 많이 사랑받고 있을 듯해 보였다. 누가 그녀가 살고 있다는 '눈의 궁전' 이라는 곳에서 그녀를 보살피고 있는 것일까? 누구인지는 몰라도 무척 좋은 마음씨를 가진
이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나는 여태껏 집 안에서는 홀로 인데, 부럽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잠시 놀랐다. 잠에서 깨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는데 실제로는 자면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주)
다행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동안 그녀는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하나의 말을 이루고 있었다.
"우응....... 어머니,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려주실 거예요.......?"
꿈 속에 있으면서 '어머니' 라는 존재에게 음악을 들려주기를 바라는 뜻을 보이고 있는 듯해 보였다. 역시 '어머니' 라는 존재가 있어서 많은 보살핌을 받고 있기에 잠들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듯해 보였다. 애당초 '어머니' 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예제라의 어머니가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눈의 궁전' 이라는 곳으로 나아가서 예제라와 그의 어머니를 만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에게도 잠의 기운이 찾아오면서 침대 곁에 바닥에 옆으로 누우며 잠을 청하려 하였다. 내일 아침에는 눈이 싾인 광경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The End
(주) : 우리는 이를 '잠꼬대' 라고 칭한다.
* 이름의 의미 :
- Jesera :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Esra 의 이름에 대한 변형.
- Risala : Risa (이성) + ala (머무르다) = 이성이 머무르는 곳.
- Vardicar : 수직선, 하늘로 곧게 날아오르다, 혹은 하늘로 곧게 날아오르는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