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언덕에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를 보러 가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밖에 나가있기는 곤란하겠지, 그래서 밖에 나가지는 않기로 마음을 먹고 다시 집
안으로 돌아갔다. 방 안으로 들어선 후에 침대 위에 앉아 있으면서 줄곧 누워 있기만 하거나 앉아있으면서 창가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하얀 하늘 아래의 아무도 없는 거리의 돌들은
이미 젖어있었고, 지붕에서 물방울이 창가를 지나 대지로 떨어져 내렸다. 두 무릎을 모으면서 세우며 앉아있는 채, 두 손으로 다리를 끌어안고 있으면서 바라보는 광경, 집 안에 있는 나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방울에 의해 젖은 세상이 차분하면서도 우울한 느낌을 주는 모습으로 여기어졌다. 그러한 나에게 혼자말이 나왔다.
"언제나처럼 우울하기도 한 모습이네, 하늘이 어두워져서 그러한가."
하지만 내가 무슨 일로 인하여 밖에 있다가 비를 맞게 되면 어떠할까, 과연 약간은 우울하기도 한 차분함의 감정을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서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 할까? 아니,
그렇지는 않으리라. 가급적이면 옷이, 그리고 나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에 의해 많이 젖지 않을 수 있도록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가거나, 옷을 젖지 않게 하리라는 생각을 포기하고서는
물에 나의 모든 것을 내맡긴 채, 집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그러면서 물론 비가 내리는 세상의 모습을 두고 우울한 세상의 모습이라고 여길 수는 있겠지만 그 보다는 차가운 물방울을 더 이상
맞지 않기를 바란다는 생각이나 차가운 물방울이 내리지 않을 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먼저 마음 속에 품으려 할 것이다.
비가 오는 상황을 바라보기만 할 때에 가지는 감정과 직접 비를 맞을 때에 가지는 감정. 그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란 바로, 머리 위로 수많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다르게 말하자면 물기에 젖은 옷이 전하는 감촉 그리고 물방울의 차가움을 직접 느끼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이다. 그 차이로 인하여 같이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서도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된다.
지금 나는 집 안에서 가만히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나에게도 비를 맞으며 길을 돌아다니던 때는 있었다. 작년 어느 여름 때인가, 마을 밖으로 나아가면서 비가
내릴지도 모르니 주의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이를 무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더니 번개가 내리치고 폭우가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옷과 신발을 비롯한 모두가 젖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속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앉아있으면서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보며 감상에 잠겨
있으려 하고 있다. 그 때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은 이제 나의 마음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 때의 일은 이제 지나간 일이고, 지금 내가 겪는 일은 아니기에 그러할까나.
그러한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몇 번 격하게 저으면서 "이러한 생각은 이제 그만하자." 라고 조용히 혼자말을 하며 그 일을 그만 두었다. 비가 내리는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두운 생각만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밝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도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후 나는 창가를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세상에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언제쯤 이 비가 그치려나. 그래도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신의 뜻에 의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물방울들임에는 틀림 없다. 이렇게 비가 내려야 대지에 내린 물의 기운으로 인하여 새싹이 힘을 얻어 세상 바깥으로 나오고 이파리도 새로이 돋아나며, 꽃도 피어나서 세상이 완연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분명 앞으로 좋은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나의 마음 속으로 다가왔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오겠지. 그 때가 되면 바깥으로 나아가보기도 해 보자."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잠시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려 하였다. 그러면서 화창한 봄을 맞이한 마을, 그리고 그 주변 세상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지금의 우울한 모습을 뒤로 하고 펼쳐질
밝은 모습을 드러내는 마을과 주변 세상의 모습을. 그러다가 다시 창가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비가 그칠 때를 기다리며 계속 창가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하늘
아래로 내려올 때가 되고, 날이 어두워질 때가 되었다.
엷은 자주색을 띠고 있는 하늘 아래로 빗방울이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