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나날이 지나고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의 언덕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언덕 위의 풀들 중 거의 대부분은 이제 초록색의 모습을 되찾았고 그 위로 여러 자그마한 꽃들이 자라나 초록색을 띠기 시작한 언덕을 색색으로 꾸미고 있었다. 언덕 위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풀밭을 쓸어내듯이 지나가며 풀들을 눕게 하였다. 누웠던 풀들은 바람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일어나 바람에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 광경을 멀리서 보면 풀밭 위로 물결 비슷한 무언가가 지나가는 듯한 모습이 두 눈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이 풀밭을 지나가는 동안 풀밭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지는 못하였다.
  풀밭에 누운 다음에 두 팔을 들어서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올린 다음에 머리를 두 팔 위에 놓았다. 그리고 곧바로 두 다리를 굽히고서 그 중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포개고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두 눈에 비추어진 하늘의 한 가운데로 한 마리 새가 원을 그리며 공중을 돌고 있다. 풀밭에 누워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아주 멀리 있어서 자그마하게 보이는 그 새의 모습을 한 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원을 그리는 일을 반복하는 새, 분명 커다란 새이다. '독수리' 라는 이름을 가진 커다란 새. 원을 그리면서 세상의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을 커다란 새, 나와 풀밭 이외에는 무엇도 없을 이 곳에서 그 역시 여느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처럼 세상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듯해 보인다.
  독수리는 한 동안 하늘을 맴도는 일을 계속 행하다가 마침내 오른편 하늘을 향해 나아가면서 모습을 감추었다. 독수리가 떠나간 이후에도 나는 계속 하늘의 모습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채로 계속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하늘의 모습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허전해 보이기도 하는 푸른 하늘의 모습만 드러나고 있을 뿐, 나의 두 눈 앞으로는 구름 하나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 하늘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혼자 말을 하게 하였다.
  "날씨가 무척 맑아서 구름이 만들어지기 어렵나 보네. 구름이 만들어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날일 거야."
  라는 혼자 말을. 그 말을 하고서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오늘과 같은 좋은 날에는 밖에 나온 이상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워있던 곳을 떠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언덕을 지나 산길을 나아가면서 산을 내려가려 하였다. 다른 특별한 곳으로 가려 하지 않고 단지 산길 주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는 방향의 오른편에 초록색 풀로 부드럽게 덮인 길어서 벽처럼 보이는 비탈진 곳 위에 수많은 노란 민들레 꽃들을 비롯한 여러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비탈진 곳 건너편에 서 있는 나무들의 가지에도 자그마한 연두색의 이파리들이 돋아나 있어서 꽃들과 함께 봄의 분위기를 드러내주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도 나는 민들레꽃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래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민들레들을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돌아선 다음에 앉아서 그 꽃들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을 가진 노란 꽃이 핀 모습을 보면 자그마한 존재가 모여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며 감정이 들뜨게 된다. 그래서인지 다른 여느 꽃들보다도 나는 이 민들레 꽃들을 더욱 좋아하는 편이다. 잠시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다른 꽃들이 피어있는 곳으로 가려 하였다.
  곁에 피어있는 수많은 보라색 꽃들의 모습을 보면서 멈추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꽃들의 모습을 보려 하였다. 비탈진 곳 아래에 활짝 핀 보라색을 띠고 있으며 비교적 큰 편인 꽃들의 모습, 이 역시 나에게 충분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활짝 피어난 꽃을 바라보고 있다가 꽃의 정령을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고 한다. 꽃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꽃의 모습을 바라보려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나의 자그마한 기대조차 들어주지 않았다. 꽃의 정령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일은 없었다. 역시 태양빛이 세상에 내리고 있을 때라서 무리인가. 같은 꽃의 모습을 계속 보는 일을 그만두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길을 따라가는 일을 이어서 행하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봄을 맞이한 계곡에 물이 흐르고 바닥의 바위에 붙은 이끼가 계곡의 바닥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모습까지 보고 난 다음에는 계곡에 계속 머무르려 하였다. 봄을 맞이한 계곡 주변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곳에서 잠시 돌아다니기도 하고, 한 곳에 머무르고 있다가 앉은 채 눈을 붙이는 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 후에 태양이 서쪽 하늘 아래로 향하기 시작한 때가 되자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한 번 꽃들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적어도 봄이 끝나갈 때까지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지난 해처럼 이번 해 역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을 비롯한 봄의 풍경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해가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길을 나아가다가 마침내 날이 어두워졌을 때가 되자 내가 살고 있는 마을 근처에 위치한 언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언덕 위에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채 잠시 서 있으면서 말하였다.
  "꽃의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나름대로 괜찮았어."
  그리고 마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왼편을 둘러보았을 때, 언덕 한 곳이 보라색의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며 나는 빛을 향해 다가가려 하였다.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있을 만한 곳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인지라 신기하게 여기며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 때, 빛이 더욱 커지더니 곧 주변으로 흩어지면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비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보라색 옷을 입고 있는 소녀의 모습, 이는 전설에서 본 꽃의 정령이 가진 그 모습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