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갈 무렵이 되었을 무렵에 모자와 바구니를 준비하면서 봄이 오는 때가 되면 모자를 쓰고 바구니를 들고서 밖으로 나가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곧 봄이 오리라는 기대를
마음 속에 품으면서. 그러나 시간이 계속 지나도 봄의 기운이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미리 준비해 놓은 모자와 바구니를 내놓고 있는 채, 추운
기운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다가 마침내 추운 기운이 거의 사라지면서 언덕 곳곳이 다시 초록색으로 물들고 작은 꽃도 피어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 바람이 강한 편이었고 때마침 마을에서 해야할 일도 생겼고,
우연하게 책을 읽게 되기도 해서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으며 그 동안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의 기억은 서서히 마음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 어제가 되었을 때, 창가에서 봄을 맞이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고 결국에는 오늘 여행 삼아 밖으로 나가보겠다고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인 오늘이 되자 나는 오랫동안 올려놓기만 하고 있던 바구니와 모자를 한 손에 하나씩 들고서 방에 있는 거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리고 우선 모자를 내려놓은 다음에
왼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의 손잡이를 오른손의 손등에 걸고서 다시 왼손으로 모자를 들었다. 그 다음에 그 모자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머리 위에 올리고 이를 살포시 내려서 머리가 모자 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록 하였다. 원형을 이루는 모자의 챙이 거울에서 보았을 때, 약간 오른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 모습을 보자마자 모자의 챙 위로 손을 올려 챙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쓰려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자가 어느 한 쪽으로도 거의 기울어지지 않게 되자 거울 앞에 서 있는 채로 뒷짐을 지고서 모으고 있던 두 발을 돌리면서 거울을 등지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그러면서 오른다리를 약간 위로 올렸다.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고서 시선은 뒷편을 향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미소를 띠며 거울에 비추어진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울의 표면 위로 뒷짐을 지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뒷편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으면서 밝고 발랄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하얀 옷차림을 한 소녀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졌다. 그러한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다시 거울을 향해 돌아선 다음에 곧바로 한 바퀴를 돌고 계속 돌면서 문을 향해 돌아선 이후에
빠른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에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선 후에 대문을 조심스럽게 닫고서 바구니를 오른손의 손목에 걸고 있는 채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하며 마을 바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마을 바깥의 풀밭에는 수많은 자그마한 꽃들이 초록색 천 위에 그려진 자그마하고 각각 다른 색을 띠고 있는 여러 점들과도 같이 곳곳에 모여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잠시 멈추어
서서 한 동안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봄에 피어난 꽃 몇 송이를 가져가고 싶었지만 이들만큼은 결코 꺾을 수가 없었다. 이들에게 손을 대려 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그 작은 꽃들이 나에게 애원을 하는 듯하다는 느낌이 마음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꺾으면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임에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든다.
꽃들을 지나치다가 우연하게 둥글고 노란 꽃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곁에 난 잎 하나 없는 초록색 줄기 위로 피어있는 둥근 꽃들. 낯설지 않은 모습의 꽃들이었다.
자그마하지만 이상하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둥근 꽃, 이전 해에도 그 꽃들을 몇 개 가져간 적이 있는 듯해 보였다. 그래서 일단 꽃들 중 하나의 곁에 멈추어 선 다음에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이들이 이전에 내가 가져갔던 꽃들임을 알게 된 이후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서 앉았다. 그리고 작은 꽃들 중 몇을 따서 바구니 안에 넣었다. 그 꽃은 약초로 쓰이는 이들로서
꽃물을 주면 시들어가는 꽃도 다시 피어난다는 꽃이다. 여기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도 해서 크나큰 어려움 없이 가져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 꽃들을 몇 송이 가져간 이후에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붉고 큰 꽃 몇 송이를 찾을 수 있었다. 이들 역시 이전에 노란 꽃들 땄을 때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몇 송이 따서 바구니 안에
넣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붉은색의 큰 꽃 주변에 있는 작은 꽃들 위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비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나비가 하늘 위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금도 마음이 들뜨고는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모습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을까나. 어렸을
때에는 나비의 모습을 따라다니기도 했었는데, 지금의 나에게는 무리일 듯 싶은 일이다.
이외에 푸른색의 큰 꽃도 몇 송이 가져간 이후, 나는 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이 곳에서 시간을 가지기로 마음을 먹고서 풀밭에 앉아서 앞에 펼쳐진 산들과 하늘의 모습을
바라보려 하였다. 하늘에 엷게 구름이 끼어서인지 하얗게 보인다. 그 위로 새들이 지나가고 이 곳을 향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맞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동안 문득 하늘 위로 작은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놀라고서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려 하였으나 그 천사들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생각에 잠기는 동안 분명히 천사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상한 일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