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을로 우연히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소녀가 마을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찢어진 하얀 옷을 입고 있었으며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던 그 소녀는
아기곰의 형상을 가진 인형을 두 손으로 안고 있는 채, 마을의 북쪽 경계 근처에 있는 어느 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주인인 바람의 정령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자신에게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목소리는 애원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바람의 정령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자신의 저녁 식사거리로 마련한 음식을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무슨 도움이 필요한가에 관해 물었다. 집으로 들어와 식사까지
마친 소녀는 그에게 자신에게 정말로 원하는 바가 있다는 답을 해 주었다. 그 대답을 듣고 바람의 정령이 무슨 소망인지를 묻자 그는 특별한 도움은 필요하지 않으며 이틀 정도만 집에 있게 해 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그 대답을 듣고서 바람의 정령은 오랫동안 집에 있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온 탓에 그러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여기고 바로 그 소원을 들어주어 이틀
동안 그 집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며 원한다면 마을과 그 근처를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 덕분에 소녀는 이틀 동안 바람의 정령이 사는 집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며 그 동안 그는 마을에 살고 있는 다른 바람의 정령과 어울리기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마침내 소녀는 다시 집을 나서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받아준 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다음에 집에 살고 있는 동안 새로이 입은 옷에 숨겨놓고 있던 것을
그에게 전해 주었다. 자주색 천으로 감싸여져 있으며 움켜쥔 손 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상자였다. 상자를 전해주고서 그는 소중히 간직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 다음에 인사말을
하고서 다시 떠나갔다.
소녀가 떠나간 이후, 바람의 정령은 상자의 천을 뜯어내고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환하게 빛나는 별 모양을 가진 작은 장식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람의 정령은
그 장식품을 상자에서 꺼내 집에 있는 책상의 서랍 중 한 곳에 두었다. 그러면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다시 별 모양의
장식을 놓아둔 책상의 서랍을 향해 다가가서 그 서랍을 열었고 갑자기 서랍 안에 별 모양을 가진 장식품의 숫자가 늘어나 비어있던 서랍 안을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이후
그는 장식품 중 일부에 실을 달아 천장에 매달아놓고 있었으며 이는 어둠이 내린 밤이 될 때마다 그의 방을 아름답게 꾸며주었다고 한다.
한편, 그의 집을 떠나간 소녀는 잠시 마을 근처에 머무르고 있다가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었다. 몇 개의 빛을 발하는 작은 씨앗, 그는 그 씨앗들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는 채,
차분하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직 풀이 자라지 않은 흙에 그 씨앗들을 놓았다. 그리고 마을에 살고 있는 이들이 언젠가 씨앗에서부터 자라난 풀의 존재를 알고 그를 통해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서 무작정 도와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받아준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길을 떠났다. 그러는 동안 그의 모습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소매가 없는 하얀 옷과 짧고 하얀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 환하게 빛나는 고리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그의 몸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으며 등에는 나비의 날개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화려하게 빛나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모습이 변하였을 무렵에 그는 가볍게 뛰어오르듯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소녀가 남긴 씨앗에서 싹이 트고 가녀린 풀이 자라났다. 그리고 주변에 자라난 여느 풀과 다름 없는 모습으로 다른 풀들과 함께 마을 주변에 있는 풀밭의 일부를
이루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소녀가 우연히 풀을 발견하였을 때가 되자 풀이 하얀 빛을 발하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려 하였다. 하지만 소녀는 그 풀의 모습을 보며 이상한
풀로 여기고 다가가려 하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는 풀을 향해 다가가려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후 풀은 빛나는 씨앗을 남겼으며 이를 마을 근처의 다른 곳으로 퍼뜨렸지만 그 씨앗이 어디로
갔는지에 관해 아는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고 한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