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의 어느 날, 마을에서 전시회가 있었다.
마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공터에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들을 올려놓은 나무로 만들어진 화가(이젤) 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고 그 주변에 몇몇 아이들이 모여서 그림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그림들을 자세히 보고 싶다는 소망에 일단 그림들 중 하나를 향해 다가가 보았다. 그리고 산 속에 있는 집 근처의 풍경이나 초록색 나뭇잎들이 자라나 있는 나무들
아래에 펼쳐진 계곡의 풍경, 그리고 하늘과 수평선을 이루는 푸른 바다의 모습 등을 아름답게 표현한 그림들을 보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나의 마음 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물감으로 저 그림에서와 같이 집 근처의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이후부터 나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 그리고 한 장의 종이에
나타나는 집 근처의 풍경을 떠올리려 하였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친구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그에 대해 그 아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처음으로 하는 일일 텐데 자신 있느냐고, 마치 나에게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라는 뜻을 전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신감이 많았던 나는 그에 대해 개의치않으려 하였다. 그리고 자신 있다는 의미의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그 친구는 차분한 목소리로 우선 종이부터
마련해야 하며 수십장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서 행여 그림이 잘못 그려지는 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밝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 나는 종이를 구하기 위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를 팔고 있는 곳을 알아내 그 곳에서 종이들을 살 수 있었다. 친구의 충고에
따라 많은 수의 종이를 마련하였는데, 그 숫자는 40 여에 이르렀다. 그렇게 종이를 마련한 이후에는 물감과 붓을 비롯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들을 구한 다음에 다시 내가 살던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친구에게 내가 마련한 물건들을 보여주면서 밝은 목소리로 준비는 다 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친구의 미소를 띠며 잘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을 듣고서 집을 향해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집에 있는 작은 나무통에 물을 담아놓은 후에 그 나무통과 함께 마련한 모든 종이들과 연필, 물감 등의 도구들을 들고 마을 근처로 나아갔다. 그리고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에 한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 중 첫 종이에 연필로 먼 앞에서 내가 앉아있는 곳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의 모습을 연필로 종이에 그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을 종이에 자세히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구름과 풀 그리고 근처에 있는 나무들까지 연필로 자세히 그리려 하였다.
그 일은 생각 의외로 쉽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앞으로 좋은 그림이 그려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한 기대감을 가지며 우선 팔레트에 초록색 물감을 뿌리는 일을
시작으로 물감을 준비한 다음에 이들을 나무통 안에 물을 묻히고 준비한 그 붓에 갈색 물감을 묻혔다. 그림에 색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뭇가지와 같은 가느다란 곳에 먼저 칠을 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그림에 본격적인 색칠을 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밑그림을 그리는 일과 다르게 색칠은 생각 의외로 쉽지 않았다. 물감이 선 바깥으로 번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림에 색칠을 하는 일을 마칠 수는 있었지만 그
모습은 내가 밑그림을 그렸을 때와는 상당히 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그리려 하지는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원한 모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전에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신 있느냐는 물음. 그와 함께
그 무렵에 자신 있다는 대답을 한 일도 떠올랐다. 그와 함께 생각 의외로 어려웠던 일에 내가 잘못 손을 대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때 나의 행동에 대한 후회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보다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욱 강하였다. 자신 있다는 말을 하였던 나 자신을 스스로 저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그림을 그렸던 종이를 왼편 근처에 놓아두고 그 위에
내가 앉아있는 곳 근처에 있는 돌을 올려놓았다. 바람에 날아가는 일이 없기 위해서였다. 그 이후, 나는 새롭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전에서 못한 일을 해내려 하였지만 결과는 언제나 비슷할 뿐, 내가 바라는 일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을 새로 그릴 때마다 이전에 그렸던 그림을 한 곳에 싾아놓는 일을 반복하며
계속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열 장 정도 그림을 그렸을 때가 되자 어느덧 태양이 서쪽 하늘에 이르며 날이 저물기 시작하였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가지고 왔던 모든 도구들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싾아놓은 각각의 종이 뒷면을 들추어보려 하였다. 다행히도 모든 종이에서 물감이 묻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림을 올려놓을 무렵, 그 이전에
맨 위에 있던 그림의 물감이 다 마른 듯 싶었다.
각 종이의 뒷면을 보는 일을 마친 나는 곧 싾아올린 종이 위에 팔레트를 비롯한 물통을 제외한 모든 도구를 올려놓고 이를 두 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왼팔 하나의 위에 오도록
하고서 그 한 가운데를 왼손으로 잡은 다음에 오른손으로 붓이 들어있는 물통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돌아갈 준비를 마친 나는 잠시 후에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 무렵, 마을 입구에서 이전에 만났던 그 친구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잘 되었느냐고 물었고 그 대답으로서 나는 그에게 그 동안 내가 그렸던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그
동안 나는 친구가 핀잔을 주리라고 여기며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예상과 달리 그 친구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격려하는 말을 전해 주었다. 처음
그린 이로서 그 정도에 이르면 괜찮은 편이라고.
친구의 격려를 듣고서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그로써 만족할 수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이전에 그렸던 모든 그림들을 책장 안에 넣어놓았다. 그 다음에 침대에 누워서 그 동안
있었던 일에 관한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자세히 나타내는 대신에 언덕과 산 그리고 하늘의 모습을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색칠을
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비웠던 나무통에 다시 물을 채운 다음에 그와 함께 남은 종이들과 도구들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밤하늘 아래 펼쳐진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그림을 그렸다. 밑그림은 내가 생각한 바 그대로 단순하게 그렸다. 언덕과 산을 먼저 그리고 나무 몇 그루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그렸다.
그 다음에 곧바로 물감으로 색칠을 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번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주 어렵지도 않았고 잘 그려지기도 하였다. 본래 바라던 바는 아니었지만 색칠이 잘 이루어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림을 근처의 풀밭에 올려놓고 그 위에 돌을 올려놓은 다음에 기쁜 마음을 가지며 잠시 앉아있으려 하다가 잠시 마을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였다. 그 때, 한 아이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아이는 곧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뒷짐을 지고 있는 채 미소를 띠며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하였다. 이전에 만났던 그 친구였다. 그 모습을 알아
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그에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 아직 밖에 나와 있었네?"
"응, 밤중에 무언가를 들고 밖으로 나가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인사를 하고서 건넨 물음에 친구는 곧바로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두 무릎을 풀밭에 대며 앉은 후에 내가 그렸던 그림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미소를 띠며 나를
향해 돌아앉고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세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는 이들이 있어. 그들 중에는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려 하는 이들이 있고, 그 모습을 단순하게 표현하려는 이들도 있어. 또, 그 모습을 기이하게
표현하려는 이들도 있지. 그러한 이들을 통해 하나의 모습을 두고 여러가지 그림이 나올 수 있게 된다고 해. 이들 모두는 나름대로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어. 그래서 세상의 모습을 표현한
방식 자체로는 그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야. 그 보다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가, 혹은 얼마나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가 그림의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서 그는 나에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날 밤, 내가 들고 나왔던 종이들, 물통과 그 안에 들어있는 붓 그리고 팔레트를 친구와 함께 들고 갈 수 있었다. 친구는 내가 집 바로 앞에 도착할 때까지 물통과 그 안에 들어있는 붓
그리고 종이를 들어주었다.
The End
Elana - Elena 의 변형
Brinde - Brind (커다란 맹수) +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