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하늘이 매우 맑아진 듯한 느낌이 든다. 가을이 끝나가는 탓인지 갑자기 추위도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바깥 공기가 무척 상쾌하여 기분이 좋다.
  오늘은 특별히 해야할 일이 없는지라 마음을 가볍게 가지고서 밖으로 나갔다. 곳곳에 초록색 기운이 사라져 노란색이나 갈색을 띠게 된 밤나무 잎들이 바닥 곳곳에 널려 있으면서 마을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으며 다른 곳에서는 빨갛게 변한 단풍잎들이 마을을 붉게 물들이려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나뭇가지에 이파리들이 많이 붙어있었지만 이제는 나무들이 잎들을 데리고 있을 여력이 없는 듯해 보였다.
  마을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긴 의자에 앉았다. 내가 앉은 곳 바로 곁에는 근처의 나무에서 떨어진 듯한 붉은 단풍잎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 모양새가 손 같기도 하고, 불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왕관 같기도 한 단풍잎. 그 모습을 보자마자 곧바로 고개를 들어 단풍나무의 모습을 보기 시작하였다. 아직 연두색 기운이 남아있는 잎들도 보이는 밤나무와 다르게 추위를 많이 타는 탓인지, 단풍나무의 잎들 중에 초록색 기운이 남아있는 이파리들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이제 한 해의 11번째 달에 이른만큼 아직 초록색인 단풍잎의 모습을 보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는 않다고 해도 초록색 잎과 붉은색 잎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 단풍잎을 왼손으로 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붉게 변한 나머지 그 색이 짙어졌는지 이파리는 심홍색을 띠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지만 본래는 짙은 초록색을 띠고 있었겠지. 건강한 삶을 살아왔다는 하나의 증거로 여길만한 모습이었다.
  잠시 앉아있다가 단풍잎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나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 단풍잎의 모습을 보니 그를 두고 자랑하고 싶어지기도 하였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던 단풍잎과 같이 진한 붉은색을 띠고 있는 이파리를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를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대한 자랑을 하면 다른 아이들이 무척 부러워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 다른 누가 내가 가진 이파리만큼 짙은 색을 가진 이파리를 가지고 있을지.
  단풍잎은 자연이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 색은 오래가지 못한다. 생명 활동이 정지된 식물체의 특성에 의해서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안타깝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그 색이라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몇 가지 시도가 있었는데 그 중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기법은 단풍잎에 이파리의 색과 흡사한 색을 가진 물감으로 칠을 하고서 이를 두꺼운 종이에 붙이고 눌러서 종이에 그 색이 남도록 하는 것으로서 경우에 따라 색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나 단풍잎의 모습을 온전히 표현하기에 내 주변에서 이 기법을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 이외에 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불의 정령들은 고구마를 이용해 만들어낸 자극성 냄새가 나는 액체에 단풍잎을 넣고 끓여 그 색을 액체에 녹아들게 하는 기법을 활용한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
  그 화려한 모습이 오래 남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단풍잎을 주워서 가지고 가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간혹 단풍잎은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내기도 한다. 책에 끼워놓은 단풍잎이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책을 꺼냈을 때 모습을 드러내어 단풍잎을 끼웠을 무렵에 있었던 일까지 떠올리게 해 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이 단풍잎을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어딘가에 끼워놓으려고 한다. '유난히 색이 짙은 단풍잎을 보았다' 는 특별한 일이 나에게 있었으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그 색에 분명히 변화가 일어날 듯 싶은데, 어떻게 하지? 근처에 있는 이파리의 모습을 종이로 재현할 수 있는 이가 사는 집으로 가서 부탁을 해야 하려나? 아니야, 일단은 계속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에 대한 생각은 색이 바래질 무렵에 해도 괜찮을 듯 싶다.
  단풍잎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차가운 느낌을 주는 공기가 계속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가을의 끝에 해당하는 11번째 달도 마지막에 가까워진 만큼 앞으로 날씨는 계속 추워질 것이다. 그러한 시점에서 나는 단풍잎에 관한 한 가지 고민을 안게 되었다. 하지만 좋지 않게 해결되어도 괜찮다. 오늘 보았던 짙은 색을 가지고 있어서 나에게 좋은 단풍잎과 같은 모습을 가진 이파리를 손에 넣는 일은 오늘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잖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