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첫눈이 드디어 하늘에서 내려왔다. 처음에는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면서 노란색을 띠기 시작하더니 천둥소리가 울려퍼지기에 큰 겨울비가 내리려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다가온 것이다. 한 차례의 천둥 소리가 지나간 이후에 갑자기 하늘에서 하얀 얼음 가루가 내려왔고 그 숱한 함박눈으로 인하여 마을 곳곳은 하얗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번에 눈이 내리는 양은 지난 해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지난 해에는 처음 눈이 내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마을과 그 주변이 얇게 눈으로 덮일 때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에는 그 일이 금방 이루어졌으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눈에 의해 땅이 하얗게 보일 정도에 이르렀다.
"눈이 많이 내리네, 지난 해보다 훨씬 많은 양이야."
그 광경을 창가를 통해 보면서 혼자서 말하였다. 그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현관문을 향해 돌아서서 누가 집으로 들어왔는지를 보려 하였다. 그리고서
집으로 들어온 아드렌(Adren) 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눈의 일부인 듯한 작은 얼음 조각들이 묻어 있었고 옷 곳곳에도 눈이 싾인 흔적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드렌은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하였다.
"갑자기 눈이 쏟아져 내려서 무척 당황했어.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저런, 조심했어야지. 날씨가 흐릴 때에는 항시 그에 대한 준비를 해 놓아야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아."
그 모습을 보며 그가 한 말에 대한 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다가올 때가 되자 어깨를 바라보며 그 어깨에 싾인 눈이 남아있다는 말을 전하였다. 그러자 아드렌은 "그래?" 라는
말을 하더니 곧바로 창가를 향해 나아가서 어깨를 손으로 짚으면서 눈이 싾여있음을 확인하고 곧바로 눈을 바깥으로 날려 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아드렌이 눈을 자신에게서
쓸어내는 일을 마치고 다시 나를 향해 돌아서자 곧바로 그에게 말하였다.
"조금 있다가 씻도록 해, 욕조를 물로 채워 놓을 테니."
"응, 알았어." 욕조를 물로 채울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서 나는 곧바로 욕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진 원통 모양의 욕조의 내부로 들어가는 수도꼭지에 뜨거운
물이 나올 수 있도록 잠금 장치의 손잡이들 중 뜨거운 물과 관련된 왼편의 손잡이를 돌려서 풀었다. 그와 함께 수도꼭지에서부터 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고, 그와 함께 물이 데워지면서
생겨나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그 후, 나는 욕조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욕조가 물로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물의 높이가 욕조에 들어간 사람의 허리 이상에 이를
정도가 되자 잠금 장치의 손잡이를 다시 돌려 물이 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에 욕실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드렌을 불렀다.
"아드렌, 욕실로 들어가. 목욕해야지."
"응, 알았어." 이에 아드렌은 알겠다는 답을 한 다음에 욕실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창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눈이 어떻게 오고 있는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려 하였다. 아직도 눈은 엄청난 기세로 내리고 있었다. 아니, 이전보다 더욱 많이 오고 있는 듯해 보였다.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크고 작은 하얀 얼음 가루가 일시에 대지를 향해
내리고 있었고 그로 인하여 마을 지붕과 나뭇가지 등에 하얗게 눈이 싾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잠시 바깥으로 나가 보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눈을 굴려 둥그런 덩어리를 만들고 있었고, 또 다른
몇몇 아이들은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보고 있다가 눈싸움을 하는 곳 오른편으로 돌아섰을 때, 나는 어느 집 지붕 아래에서 두 무릎을 세운 채, 앉아있으면서 니무로
만들어진 네모난 받침대를 다리에 올리고 받침대 위에 올려진 종이 위에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지붕 아래에
앉아있는 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려 하였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리아라(Liara) 였다. 평소에도 그림을 그리는 일을 무척 좋아하는 이인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눈이 내리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지붕 아래에 앉아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리아라를 불렀다. 하지만 리아라는 종이와 눈이 내리는 광경으로만 시선을 향하고 있을 뿐, 나의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으려
하였다. 심지어 나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보며 괜한 행동을 하였다고 여기며 나 자신이 무안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나중에 리아라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을 먹고 다른 곳을 향해 떠나갔다.
잠시 후, 나는 이전에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던 곳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두 아이들이 커다란 눈 덩어리를 세워 놓고 그 위에 약간 작은 눈 덩어리를 힘을 합쳐 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먼 과거의 일이었다. 당시 그 아이들만큼이나 어렸던 나는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무척 신이 나는 표정을 지으며 집 바깥으로 뛰쳐 나오다시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동안 눈을 맞으며 좋아하다가 눈이 어느 정도 싾이게 되자 눈 덩어리를 굴리면서 커다랗게 만들고 이를 두 번 행하여 눈사람을 만들었었다. 눈사람을 만들게 된 곳은 나무들이 모여있는
마을 한 가운데의 어느 의자 부근. 그 곳에서 나와 아드렌은 눈사람이 무사히 삶을 살아갈 것을 기원하였었다.
그 눈사람은 눈이 그치고 며칠 지난 후에도 굳건한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었지만 나의 기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마을에 살고 있는 크사란(Xaran) 이라는 아이가 넘어지면서
눈사람을 쓰러뜨린 것. 그 광경을 보며 나와 아드렌은 놀람을 어찌하지 못한 채, 당황하고 있었다 크사란이 우리가 만든 눈사람이 맞냐고 물었고, 곧바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지만 무너진
눈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와 아드렌의 슬픔은 매우 컸다. 아드렌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미소를 짓다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눈사람을 세워 놓았던 곳에 잠시
머물렀다. 눈이 싾여 하얗게 보이는 가지들 아래로 역시 눈이 싾여 하얗게 보이는 의자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드렌이 목욕을 끝내면 반드시 불러서 함께 밖으로 나가도록 하겠어."
라는 혼자 말을 하고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집으로 돌아올 무렵, 아드렌이 목욕을 끝내고 식탁에 앉아있으면서 데워진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를 하고서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 때처럼 다시 한 번 눈사람을 만들어 보자, 좋지 않아?"
예상한 바대로 아드렌은 그 제안에 선뜻 응하지 않았다. 다시 목욕을 할 수밖에 없기에.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전하고 한참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 되자 함께 목욕을 한다는
전제 조건을 언급하고 내가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제안에 응하였다. 그리고 온화한 표정을 짓고서 밝은 느낌을 주는 목소리를 내며 나에게 물었다.
"에히아, 너, 무척 기분 좋아 보인다. 정말로 함께 가고 싶었던 거야?"
The End
Echia - Echi (조력자) + a
Varsal - 든든한 후원자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