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
"내일만 지나면 새해잖아. 이웃집에 사는 친구에게 그를 기념하는 글을 쓰려고."
간만에 내 집으로 찾아온 리아가 건넨 물음에 답을 하였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아주 오랜간만에 편지글을 쓰는 일을 하였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이에게 전할 새해 인사를 위한
짧은 글이었다. 비교적 길지는 않은 글이고, 마지막에 '행복한 새해를 보내' 라고 마치면 되는데, 이웃에 살고 있는 이에게 직접 전해주어야 하는 글이다 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생각하다보면 좋은 글이 될 만한 무언가가 떠오르리라는 생각을 하며 계속 일을 행하였다.
언제 올지 궁금하였던 한 해의 끝이 이렇게 다가왔다. 가끔 실감이 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 올해가 시작될 때부터 기록해 놓은 한 해의 일기를 보면 한 해의 끝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도 연필로 편지글을 적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어서 글 쓰는 일을 잠시 멈추고 책상 근처에 올려놓은 일기장을 꽂아 놓은 작은 책장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서
두껍지 않으면서도 아주 얇지 않은 작은 책자들을 바라보다가 가장 오른쪽에 꽂혀 있는 책자를 꺼내 그 중간을 펼쳐 보았다.
여름에 먼 곳으로 놀러간 일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당시, 나는 유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산 한 곳에 위치한 낡은 저택에 들어섰다가 유령이 남긴 흔적조차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었는데. 그 때 당시에는 무척 창피스러웠는데, 그 일을 지금 다시 회상해보니 재미있었던 일이라 여기어진다. 그래, 나름대로 좋은 일이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책자를 넘겨 가장 마지막에 쓴 일기인 일주일 전의 일기를 보았다.
천체 관측을 하고 싶다고 세니티스(Senitis) 에서 망원경을 마련한 아리사(Arisa) 의 모습을 본 일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아리사는 겨울 하늘만 되면 별을 바라보고는
했었다, 가장 많은 별이 보이는 때라고 말하면서. 그러다가 근래에 이르면서 더 많은 별을 보고 싶어하면서 세니티스(Senitis) 의 망원경을 구하기를 원하였다가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룩하였는데,
그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즐거워하였었다.
그 일기를 보다가 곧바로 책자를 덮고 이를 책장에 다시 꽂은 다음에 편지 쓰는 일을 이어나가려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글을 쓰려 하니 잘 되지 않는 듯 하면서 잘 되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참으로 기묘한 느낌이다. 그러한 느낌을 가지면서 일을 계속해 나아가다가 갑자기 근처 원형의 작은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리아(Lia) 가 나에게 물었다.
"야니아(Jania) 는 오늘밤에 잠을 청할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잠을 자야 새해 첫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잖아."
리아의 물음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리아가 자신이 물음을 건넨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혔다.
"그렇구나, 난 또 네가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하리라고 믿을 줄 알면서 물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믿음은 가지지 않고 있나 보네."
리아는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믿음에 대한 말을 물음을 건넨 이유로써 드러내었다. 물론, 지금은 믿지 않지만 한 때,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자면서 보내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말을
믿으면서 잠을 자지 않은 적이 있었다. 소문으로만 믿은 이야기로서 사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인데, 그 무렵에는 눈썹이 하얗게 변하는 일을 두려워하여 한 동안 한 해의 마지막 날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는 했다가 나중에 이나사(Inasa) 로부터 그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고,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잠을 자지 않는 일을 그만두었었는데, 리아는 내가 그러한 믿음을 가졌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그러한 물음을 건넨 듯 싶었다.
"이제 가지고 있지 않지. 물론, 그 때에는 가지고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 때와는 달라. 잘못되었다고 여기어지는 바가 있으면 두 번 다시 믿어서는 곤란할 거야."
리아의 말을 듣고서 한참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러면서 글을 쓰는 일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행복한 새해를 보내' 라는 한 마디를 적는 일을 마지막으로 글을
쓰는 일을 마쳤다. 그리고 책상에 앉은 채, 기지개를 편 다음에 책상에서 일어나서 리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때, 리아가 나에게 물었다.
"편지글을 쓰는 일은 마쳤어?"
이에 나는 완전히 마쳤다는 답을 하였다. 그리고 미리 마련해놓은 봉투에 편지지를 넣고 봉투에 이웃집에 사는 이의 이름을 적으면서 그에게 보낸다는 의미의 문구를 적으면 그로써 준비는
완료라는 말을 그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리아는 밝은 목소리로 "다행이야." 라는 말을 전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 잠시 창가를 통해 서쪽 하늘로 다가서기 시작한 태양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에게 시선을 향하며 물음을 건네었다.
"이번 한 해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
"응,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소중한 추억이 될 만한 일들을."
그 물음에 내가 밝은 목소리를 내며 답을 하였다. 그러자 리아가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다음 해부터는 어떠한 일들이 있을까? 다음 해는 소중한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을까, 이번 해, 아니 지난 여러 해들처럼."
물음을 건넨 리아의 목소리로부터 그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희망과 앞날에 대한 기대를 느끼며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하였다.
"응, 분명히 그러할 거야. 이번 해와 마찬가지로 다음 해에도 소중한 추억들이 생겨나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겠지. 그러한 기억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싾여가면서 나, 너 그리고 이 곳에
사는 모든 이들의 마음은 지금보다 높은 곳에 이르게 될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그 말을 듣고서 리아가 나의 생각이 옳다는 의미를 전하는 말을 하였다.
내가 말한 대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여러가지 일들을 겪는다. 그 중에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으며, 즐거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싾인 기억의 일부가 되어간다. 그를 통하여 사람들은 보다 높은 위치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