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충분히 견딜만했는데, 이제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추위 때문에 계속 이불 속에 있는 채, 누워 있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아침이니까 일어나야 하는데,
창문을 닫을 수 있고 집 안에 솜이불도 있으니, 창문을 닫고 숨이불로 나 자신을 감싸고 있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추위를 견딜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솜이불이 상당히 포근하다. 그리고 신체에서 생기는 열기를 어느 정도 잘 보존하여 그를 통해 추위 속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지난 여름 때에는 친구들에게
솜이불 하나만 있으면 추위를 견디는 일은 어렵지도 않다는 한 마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밖에 나가는 일이 달갑지 않아서 하루 종일 집에만 머무르기로 마음을 먹고 책상에 앉아있으면서 즐길 수 있는 도구를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가게에서 마련한
오르골이 들어있는 나무 상자를 발견하고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오르골을 꺼냈다. 외형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피아노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오르골로서 피아노처럼 건반
덮개를 열면 건반이 드러난다, 실제로 건반을 누를 수는 없다고는 해도. 하지만 위쪽의 덮개를 열어도 피아노의 기계 장치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오르골의 작동과 관련된 장치가 덮개의
안쪽에 들어있어서 오르골을 작동시키거나, 작동되는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우선 작은 피아노의 형상을 들고 그 아래 쪽에 위치한 길다란 막대기 형상의 태엽을 감은 다음에 그 형상을 다시 책상 위, 나의 바로 앞에 올려놓았다. 그리고서 건반 덮개를 열어젖힌
다음에 형상의 오른편을 오른손으로 받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형상이 기울어져 넘어지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바로 옆에 위치한 막대를 왼손의 둘째 손가락으로 올리고서 위쪽
덮개를 내려 들어올린 막대기에 덮개가 닿도록 하였다.
막대가 들어올려지면서 기계가 작동하여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귓가에 들려오는 오르골 특유의 맑은 음색, 이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게 여기어지는 음색인데, 그 소리가 내부에
있는 원통에 돌출된 점과 그 옆에 있는 철로 만들어진 굵은 선이 부딪치면서 들려온다는 점이 매우 신기하게 여기어졌다.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기계 장치로부터 맑은 소리를 발현시킬 수 있는
것일까? 오르골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궁금하게 여기어지는 바이다.
그 맑은 음색이 모여서 하나의 순수한 느낌을 주는 곡조를 이루어낸다. 그래서일까, 오르골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어떤 때에는 숲 속 어딘가에 있다는
요정의 나라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란 이와 같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맑은 음색이 만들어내는 맑은 음악이라 여기어도 괜찮으리라. 그래서 항상 같은 음악만 들려주기 때문에 계속
듣다보면 식상해지기도 하겠지만 살아가면서 한 번씩 들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피아노 형상의 오르골에서 음악이 멈춘 후, 나는 잠시 나무 상자를 들어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서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가 세 개이고 등 받침대가 없는 의자 형상의 작은 물체가
아직 안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전에 미처 꺼내지 못한 듯하다. 그 의자를 꺼내놓고 작동을 멈춘 오르골 앞에 올려놓아 보았다. 근사한 모양새가 나왔다. 의자에 앉은 사람 형상의 인형을
그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무척 아쉽다.
다시 한 번 오르골애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나니 이전에 어느 집에 갔을 때, 그 집의 식탁에 올려져 있던 오르골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오르골은 유리 상자 안에 기계 장치가 들어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고, 상자 옆면의 태엽을 감으면 바로 기계가 작동하여 음악이 들려오게 되는 것인데, 그 맑은 음색이 순수하면서도 슬픈 음색을 들려주었었다. 그래서 그 음악을 듣다가 집의
주인인 아이에게 음악이 상당히 슬프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에 그 아이가 이렇게 말했었다.
"우울하지만, 슬퍼할 때마다 나의 심정을 이해해주는 이의 노래 소리처럼 들리는 소리가 무척 좋아."
그러면서 유리 상자차럼 생긴 오르골을 소중히 여기던 아이. 근래에 이르면서 사정 때문에 본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떠나갔다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는지. 언젠가 다시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 보았던 오르골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그 기계에서 나오는 음악도 들어보고 싶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