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바깥 공기는 차갑다. 추위가 지배하는 계절도 20 일만 지나면 끝난다고 해도, 지금은 겨울.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 그러한 계절의 후반에서 나는 특별히 무언가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 평온함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집에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시간을 보냈을 따름.
  혼자서 게임판을 펼치고 게임을 하기도 했고,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홀로 이런저런 의미 없는 상념에 잠기기도 하였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어 집안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이외에는 다른 일 없이 평온함 속에서 불꽃과 빛의 바퀴가 동쪽 봉우리에서 서쪽 봉우리로 나아가는 모습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고 별들이 떠오를 무렵, 우연히 찬장을 손으로 열었다가 그 안에 넣어두고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네모난 상자의 모습을 보았다. 갑작스럽게 상자의 모습을 보게 된 나는 어떠한 상자일지에 대해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을 꺼낸 다음에 다시 찬장의 문을 닫았다. 분홍색 물감으로 칠해진 상자. 찬장에서 들어내어 손에 들고 있는 상자를 들고 있던 나는 곧바로 상자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상자 내부에는 연한 갈색을 띠는 둥근 물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얼핏 보기만 하더라도 그들이 과자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뜻밖의 행운을 얻었다는 생각을 한 나는 상자 안의 물건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자마자 일단 찬장 근처에 있는 원형 탁자에 앉아서 상자와 뚜껑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후에 상자 안의 과자들을 하나씩 먹었다. 적당히 단 맛이 나는 느낌이 좋았다. 우유라도 마련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다.
  그렇게 즐겁게 과자를 다 먹고, 비어진 상자의 뚜껑을 닫으면서 상자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 상자가 어떻게 찬장 안에 들어가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상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왔다.
  그 상자는 본래 이웃에 사는 친구의 것으로서, 친구가 한겨울에 세니티스(Senitis) 로 여행을 갔다가 그 곳에서 만들어진 과자가 들어있는 모습을 본 이후에 사온 물건 중 하나였다. 그 친구는 과자가 들어있는 상자를 잔뜩 사서 돌아온 후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가 남은 한 상자를 보관해두고 있다가, 더 이상 먹을 생각이 없었는지 나에게 그 상자를 건네주었다. 고맙게 상자를 받은 나는 이를 집으로 재빨리 가져오고서 찬장 안에 넣어두었다. 기회가 생기면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일은 과거에 분명히 있었던 일이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이를 기억하는데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그 일에 대한 기억 자체를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가지 일로 바빠야만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못해 그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근래에 이르면서 특별히 많은 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나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니, 다음부터는 주의해야겠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