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강가의 저녁.
  거대한 구름 속, 강가에 자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배를 대는 곳 위에 앉아있으면서 건너편의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가진 나무 받침대 위에 서 있는 커다란 집을 바라본다. 그 집은 겉으로 드러나 있는 모습은 온전하지만 그 내부는 비어있고 무너진 유령의 집과도 같은 곳이었다. 오래 전에는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기거하지 않아 보살핌을 받지 못해 무너져가는 곳이 되어간 것이다. 강가에 살던 사람이 편안히 살아가던 곳이었을텐데, 끝내 유령이 살아갈만한 곳이 되다니, 안타깝다.
  그 집을 한 동안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 주변의 길을 걸어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먼 앞에서부터 격렬한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놀라면서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다가가보니 강물 건너편의 어느 넓은 초원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보기 힘들다고 장담할 수 있는 옷차림으로서 신체에 붙는 하얀색 혹은 검은색을 띠는 상의와 검은색의 짧은 바지차림을 한 아름다운 여성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서 몸을 흔들며 격렬한 춤을 추고 있었다. 바지와는 다르게 상의의 모습은 다양하였다. 투명하고 긴 소매를 가진 하얀 상의, 긴 소매를 가지고 있지만 가슴 아래부터는 없는 하얀 상의, 목에서부터 가슴을 향해 나아가는 선과도 같은 모양을 갖춘 어깨끈을 가지고 있는 검은 상의 등 여러 모습이 있었다. 여성의 모습 역시 다양하여 머리카락 모양부터 얼굴 모습까지 각자 달랐지만 한가지로 모두 아름다운 이들이었다.
  "이상하다. 요즘에는 이 곳에서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을 가진 이들인데......."
  이상한 이들이었다. 저러한 옷차림을 한 이들의 모습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여기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춤을 방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였기에. 분명 그들은 신나는 기세로 춤을 추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었음을 의미하는 바. 방해는 곧 죄악이리라.
  한 동안 여성들의 춤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다가 계속 머무르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을 지나쳐서 계속 길을 나아갔다. 격렬한 음악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새들이 강가의 나무 부근에 앉아있으면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나무에 앉은 새들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로 시선을 향해 보았다. 하늘 위에도 몇몇 새들이 하나의 선을 그리며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고요해진 주변의 대기. 이를 접하면서 격렬하게 춤을 추는 여성들과 그에 어울리는 격렬한 음악이 들려오던 곳을 떠올리면서 갑자기 야릇한 생각이 밀려오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급히 내가 지나왔던 곳을 향해 돌아선 다음에 여성들이 춤을 추고 있던 곳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음악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앉았고, 여성이 춤을 추고 있던 곳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였다. 그 대신, 하얀색을 띤 낡은 상의와 푸른색을 띠며, 서 있을 때에는 발까지 내려갈 듯한 길고 낡은 치마를 입고 있는 한 노파가 나무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짚고 앉아있는 채, 쓸쓸히 다리를 모으고 두 무릎을 세운 채, 앉아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 노파가 내가 자신의 바로 앞에 이르자마자 갑자기 슬픈 목소리로 강 건너편에서 길을 지나가는 사람인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호소를 하는 듯이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각자의 꿈에 희망을 걸며 뜨거운 삶을 살아나갔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환호는 어디에서나 이어졌고, 이를 두고 우리들은 우리들이 보이는 삶의 방식에 대한 그들의 보답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우리가 정식으로 꿈을 펼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 세상은 우리를 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젊었을 때의 열정은 세상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피어오르는 열정을 죽이는 세상은 차가운 저승과도 같다. 차가운 죽음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어찌 꿈과 희망을 가지며 삶다운 삶을 이어갈 수 있으랴!"
  한탄어린 슬픈 분노의 감정을 실은 큰 목소리를 내며 노파는 말을 마쳤다. 그리고 하늘이 어두워지는 때에 갑자기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노파가 사라진 이후에도 나는 한 동안 그가 앉아있던 곳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노파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금방 짐작해낼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그의 뜻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이가 있을지는 의문스러웠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