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이어지고 있던 매서운 바람이 잠들었다. 이웃에 사는 이로부터 사랑한다는 편지를 선물로 받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큰 일을 모두 마친 뒤에 맞이한 간만의 바람이 잠드는 날이었기에 맞이하는 순간마다 평화로웠다.
  언제나처럼 집을 나서 거리로 나가보니 아이들이 활발하게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 한 가운데의 넓은 지역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었는데, 꽤 격렬해 보였지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힘들거나 괴롭다는 감정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른편 의자들 중 하나에서는 내가 살고 있는 곳 반대편에 위치한 집에 살고 있는 이가 앉아 있으면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차분하게 불고 있었지만 하모니카에 의해 나타나는 소리는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밝은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들어왔던 우울한 하모니카의 음악과는 전혀 대조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음악이었다.
  잠시 그 음악을 들으며 앉아있는 이의 근처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아직 음악이 끝나지 않았을 때에 조용히 마을의 동쪽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마을 동쪽의 집들 중 한 곳의 대문에 한 사람이 기대어 서 있었는데,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이인 듯해 보여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 때, 그가 나의 모습을 보더니 바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모습과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동쪽 거리의 집들 중 한 곳에 살고 있는 '한나(Hanna)' 라는 이름을 가진 이였다.
  일단 그에게 왜 집 앞에서 기대고 있느냐고 묻자, 한나는 그 대답으로써 창고의 장작을 정리하느라 지쳐서 바람이라도 맞을 겸, 문에 기대어 잠시 쉬고 있다고 답하였다. 그 대답을 들은 직후에 "내가 도와줄까?" 라고 묻자, 그는 필요 없다고 답하고서 이미 일을 끝내 놓았기 때문에 도움을 줄 필요까지는 없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어서 나에게 조금 있으면 봄이 올텐데,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직 진정한 봄이 오려면 몇 주는 더 기다려야 한다고 답하면서 그의 제안에 거절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 후, 그의 곁을 지나쳐서 교회의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교회는 오랫동안 난로에 불을 지피지 않은 탓인지 차가운 공기가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그 교회의 입구 건너편에 위치하고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전, 한 해가 시작되던 날에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루고자 하는 바에 관한 기도를 한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십자가에서 돌아서서 다시 교회의 밖으로 나아갔다.
  산들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공기가 차가운 탓인지 바람도 무척 차갑다. 아직은 겨울이었지만 그래도 날씨도 좋고, 특별히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날이다. 그 때 마침, 차 한 잔이 마시고 싶었고, 그래서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이전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오늘이 포함된 2 월의 몇 주 간이 한 해 중 가장 평온한 때인 것 같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