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무에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아직 아침의 바람은 여전히 차갑고, 풀밭이 되살아날 조짐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이제 하늘의 분위기도 변화하고, 새순도 돋아난만큼, 머지 않은 날에 새 잎이 나뭇가지에 돋아나고, 풀밭 곳곳에 꽃이 피면서 진정한 봄날이 시작될 것이다.
  짙은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린 그 다음날이어서 그러한지, 하늘이 너무도 맑다. 정말 선명한 푸른색을 띠고 있는 듯해 보인다. 산길은 눈이 없어졌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직 겨울 무렵의 산길 그대로이지만 날씨가 좋고, 하늘이 선명해 마음에 드는 날이다. 길을 가는 도중에 누군가가 잘라놓은 나무의 밑둥에 자리잡고 앉아서 그 먼 곳에서 흐르고 있는 개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개울도 이제 봄을 맞이한 탓인지 이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보였던 살얼음들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투명한 물이 돌과 바위들 위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바람이 불어온다. 이전까지의 겨울 바람과 다르게 차갑지도 않으면서 산뜻하기도 한 바람. 그 바람에 나의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나비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으면 좋겠는데, 아직 나비가 날아다니기에는 무리인 날이라는 사실을 나비들도 알고 있는 것일까.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봄이 되면 하고자 하는 일들이었다.
  이전에 추워서 집에 있는 동안, 봄에 할 수 있는 일을 구상해 본 적이 있다. 화창한 봄날이 되었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연극이라도 해 보고 싶었고, 그를 위한 대본도 몇 만들어 놓은 상태.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봄이 오지도 않은 탓에 그 구상은 구상으로 머물고 있는 상태이다. 다음 달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 날에 아이들이 바쁜 일정이 없거나 아이들이 참가할 의향을 분명히 보일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리고 며칠 전에 다친 채로 발견되었던 산비둘기를 위한 나무집을 만들어주어야 할 필요도 생겼다. 가까스로 치료를 받아 괜찮아진 산비둘기는 지금껏 한나(Hanna) 의 집에서 키워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산으로 돌아가야 하는만큼, 그 예비 단계로서 높은 나무 위에 그의 집이 있어야 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나무를 마련하는 일부터 해야 하겠다. 집에 장작으로 쓰던 나무들이 몇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들 중에는 집을 만들기 위한 소재로 쓰기에는 작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 작은 나무들을 이어붙이면 괜찮으려나. 그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이 모든 일이 조만간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제대로 해야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그와 더불어 그 일을 하는 순간과 함께 진정한 봄의 나날도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해 나 자신이 설레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번 봄은 과연 어떠한 순간들로 채워지게 될까."
  그 생각을 하다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혼자서 말하였다. 그러는 동안 개울물은 여전히 녹아내린 유리의 흐름처럼 투명한 물길을 만들어가고 있었으며, 차가운 바람이 그 위를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잠시 보고 있다가 시선을 나무 밑둥 주변으로 옮기려 하였다. 그러다가 나무 밑둥 주변의 한 곳에 흙과 동화되어가는 낙엽들 사이로 작은 초록빛 새싹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