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 하얀 꽃이 가득한 날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이 피어나 이제 초록색 기운을 되찾아가는 언덕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그 중, 꽃줄기가 다른 꽃들에 비해 높아 마치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민들레를 발견하고서 그 앞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니 이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꽃 줄기를 가지고 반지를 만들기도 했고, 꽃을 여럿 달아서 꽃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모두 오래갈 수 없는 물건들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물건들을 만들면서 굉장히 즐거워했었다.
  "지금 같으면 그러한 일은 못하겠지만."
  과거의 회상을 마치고서 그렇게 혼자서 말하였다. 정말로, 지금 같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꽃을 꺾을 때마다 꽃이 애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꽃을 대할 때의 목소리가 들린 이후부터는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면서 봄바람에 가냘프게 흔들리는 꽃들의 모습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였다. 그러는 동안 꽃들에 머무르는 목소리의 실체를 상상해 보기도 하였다. 꽃을 건드릴 때마다 연약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으므로, 그 실체도 분명 여자아이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러다가 꽃이 거의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누우면서 두 팔을 머리 아래에 놓으려 하였다. 그러면서 구름이 모두 사라져 새파란 하늘을 보려 하였다. 얼마나 멋진가! 자극을 주지 않는 두 색의 모임은 분명 지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려는 자연의 배려이리라.
  언제나 그러하지만 꽃의 모습을 보게 되면 그토록 밝고 희망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소망을 가지고는 한다. 그리고 그 소망은 어렸을 적 추억을 되살리고, 이를 단순한 추억으로 여기지만 않으려 하는 나에게 앞으로의 삶에 대한 하나의 지침 중 하나가 되어주기도 한다. 분명 순수하였던 시절의 기억은 마음을 깨끗이 하고, 보다 밝은 마음을 가지고 앞길을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행한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하늘 위에서 독수리들이 원을 그리며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디론가를 향해 나아갔다. 강함과 용감함을 상징하는 새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니, 이는 필시 좋은 징조일 것이다. 비록 그 징조가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겠지만 좋은 기분을 가지게 하여 앞으로 있을 일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러니 좋은 현상임에 틀림 없다.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무언가 큰 일을 한 번 해 보아야 할 듯 싶다, 좋은 예감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내가 누워있던 곳이 먼 옛날에는 병사들이 누운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곳은 이제는 더 이상 불행 혹은 불운과 관련된 곳은 아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