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자마자 비구름이 내릴 수 있는 양의 한계에 도달하기라도 한 듯이 비가 내리는 소리가 그치고, 바깥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자 나는 창가로 다가가서 창가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 사이로 보이는 어두운 푸른빛 하늘을 통해 정말 비가 그쳤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서 다시 거실로 돌아간 다음에 밖에 나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곧바로 집을 나섰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간만에 밤중에 밖에 나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마을의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마을 근처의 산길 오른편의 한 곳에 위치한 나무를 발견하고 그 나무 근처에 섰다. 하지만 기대지는 않았다. 빗방울에 나무가 젖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오른손으로 나무 줄기의 한 부분을 짚었다. 그러면서 잠시 나무 근처의 풀밭을 보려 하였다. 어두웠던 탓일까, 비가 그친 이후의 물에 젖은 풀의 모습은 비가 오기 전의 모습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듯해 보였다. 그렇게 나무 근처에 서서 풀밭을 보고 있다가 잠시 후에 풀밭 바로 앞에 앉아서 풀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려 하였다.
  그러자 비로소 풀밭에 머무르는 물방울들의 모습이 눈앞으로 선명히 드러났다. 초록빛 풀에 하늘이 내린 투명한 구슬,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어렸을 때처럼 풀을 마구 흔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으나, 곧 그 생각을 참아내고 그 일을 행하지 않았다.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물방울들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붉은 색을 띠는 구름이 하늘을 가리기 시작하였을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을을 등지는 방향으로 산길을 걸어 나아갔다.
  그 산길은 이전부터 자주 걸어왔기는 했지만, 밤에는 걸어본 적이 없었기에, 이렇게 밤에 산길을 걸어보니 그 느낌이 새로웠다. 그러다보니 밤 중에 보는 모든 사물들이 분명 산길을 걸을 때마다 항상 보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보였다.
  그렇게 잠시 길을 걷는 동안, 갑자기 하늘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약하게 내리는 것이다보니 별 문제가 없으리가 생각하고 계속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러다가 네 귀퉁이에 달린 막대기의 끝을 축 삼아 천이 매달린 네 바퀴를 가진 네모난 나무 수레를 발견하였다. 그 수레 앞에는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두건을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이가 서 있었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었다.
  "원하시는 물건이 있으신지요."
  마침, 치마의 오른쪽 주머니에 동전 다섯 개가 있기에 그 다섯 개로 살만한 물건을 찾아보다가 자그마한 손가위 하나를 발견하고서 그 물건을 사겠다고 말하였다. 작은 천을 자르는데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가격은 내가 가진 동전 다섯 개의 가치와 같아서 동전 다섯 개를 그에게 모두 내고 손가위를 그로부터 받아 주머니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의 수레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갑자기 물방울이 굵어지면서 이전처럼 비가 하늘에서 거세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비를 맞으며 마을로 돌아갔다.
  "진작 우산을 가져갔다면, 이러한 일은 없었을 텐데......."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을 입구에 돌아오는 순간, 나는 후회의 감정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그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설마 비가 오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불러낸 결과였다. 그 결과로 인해 내가 해야할 일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을 말리는 일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