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운행되는 작은 기차를 타고 서쪽의 해안가를 향해 나아갔다. 밤에 출발하여 새벽 즈음에 도착한 기차. 그 기차에서 잠을 자고 깨어나자마자 나는 목적지의 모습을 보았고, 그 이후에 곧바로
기차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거리를 잠시 걷다가 그 왼편에 자리잡은 해안으로 나아갔다. 그 곳에 온 목적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계속 산 근처에만 머무르고 있다보니 들게 된 바다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해안으로 도착하자마자 내가 본 것은 살색을 띠는 모래사장과 그 너머로 넘실거리는 푸른색 파도였다. 여느 해안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실제로 보는 일은
처음인지라 그 모습이 너무도 흥미로워 보였다. 날이 덥다보니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옷이 하나 뿐인지라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래사장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바다가 시작되는 곳
근처의 바위에 머무르면서 그 곳으로 밀려오는 바닷물에 발을 적시는 일 정도만 행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고개를 왼편으로 돌렸을 때, 나는 바위 근처로 다가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왼쪽 귀가 마치 바다 짐승의 아가미처럼 생긴 이들로서, 모두 바닷물과 같은 연한 청록색을 띤 긴 머리카락을 바닷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 중 왼쪽에 있는 이는 하얀색의 소매가
없는 하얀 상의와 무릎까지 내려갈 정도의 길이를 가진 하얀 치마를 입고, 목에는 길다란 팔면체 형상을 갖춘 푸른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걸고 있는 이였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에는 소매가 없고, 오른쪽에는
팔목 근처까지 이를 정도의 길이를 가진 소매가 달린 하얀 상의와 역시 왼쪽에 있는 이가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치마를 입고 있는 이였다. 이들 모두 바다에 들어갈 것을 염두하고 있었는지 신발은
신고 있지 않았으며, 바다의 짐승이라도 잡으려 하는지, 오른쪽에 있는 이는 오른손에 자신의 키보다 약간 작은 정도의 길이를 가졌으며, 끝 부분에 여느 단검만큼 긴 칼날이 달린 물건으로서, 모든 부분이
푸른색으로 칠해진 창을 쥐고 있었다.
모두 물의 정령이었으며, 이들 모두 나름 어린 여자아이다운 귀여운 면모와 함께 다소 여성적인 아름다움도 겸하고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어지간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내가 앉아있는 곳 바로 앞의 바위에 올라 앉더니, 잔잔하게 일렁이는 수평선의 모습을 잠시 보고 있었다. 그 때, 목걸이를 걸고 있는 이가 창을 쥐고 있는 이에게 시선을 향하더니, 그에게
약간은 성숙한 느낌을 주는 여자의 목소리를 내면서 말을 건네기 시작하였다.
"마르얀(Marjan), 이 곳으로 오는 일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지?"
"응, 그 동안 바닷가는 여기저기 가 보았지만, 이 곳은 어렸을 때 가 본 이후로 정말 오랜만의 일이네."
그 말에 창을 쥐고 있는 이
-마르얀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가 다소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를 내면서 답하였다. 그 이후, 목걸이를 걸고 있는 이가 다소 밝은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어렸을 적 일을 회상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30 여년 전이었던가, 그 때, 우리가 이 곳에 오면서 모래사장에 버려진 컵 비슷한 무언가로 모래성벽을 만들었었잖아.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그 때, 우리는 모래가 높이 싾이면 바닷물도
그것을 넘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무엇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했었던가."
"네가 만들어낸 생각이잖아, 아시니아(Ascinia). 바닷가에서 모래로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파도가 부숴버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일단 모래를 높이 싾으면서 그러한 생각을 나에게 말했었는데.
그러다가 바닷물이 밀려왔을 때가 되니....... 이렇게 해안으로 오니까, 그 때 있었던 일이 막 생겨나고는 해."
처음에 목걸이를 걸고 있는 이
-아시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 가 과거에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 마르얀이 그에 대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바를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마르얀이 잠시 나에게 시선을 향하더니 자신과 무척 다른 모습을 가진 나를 보면서 눈을 크게 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서 나에게 물었다.
"어라? 모습을 보아하니 먼 곳에서 오신 듯 한데, 어디에서 오셨나요?"
"서쪽 내륙 지역에서 왔어요. 산이 많이있는 곳 말이에요. 그 곳에서 바다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기차를 타고 이 곳까지 왔지요."
그 물음에 나는 내가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이유로,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시니아는 환하게 웃으면서 이 곳의 모습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온 것인지에 대해 물었고, 그에 이어서
마르얀이 여름철에 오기에는 좋은 곳이니 천천히 둘러보다 가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자신의 창에 잠시 시선을 두더니 나에게 밝게 웃으며 말하였다.
"이 창은 제가 해야할 일 때문에 가지고 왔어요. 바다 짐승을 잡아야 하거든요. 한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서....... 지금은 잠시 시간을 내서 이렇게 아시니아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곧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래요?"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미소를 띠며 그렇게 물었다. 이후, 나는 곧 마르얀이라는 사람이 바다로 들어가야 하니, 내가 곁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집중력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고 다른 곳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먼 앞에 한 여자아이가 소매가 없고 어깨끈이 달려 있으며, 신체에 달라붙는 푸른색 상의를 입고 짧은 푸른색 치마를 입은 채, 바닷물이 밀려오는
모래사장 위에 홀로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청록색 머리카락이 발까지 내려갈 정도로 길고, 오른쪽 귀가 푸른색 바다 짐승의 아가미처럼 보여서 일단은 물의 정령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린 아이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아름다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도대체 저 아이는 누구지?"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의아해하며 혼잣말을 하였다. 그러다가 잠시 고개를 돌리고 바위에 서 있던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마르얀은 이미 바다에 들어갔는지, 바위에는 한 사람만 보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바위에 서 있는 이
-아시니아- 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무언가 상념에 잠겨 있는 듯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잠시 가까이 다가갔다가
그의 혼잣말을 듣게 되었고, 그 혼잣말이 끝날 때까지 그 곳에 서 있었다. 다행히도 아시니아는 나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있잖아, 마르얀. 그 일은 기억이 나? 네가 누군가의 눈에 띄어 곤란해 했었다는 일. 네가 그러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니까, 외지에서 온 누군가가 그 모습에 유난히 시선을 두었겠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옷차림이 그 때의 너에게는 참 어울렸다고 생각해. 너의 건강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옷차림이 주어졌으니, 이에 끌리지 않는 이는 감정이 둔한 이외에는
별로 없었을 거야, 틀림 없이."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이야기에 이어지는 말을 하였다.
"그 때의 네 모습은 이상하게 지금 환영으로 이 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 그 모습을 보고 이끌렸던 사람들이 남긴 상념의 모임이려나. 아무튼, 그 때의 네 모습을 네가 한 번이라도 보았으면
좋을 텐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네가 직접 확인하게 만들고 싶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뒤를 향해 돌아서서 급히 여자아이가 서 있던 곳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The End
Arai - 끝없는 존재. (= Araj)
Schelon - 고체 같은 이, 강고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