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풀이 자라날 수 있는 마지막 날로 알려진 그 날도 지나갔지만, 아직 여름 분위기는 여전하다. 밤의 열기는 사그라 들어가고 있지만, 낮의 열기는 여전해서 좀처럼 사라지려 하지를 않는다. 이전 해처럼 9 월 중순까지는 기다려야 하려나. 그렇게 더운 나날을 맞이하면서도 근처의 들판으로 나아가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누웠다, 두 팔을 들어 머리를 손바닥이 포개진 곳에 놓고, 입에는 예전에 구한 어느 약초의 이파리를 물고 있으면서.
  바람이 약하다, 이전보다는 바람이 잦아졌지만, 계절의 끝을 알리기에는 너무도 약하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떠날 준비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지난 며칠 전에는 가을비로 알려진 비까지 내렸었는데.......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더 이상 그에 대한 생각을 하거나 이야기를 이어갈 수는 없다.
  들판 위 하늘로 자회색을 띠는 날개를 가진 비둘기 한 쌍이 날개짓을 하면서 내가 누워 있는 곳 바로 앞을 지나쳐 간다. 그들 자신도 즐겁겠지만, 보고 있는 이들에게도 좋은 느낌을 주는 광경이다. 그러한 비둘기들의 모습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고서 왼편으로 펼쳐진 초록빛 들판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들판 곳곳에 분홍색 작은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세니티아의 가을에 피어난다는 작은 꽃들, 새로운 계절의 도래를 상징한다고 알려진 그 꽃들의 화사하지는 않지만 꾸밈이 없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잠시 보고서 나는 이파리를 입에 문 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돗자리를 말았다. 그리고 그 돗자리를 오른팔에 끼고, 입에 물고 있던 풀을 왼손에 쥐고 있으면서 내가 바라보고 있던 들판을 거쳐 그 너머에 있다는 연못으로 나아갔다.
  연못으로 나아가서 다시 입에 이파리를 물고, 연못가의 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돗자리 오른편에 떨어진 돌 하나를 주워 그 안에 던졌다. 수많은 동심원을 그리며 바닥으로 가라앉는 돌. 조용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호수에 살고 있는 영이 나타나 금색 돌과 은색 돌, 그리고 내가 던졌던 돌을 보여주며 어느 것이 내가 던졌던 돌인지를 묻는 그러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와 더불어서 정말 그러한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못가에서 한참을 기다려 보았지만, 연못에서는 어떠한 존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괜한 기대를 했었구나." 기다려도 연못 위에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결국 나는 기대를 접으면서 입에 물고 있던 이파리를 왼손에 쥐며 그렇게 혼잣말을 하였다. 그러다가 하늘로 고개를 들었을 때, 한 쌍의 새가 나의 바로 위를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새들이 연못을 향해 내려오자 고개를 낮추어 새의 모습을 계속 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새들이 연못 근처에 있는 나무의 가지들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것 한 가운데에 앉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새들은 다름 아닌 이전에 보았던 그 비둘기들이었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동안 그들은 나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정말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새들의 눈을 보았을 때에 그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처음에는 그들이 항상 찾아오던 연못에 나타난 희한한 존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보려 하였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이후, 다시 그들을 보았을 때, 그들이 계속 나를 보려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그에 대해 나는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그들은 나와는 아무 인연이 없을텐데, 무슨 이유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
  그러다가 결국 그들은 어디론가로 날아가 버렸다. 그 이후, 나는 이전에 비둘기들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전의 기억들을 되짚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내가 들고 있는 풀과 똑같은 종류의 풀을 가지고 누군가를 도와준 일을 떠올렸다. 그 때, 나는 추운 산길의 한 곳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담요 한 장에 의지하고 있으면서 추위에 떨고 있던 한 부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 끌어안고 있었으며, 여기에 여인은 어린 여자아이 하나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마침 이파리를 한 장 갖고 있었는데, 원기를 지켜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서 약용으로 널리 쓰이는 그러한 종류의 잎이었다.
  나는 그 잎을 건네며 추위로 지쳐가는 신체를 잠시나마 보전할 수 있다고 말하며 여인에게 먹이려 하였으나, 여인은 손으로 이파리를 건네는 손을 뿌리치며 거절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품에 안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기만 하였다. 먹이려면 그 아이에게 먹이라는 의미였을 듯 싶었다. 결국 나는 눈을 뜬 아이에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이파리를 먹였고, 세 사람을 함께 데려갈 방법을 생각해 보려 하였다. 그 때, 여인이 아이를 두 손으로 건네기만 하였다. 나는 일단 그 아이를 두 손으로 들어 가슴에 안고 두 사람에게 곧 데리러 오겠음을 밝혔지만, 그 때 여인이 막대기로 눈에 글자를 써서 자신의 뜻을 알렸다.
  "우리는 괜찮으니, 아이라도 잘 보살펴다오."
  그 때 보았던 문구였다. 자신들은 가망이 없으니 아이라도 잘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의 말이었다. 결국 나는 그들을 남겨두고 아이만을 가슴에 안은 채, 날개짓을 하며 마을로 급히 날아갔다. 그리고 집에 아이를 두고 그 곳에서 살도록 하였다.
  그러한 일이 있었을 때, 쓰였던 이파리가 지금 내가 들고 있던 그 이파리였다. 오래 전의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오래 전의 일을 회상하다가 결국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덧붙이자면, 그 여자아이는 인간이었기에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살고 있으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던 그 여자아이는 그러한 일을 원하지 않았고, 끝내 엘젠(Elsen) 산맥에 있는 바람의 성전에서 행해진 의식을 통해 나와 같은 존재가 되어 나와 함께 살고 있다. 부모와 과거의 일을 잊어버렸음은 물론이다.
  왼손에 쥐고 있는 이파리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 그 이파리를 주머니 안에 넣은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돗자리를 말고 연못가를 떠나 다시 이전에 머무르고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 때 내가 서 있던 곳에 한 아이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채, 두 팔을 아래로 모으고 있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아란사(Aransa) 였다. 나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의 이름을 부르고, 무슨 일로 왔는지에 대해 물었다.
  "아란사!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왔니?"
  "아사이아 언니가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길래 걱정이 되어서 찾으러 왔어."
  그러자 아란사는 다소 우울해진 표정을 지으며 나의 물음에 답하였다. 그러자 나는 "몰래 떠나서 미안해." 라는 말을 건넨 다음에 활짝 웃으며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아란사는 언제 우울해졌냐는 듯이 해맑은 표정을 짓고서 들판에서 잠시 놀자고 말하였다. 이에 나는 밝은 목소리로 "그래, 그렇게 하자." 라는 말을 건네었다. 그리고 돗자리를 다시 깔고서 아란사와 함께 그 돗자리 위에 앉았다. 그 때 아란사가 나에게 물었다.
  "아사이아 언니, 저 이파리들이 노랗고 붉게 변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해?"
  "네 주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거야. 응, 그 때가 되면 함께 단풍 놀이 가자. 괜찮지?"
  "응!" 아란사의 물음에 바로 답을 해 주고서 제안을 하자, 아란사는 너무 좋아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답을 하였다. 그러한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려 하였다. 그 때 마침,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전에 보았던 이들과 비슷하게 생긴 비둘기 한 쌍이 나의 앞에서부터 나와 아란사가 앉은 곳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를 지나쳐 갈 때까지 그들의 모습을 계속 올려다보고 있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