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언제나처럼 산 위에서는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산을 처음 오르는 이들에게는 차가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같이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살아온 바람의 정령들에게는 그 소리는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세찬 바람은 아무렇게나 휘몰아치는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마다 산을 오르면서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때에 따라, 상쾌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하고, 때에 따라 차가움의 고통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전하기도 하지만, 항상 이 곳에 있어왔다. 날카롭게 대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그것은 언제나 산 위에 머무르고 있었고, 지금도 머무르고 있다. 그러한 바람이 일으키는 소리는 결코 평범한 소리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그러니까 먼 옛날부터 이 곳에 머무르고 있었을 바람이 전하는 노래 소리이리라.
  때로 그 소리는 상냥하게 속삭이는 듯이 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구슬프게 우는 듯이 들려오기도 한다. 격하지만, 결코 기쁜 소리는 내지 않는다. 그러할 수밖에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바람은 아주 먼 옛날에 슬픔 속에서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의 혼들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남겨, 하늘 저편으로 올라가지 못한 채, 한 곳에 남아 있는 것이기에. 그래서인지 그 노래 소리는 슬픔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세상을 떠났을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더욱 슬프게 들려온다.
  먼 옛날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전에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다가, 마침내 거리의 그림자 속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쳤던 한 사람의 일화와 형편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고, 세상을 이끄는 사람으로 활약하다가 더욱 큰 욕심을 가지고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다가, 끝내 보통 사람들의 분노로 인해 최후를 맞이한 한 사람의 일화, 그리고 어려운 세상 살이 속에서도 아름다운 노래를 전하려 하였던 한 여인의 이야기.......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마지막을 제외하면 하나의 끔찍한 이야기 정도에 불과하였고, 시간이 지나서도 처음의 두 이야기는 마음을 유쾌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음악을 전하려 한 사람의 일화는 무척 감명깊게 들었다. 그러한 마음 가짐을 가지고 있으면, 어지간한 곳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어쩌다가 과거의 세상은 그러한 운명을 맞이하였는지, 이제 잊혀질만한 일이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것은 어찌하지 못할 것 같다.
  바람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언덕으로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리란(Lyran) 은 나에게 그 바람 소리를 통해 무엇을 보는지에 대해 가끔씩 물음을 건네고는 하였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나는 그에게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떠올렸던 것을 대답으로써 이야기를 해 주고는 했었다. 리란은 나의 이야기를 무척 흥미롭게 듣는 듯해 보였다. 그러면서, 항상 나에게 말하고는 했었다. 그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그러한 교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이후, 리란은 바람 소리로 인해 묘한 상태에 놓인 나를 위로하기 위해, 반대편의 숲으로 나를 이끌어 숲 한 가운데의 밑둥만 남은 나무에서 풀로 만든 여러가지 것들을 선보이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만든 여러가지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한밤중에 노래를 부르다가, 숲 속을 떠돌던 작은 빛의 정령들을 불러오는 일을 행하기도 하였다. 처음 그들이 왔을 때에는 얼마나 놀랍던지! 당황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리란이 더 놀라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바람의 소리가 격하다. 그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언덕으로 올라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 아래를 바라본다. 그리고 지금은 닿지도 못할 먼 과거의 나날 속에서 기쁨과 슬픔 속의 삶을 누려왔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 정말 그들은 어떻게 살아오고, 지금 이 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할 무렵, 리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녁 식사가 다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와 달라는 부탁의 말을 전하는 목소리였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