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9. 7. 19 - Iresija Emind

황폐해진 도시를 지나 산길을 계속 걸어갔다. 초록빛 풀들은 구름이 드리워진 하늘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가녀리게 흔들리고 있었으며, 길가의 곳곳에는 한 달 간 피어있는 꽃으로 알려진 바깥쪽은 우윳빛을 띠고 있고, 안쪽은 진분홍색을 띠며 노란 수술이 길게 자라난 '사론의 꽃' 들이 만발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는 풀들 사이의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옥수수 풀이 나란히 자라난 곳에 이르기도 하였다. 옥수수 풀들 근처에 이르고서 풀의 꼭대기에 술이 자라나 있고, 풀의 줄기 곳곳에 옥수수들이 자라난 광경을 보기도 하였으나, 아직 먹을 수 있도록 자라나지는 않았으리라는 판단을 한 이후, 그 풀들의 곁을 떠났다.
한참 길을 걷다가 풀들에 의해 잠식된 구역 사이에 있는 한 오래된 작은 집 앞에 이르렀다. 그 건물의 앞에 이르자마자 나는 그 집의 담장 사이에 위치한 대문(의 흔적이었을 것이다)을 지나 현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쉽게 열렸다. 문은 본래 잠겨 있었는 듯해 보였으나, 세월이 지나 자물쇠도 녹슬어 떨어지면서 문을 잠그는 것은 사라진 모양이었다.
혹시나 집 안의 망령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본래는 부유한 일가의 별장이었을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집의 우측에 반 즈음 땅에 묻히고 높이 자라난 풀밭에 대부분이 가려져 꼭대기 부분만 잘 보이는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바위들을 보자마자 나는 그 바위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들이 주변 일대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돌임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바위를 반 즈음 땅에 묻어놓는 일이 있었나."
그 모습을 보면서 옛날 사람들에게는 돌을 땅에 묻어두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이 돌을 땅에 묻어두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일단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 그에 관해 물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가 땅에 묻힌 돌 근처에 반 즈음 잘려나간 석상들이 있었다. 하지만 무슨 석상인지는 석상 자체도 마모가 많이 된데다가 이끼가 끼어 있기까지 한 탓에 잘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석상들을 본 이후, 나는 잠시 지붕 아래의 풀밭에 앉아 있으면서 하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가득 흐린 하늘에서부터 잠시 거세게 비가 내리기도 하였으나, 곧 그쳤다. 그 비가 내리고 지붕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소리를 내고 있는 동안 나는 비를 맞고 있는 풀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풀들 사이에 피어난 보라색 꽃들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보랏빛' 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이름을 가진 꽃들. 그 꽃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전에 어떤 아이가 제비꽃들을 소중히 가꾸고 있는 모습을 본 일을 떠올리기도 했었는데, 그 아이는 지금도 제비꽃들을 잘 키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마침내 해가 지고 밤이 되면서 집으로 들어가 이상하게 먼지가 싾이지 않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가끔 빗소리가 잠을 깨우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점을 제외하면 망령이 살 만한 낡은 집임에도 불구하고 잠도 잘 오고, 이상한 꿈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잠은 비교적 빨리 깨어났다. 막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즈음이었을까. 자리에서 일어난 이후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망령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망령의 집이라 여기고 관심 있어하며 찾아간 곳이었는데, 의외로 기대한 바대로 망령이 나타나지 않아서일까, 다행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라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한 곳이 내가 들렀던 집이었다.
"그래, 망령이라는 것이 있겠어. 그러한 것이 세상에 있을 리 없지."
그 이후, 집을 나서면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때 내가 말한 대로, 특정한 집에 오래 머무르고 있는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영혼도 시간이 지나면 세상을 떠나야 때를 맞이하게 된다.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때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상, 1000 년도 더 되었을 집에 영혼이 머무르고 있었다고 하여도, 이미 그 영혼은 떠나가 존재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겁을 주는 일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래도 망령의 집에 관해 알린 이의 이야기를 통해 혹시나 망령이 계속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그렇게 집을 나서면서 나는 망령의 집에 관해 알린 이를 놀려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가득히 품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나는 산길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편안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면서 피곤했던 탓에 바위를 반 즈음 묻어놓는 일에 관해 묻는 일을 잊고 말았는데, 아침에 도서관에 가면서 꼭 물어봐야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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