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월까지 이어진 추위도 이제는 끝나갈 모양새를 드러내면서 산은 이제 완연히 초록빛을 되찾았다. 그리고 언덕의 곳곳에 이전의 봄날 때처럼 꽃들이 만발하였다. 이전에 그 모습을 본 일도 그렇고, 집 앞의 뜰에 심어놓은 꽃씨도 어느덧 크게 자라나 분홍빛 꽃들을 피우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며 이제는 봄이 정말로 왔음을 실감하고 있다가, 봄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날이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작은 병 하나를 들고 마을의 서쪽 교외로 나갔다.
  마을의 서쪽 교외에는 작년 때와 마찬가지로 새하얀 작은 꽃들이 가득히 피어나 그 꽃에서부터 하얀 빛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기는 작년에 비해 차가웠지만, 그런 것을 견딜 수 있는 것인지, 꽃들의 모습은 이전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꽃들의 모습에 그저 고마움을 느낄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조금 더 길을 걸어 꽃밭의 한 가운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하얀 꽃에서부터 피어오르는 향기의 달콤함이 나를 조용히 감싸기 시작하였고, 그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특히 어제에 우연히 만난 어떤 상인으로부터 어떤 물건을 팔지 못하게 된 일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고 있었던 일로 기분이 심란했던지라 그 달콤한 향기가 전하는 편안한 느낌이 심란한 기분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꽃밭의 한 가운데에 이르고서 나는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러면서 빛의 요정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하였다. 일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하늘에 꽃이 만들어낸 빛이 모여 그 빛이 하나의 요정을 이루어낸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요정을 기다려 준 이에게는 요정이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 별로 믿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빛이 모여 요정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향기는 계속 나를 감싸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몽롱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반 즈음 눈을 뜨고 있었을까, 그랬을 것 같다. 그러면서 꽃밭 한 복판에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고, 그러면서 꽃밭 한 가운데에 위치한 풀들의 틈새에 앉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하늘 위로 한 마리 칼새가 맴도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내 주변을 도는 듯이 잠시 맴돌던 칼새. 그리고 잠시 후, 그 칼새는 나의 곁을 떠나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눈앞에 하얗게 빛나는 요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것이었다. 두 쌍의 찬란히 빛나는 날개를 가진 요정은 자신을 기다려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소원을 빌었다. 이에 나는 무언가 소원을 말하려 하였으나, 무엇을 말했는지는 불분명했다. 나도 모르게 소원이 나왔고, 그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요정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고서 눈을 감아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무언가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 이후, 의식이 다시 흐려지고 있었다.

  그 이후,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무렵, 나는 꽃밭 한 가운데에 누워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빛을 피어오르게 하는 꽃 향기가 나의 근처에서 진동하는 동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는 동안 머리가 잠시 멍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피곤해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 꽃밭을 떠났다. 그러는 동안 새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은 곳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새는 한 동안 하늘을 조용히 맴돌다가 서쪽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렇게 새가 떠나간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꿈 속에서 요정이 나타났을 때, 내가 말한 소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가 길을 걸어가다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하다면 막연할 수 있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발걸음을 옮기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지나온 길마다 나는 새하얀 민들레들이 가득히 피어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꽃은 아니었지만, 마을에서 이 꽃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전에는 분명 없었던 꽃들, 그 꽃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꿈 속에서 나타난 요정이라지만, 요정이 현실에 있는 나의 소원을 들어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요정이 정말 소원을 들어주었구나, 라는 말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을 피게 해 달라는 소원을 말했던가, 라는 말을 하였다가, 곧 그에 대해서는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좋아할 일이 생겼으니 다행이라고 말하면서 마을로 돌아갔다. 어둠을 맞이한 마을, 그 마을은 여느 때보다 밝은 빛이 더 많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