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눈이 내렸다. 처음에 갑자기 날이 흐려지고 하늘이 짙은 회색을 띠는 모습을 보이더니, 그 회색빛 하늘에서 하얀 가루들이 내려오며 이미 몇 주 전에 내린 첫 눈으로 하얗게 물들었던
이 산악 지대를 다시 한 번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간만에 밖에라도 나가봐야 하겠다고 생각하고서 집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밤하늘 아래로 내리는 눈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누군가가 솜털처럼 꾸민 얼음 조각들을 흩뿌리기라도 하는 듯이 뿌려지는 눈의 무리. 그 눈의 무리는 어느덧 새롭게 눈밭을 만들고 있으면서 세상을 다시금 하얗게 꾸며가고 있었지만, 어느
전설에서처럼 어둠을 비추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현관을 벗어나 근처의 눈이 쌓인 나무 근방에 이를 무렵, 나는 바로 앞의 길에서 어린 바람의 정령 두 명이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면서 눈을 뭉쳐 공의 모양을 만들어서 던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도 어렸을 때 했던 놀이, 눈싸움이었다. 눈을 뭉쳐서 상대방을 향해 던진다는 간단한 규칙을 가지는 놀이. 고대 시대의 돌싸움에서 유래된 듯한 그 놀이는 원시 시대의 전투를 묘사한 것 답게,
전투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놀이이다.
그런 놀이이다 보니, 넓은 공터에서 편을 갈라 눈을 던지는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 마을 전체가 눈 싸움터가 되기도 한다. 그 때가 되면 건물 사이로
피하거나 나무 뒤에서 눈 덩이를 던지는 경우까지 생겨나면서 그야말로 마을 싸움이 되기도 하는데, 이번 경우는 거기까지 전개되지는 않는 듯해 보였다. 사람도 두 명만 있어서, 그리 재미있지는 않아
보였다. 오히려 밤중에 사람들도 안 보이는 곳에서 싸움을 하다 보니, 쓸쓸해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함부로 끼어 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눈을 두 개 뭉치고 한 손에 하나씩 들어올린 채, 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 이후, 내가 이들의 사이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그 물음에 어린 아이들 중 나를 등지는 방향으로 서 있던 아이가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부탁하였다.
"내 편이 되어준다면."
"안 돼." 그러자 나는 안 된다고 답을 하고서, 그렇게 하면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 이후, 나는 자신과 두 아이들이 대항하도록 하는 편이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그러면서 둘이 힘을 합쳐 나를 이기도록 하는 것이라고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승부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그러자 두 아이가 한데 모여서 나를 향해 눈덩이를 뭉쳐 던지기 시작하였고, 이에 눈덩이를 몇
개 만들어서 도전하던 나는 처음에는 이들을 향해 강하게 눈덩이를 던지며 위협을 가했지만, 결국 미리 눈덩이들을 많이 만들어 반격을 가한 아이들에게 밀려 수많은 눈을 맞으며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아이들은 남은 눈덩이들을 몇 개 뭉치더니, 그것을 이용해 눈을 굴려 거대한 눈덩이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내가 그 움직임에 끼어 들어, 함께 눈덩이를 뭉치는 역할을 해 주었고,
세 사람이 만드는 눈덩이는 어느덧 마을의 공터를 한 바퀴 돌면서 내 키의 반 만하게 커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아이들과 함께 또 하나의 눈덩이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이전의 것보다 더 작은
눈덩이를 만들 수 있었고, 그 이후, 나는 두 아이들과 힘을 합쳐 그 눈덩이를 큰 눈덩이 위에 올려놓은 이후에 미리 마련해 놓은 나뭇가지로 양팔을 만들면서 마을 공터의 한 곳에 자리잡게 된 눈사람을
꾸몄다.
"고마워, 언니." 그렇게 눈사람을 만든 이후, 눈사람을 만드는 데에 힘이 되어준 나에게 두 어린 아이들이 밝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고, 이에 나는 기분 좋게 화답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어린 아이들이 집에 간 이후에도 그 곳에 남아 그들이 만들어 낸 밝게 미소짓는 눈사람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한 채, 마을 공터의 긴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그 모습을 조용히 감상하려 하였다.
'예전에 이렇게 나에게 눈사람 만드는 것을 도와주시던 분이 계셨지.'
수십 여 년 전, 나 역시 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 역시 눈을 뭉치고 있었으며, 그러다가 눈덩이가 집 앞에서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가 있었다. 집의 현관문
앞이라 눈덩이를 밀어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을 무렵, 낡은 옷차림을 한 어떤 아주머니께서 힘을 써서 그 눈덩이가 그 집을 떠나도록 해 주셨기에 나는 무사히 마을 공터로 눈덩이를
옮기고, 이어서 눈사람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 아이들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그 때, 그 아주머니께서 도와주신 일이 떠올랐었는데......'
물론, 나는 그 일을 떠올렸고, 그 때의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자 그 아이들을 도왔던 것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선한 얼굴을 하고 계시던 그 아주머니, 지금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사실까,
문득 과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은혜를 주었던 옛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잠시 그렇게 떠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거기까지. 그러면서 눈사람을 바라보며,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그
분께서 행복한 여생을 살아가시기를 기원하면서 잠시 하늘로 시선을 향하였다.
그러는 동안 별들로 꾸며진 감빛 하늘의 아래로 하나의 하얀 유성이 내려오는 모습이 잠시 나의 두 눈앞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 이후, 그 유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 그 바로 앞으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나쳐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