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고 수많은 솜털 가루들이 흩날리는 듯이 새하얀 하늘 위에서부터 눈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며, 길을 걷고 있었다. 이 날은 동부 산악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옛 궁터를 찾아 그 곳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려 한 날이었는데 암만 눈이 내린다 한들, 그렇게 눈이 내려서야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으리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 눈이 녹아 잉크로 그린 그림을 망치게 될 것이 너무나
눈에 선했기에.
하지만 모처럼 눈이 내리는 날인만큼, 여행은 이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길을 계속 걸었다. 그러는 동안 구름 아래로 펼쳐진 산등성이의 모든 것이 눈에 덮여 하얗게 보였고, 그런 광경 위로 갈색을
띠는 나뭇가지들 위로 눈이 쌓여, 그 눈이 유려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겨울이 올 때마다 항상 보아오던 것이었으나, 겨울이 되고 눈이 내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항시 처음 그 광경을 보았을
때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솜털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을 감탄과 신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언제나 보아오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새로이 보는 것과 같다. 꽃을 볼 때도 그러하고, 초록빛 잎사귀들이 무성한 광경을 볼 때도 그러하다, 따뜻한 색을 띠게 되는 나뭇잎들을 볼 때도 그러하고,
하얀 눈이 이루어내는 광경을 볼 때도 그러하다. 1 년에 한 번씩이라지만, 낯설지 않은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언제나처럼 반갑다.
왜 볼 때마다 그 광경이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구경할 때마다 반갑고, 그 광경이 사라지면 언제라도 아쉽다. 그것이 자연의 풍경이 전하는 매력이라는데, 그 매력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자연의 풍경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 칭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 같다.
그런 풍경 속에서 한 동안 계속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다가, 마침내 본래는 넓은 초원이었을 한 곳에 이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눈에 덮여 있어서, 하늘의 하얀색과 서로 만나, 희미한 지평선을
이루게 된 하얀 공간이었던 곳. 그 곳의 한 가운데에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새하얀 한 채가 외로이 서 있었다.
본래는 산악 지대의 한 구역에 위치하고 있던 호수에 지어진 궁전이었으며, 주변 일대에 성벽과 마을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라고 하나, 이제는 궁전의 본관 건물 하나만 남겨졌으며, 호수
역시 오래 전에 메워져 거대한 풀밭처럼 변한 곳.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건축물의 지붕이 눈으로 덮인 모습을 보면서 그 곳으로 다가가면서 옛 건축물의 모습을 기억하려 하였다, 언젠가 눈이 그친 날이
오면, 그 날에 다시 궁전의 앞에 이르러, 그 곳에서 궁전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다.
궁전의 근방에 이른 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바람에 이끌리며 작은 눈송이들이 궁전의 지붕과 지면에 닿고, 바람이 쌓인 눈을 흩날리며 하얀 바람을 고요히 일으키고 있을 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궁전에 남겨진 이가 있을 법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 어떤 다른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축물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는 문득 그 곳에서 날아온 듯한 영혼의 기운을 감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그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가 안에 있는지 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조용히 방문으로 다가간 다음에 정문을 열어 그 안으로 들어가, 안에 자리잡고 있는 사물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안에
누군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안으로 들어간 이후, 한기가 매서운 바람과 함께 떠돌고 있지만, 내부 모습 자체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건물의 현관 곳곳을 둘러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화려한 무늬가 내벽에 그려진 넓은 공간으로서,
한 때는 연회장으로 사용되었겠지만, 이제는 아무도 자리잡지 않은 공허한 공간을 지나치고, 2 층 위로 올라간 다음에 복도를 지나갈 무렵, 우측에 보이는 창가들 중 계단에서 3 번째에 위치한 것의 바로
앞에 한 명의 사람이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채, 창가를 향한 채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소매가 길고 폭이 좁으며, 치맛단이 발목 근처까지 내려가며, 두 다리가 하얀 천으로 감싸인 모습을 보이는 감색의 시녀들이 입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이로서, 붉은색을 띠는 등까지 내려가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키가 큰 여인. 이전에 감지되었던 영혼의 기운은 건축물의 2 층에서부터 감지되고 있었다. 그러한 이상, 영혼의 기운은 눈앞에 보이는 이에게서 온 것이 아닐까.
그는 분명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표정은 희망을 잃은 듯이 공허하면서도 우울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과거에 궁전에 살고 있던 시녀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리라는 추측을 하면서 다른 이들 모두가 떠나갔는데, 자기 혼자만이 추억이 남겨진 곳을 떠나지 못해, 모든 것을 잃은 공허함과 외로움 속에서 쓸쓸히 나날을 보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로부터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바로 근처에 이르렀다. 하지만 처음의 그는 내가 근처에 인기척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환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결국 나의 시선을 의식하였는지, 그는 조용히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나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한 이후에 무슨 용무가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전혀 놀라지 않는 채, 차분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기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화답을 한 다음에 그것에 대한 이야기라도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 하는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다는 언급을 한 다음에 등을 돌렸다. 그리고 뒷모습을 보이는
채로 조용히 복도의 끝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내가, 재빨리 그의 우측 근처를 지나쳐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고, 이에 그는 나의 바로 앞에서 멈추어 섰다. 그 이후, 한 동안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는 상황이 전개되다가, 여인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창가를 등지면서 창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물러서려 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깊이 한숨을
내쉬고 차분해진 목소리로,
"꼭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나요?"
라고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어떤 일로 인해 궁전이 몰락하고, 사람들이 떠나갔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답을 하였다. 그러자 바로 답을 하는 여인.
"잊혀진 역사의 한 조각이라 생각해 줄 수 있지도 않을까요."
하지만 그는 곧, 정 원한다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 하에 이야기를 해 주겠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궁전을 다시 방문해 주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그러하면 나는 그림을 그릴 곳을 찾기 위해 다른 유적지를 찾아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로부터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나는 알았다고 바로 화답하였다.
이에 여인은 정말 자신이 부탁한 바대로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예, 약속한 대로 다시는 이 곳을 들르지 않을 테니, 그것에 대해서는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약속하는 것이지요?" 이에 그는 걱정이라도 되었는지, 다시 물었고, 그 물음에 나는 약속한다고 답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다시 그 궁전에 들르는 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눈 속에 남겨진 궁전의 화려한 모습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음에 대한 아쉬움을 품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여인은 나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궁전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이나 관련된 사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곁을 떠나간 이후, 그의 곁에 머무르기 위해서라도 궁전으로 들어가, 궁전의 시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는 여인. 그 이후, 왕국의 공주로서, 궁전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던 그의 곁에 머무르고 있으면서 다시는 사랑하는 이로서, 만날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의 감정을 품으면서도 그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공주가 다른 나라의 신부로서 결혼을 한 이후, 왕국을 떠나간 이후, 어느 순간부터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갔으며, 왕과 왕비 역시 왕관을 버리고, 어느 먼 나라로
떠나간 이후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 왕국의 시녀들도 하나씩 살 길을 찾아 떠나갔지만, 자신만큼은 오랜 추억이 남은 그 왕궁을 결코 떠나지 못해, 왕국에 계속 머물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왕궁에 홀로 머무르는 동안, 남겨진 건물은 점차 무너져 사라져 가고, 호수는 메워져 풀밭과 수풀이 되고, 그 수풀은 다시 고원 지대 위의 풀밭이 되어 홀로 남겨진 왕궁만이 옛 시대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 따름. 그런 왕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과거의 그 공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날을 보내오고 있었다. 공주는 한 번 왕궁을 떠나간 이후로는 계속 돌아오지 않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함께 있었던 나날의 추억을 상기하면서 자신의 곁으로 공주가 와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그는 계속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 조용히 궁전을 나선 이후, 나는 발걸음을 옮기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에서 친구인 사르미아(Sarmia) 와 함께 단풍 액이 포함된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그러면서 소중했던 인연을 되찾기를 원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한 동안 오갔다. 그 이후, 사르미아는 이야기를 마치며 그 궁전을 방문했던 나에게 물었다.
"그 궁전, 다시 들르면 안 되는 것 아니야?"
"어떻게 알았어, 그것을?" 이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면서 궁전에 같이 가지도 않았던 그가 어떻게 그 사실에 대해 알아차렸는지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에 사르미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러하리라 생각했다고
화답한 다음에 다시 찾아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리라고 그에 대한 근거를 밝혔다. 그리고 다시 찾게 된다면, 궁전의 안으로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추측의 말을 건네었다.
"어째서일까?" 그러자 내가 그렇게 그 이유를 묻자, 사르미아가 그 대답으로써 한 마디 언급을 하였다.
"네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남겨진 이가 문의 자물쇠를 채워, 네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때문이겠지, 물론 다른 이들은 안으로 들어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에 다른 이들이
들어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그렇구나." 이에 내가 그렇게 화답하자, 궁전의 바로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해도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서, 시녀가 언급한 오지 말라는 말은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그 근거를
밝히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 동안 이야기를 마치고, 사르미아가 집으로 돌아갈 무렵, 나는 조용히 침실에 누워 지금껏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을 하며 천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잠이 들었는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어떤 생각도 하지 못하다가, 날이 아직 어두울 때에 겨우 다시 눈을 떴다.
그 이후, 시각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모래 시계를 향해 돌아설 무렵, 나는 창의 근처에 자리잡고 있던 나무 책상의 바로 위에 한 장의 편지가 놓여진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눈을 겨우 뜨면서 두 번 접힌 그 편지의 표면 위에 쓰여진 검은 글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편지의 지면 위에는 내가 볼 수 있는 글자로서, 하나의 문구가 쓰여져 있었는데, 그것이 전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
'보에미엔(Bohemien) 왕국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왕국을 떠나고 잊었던 어리석은 이가 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