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기에 나는 추위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와 마을 동쪽의 산길에 위치하며 새롭게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루를 시작하였다, 새로운 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기
위한 일이었는데 지난 30 일에는 날씨가 유난히 추워진 탓에 이불을 들고 와 그 이불로 몸을 감싸야만 했다.
"여기는 산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밤새도록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곤란할 거야, 이런 의식의 연원지라는 라넬리스 인근 구역은 평지대라서 조금 참기만 하면 된다는데."
물론, 그 '태양을 바라보는 의식' 을 행하면서 나는 추위에 장시간 동안 떨고 있으면서 깊이 후회를 했고, 그러면서 다음부터는 무리하게 밖에 나가있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태양의 모습 자체도
내가 기대했던 바와 달리, 겨울에 동쪽 산길로 나아갈 때마다 볼 수 있던 태양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태양을 보면서 의식을 제대로 행하지 않으려 하였던 나에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의 태양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에 태양을 바라보는 의식의 유래는 대륙의 동부 지역인 몬다스(Mondas) 지역 일대의 라넬리스(Lanelis) 등에 살던 이들이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행하는 의식으로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그 태양이 떠오르는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비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의식이다. 그 의식이 시작되는 때는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1 월 1 일 새벽이
되어 태양이 떠오르면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 속으로 하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하는데, 개중에는 대규모 행사로 이어져, 소원이 담긴 종이를 로켓에 실어 로켓을 동쪽 하늘을 향해
쏘아 보내는 형태의 의식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아르나이와 세니티스 일대의 새로운 한 해 의식은 예배로 시작된다. 12 월 30 일 22 시 즈음에 북극, 레미아 그리고 아르나이에 위치한 대성당에 수도사들과 마을 사람들이 성당에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0 시까지 한 해를 반성하는 모임을 가지고, 0 시부터 3 시까지 대규모 미사 집회를 거행하는 의식을 가지며, 예배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외양만큼은 경건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새벽이 되면 각지의 악사들이 마을로 찾아와 공연을 행하면서 새로운 한 해가 왔음을 축하하고, 사람들이 각자 정성이 담긴 새해 격려 편지를 보낸다.
두 가지 의식 모두 제대로 된 이해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의식. 그런 사실도 모르는 채, 의식을 흉내내기만 하였던 나는 새로운 한 해의 새벽을 추위에 떨기만 하면서 보내면서 집으로 왔다가,
집의 침실에서 아침을 보내며, 한 가지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새로운 한 해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란 과연 무엇이지?'
라넬리스의 해를 바라보는 풍습을 어설프게 흉내낸 이후, 라넬리스에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소원을 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나는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날을 맞이해 어떤 소원을 가지면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고, 그러면서 그 생각과 관련된 고민을 이어가려 하였다. 물론, 크게 소망을 가져보지 않고 있었던 나였던지라, 새로운 한 해의 시작에 가질 수 있는 소망으로 무엇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아침의 3 시간을 공허하게 침실을 돌아다니다가 책상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침대에 누워있기를 반복하며 허무하게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에 반응하며 내가 현관문으로 다가갔을 무렵, 나에게 편지가 왔으니 받으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내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문에서 두터운 털 코트를 입고 왼쪽 어깨에 매어진 바구니에서 꺼냈을 편지를 오른손으로 잡은 채, 나를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 두 손으로 편지를 받은 다음에 하얀 봉투에서 반으로 접혀진
편지지를 꺼내, 그것을 읽어보았다.
이제 새해가 되었어,
너도 기념으로 밖에 나가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보았을 테니, 알고 있겠지?
새롭게 한 해가 다시 시작되면서 새롭게 하나의 일을 시작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들도 있어.
그러면서, 그 일을 위해 나서고, 또 그 중 일부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기도 하지.
하지만, 나는 아사이라(Asceira) 역시 그렇게 살아갈 필요란 없다고 생각해.
새해의 첫 달을 맞이해도, 새롭게 시작하는 일 없이, 언제나처럼 일상을 살아가도 좋을 거야,
그저, 몸과 마음에 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일상을 충실히 보낼 수만 있다면
한 해에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했다는 의미로 보람되게 보냈다고 말할 수 있겠지.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잘 하는 것 역시 충실하게 삶을 보내는 방법들 중 하나라잖아.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렇게 삶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아사이라에게 바라는 것은
아사이라가 새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삶을 보내는 나날의 일부로 여기면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할 수 있는 일, 해야할 일 모두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
그리고 무리하지 말고, 건강하게 한 해 잘 보내는 것, 이 두 가지이지.
이전에도 네가 밖으로 나가 추위에 떨었다는데 잘못하면 병에 걸려 위험해질 수도 있대,
그런 무리한 일을 해서 한 해를 최악의 기억으로 장식하지 말아달라는 거야.
그러니, 그런 일 없도록 조심할 수도 있도록 해 줘, 그러다가 네가 죽으면 다른 이들도 슬퍼하잖아.
오늘은 다른 약속을 하지 않을게, 그 정도 약속만큼, 해 줄 수 있지?
꼭 지켜서 올해 마지막 날까지 항상 무사히 있어야 해.
- 1 월 2 일 새벽 늦게, 사리나 알피엘(Sarina Alfyel)
그 편지를 본 이후, 아주머니를 떠나 보내면서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이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머리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새해의
새로운 목표를 바로 정했다. 이전에 사리나가 부탁한 대로의 두 가지.
1. 언제나처럼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살아가기.
2.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 한 해를 보내기.
이 두 가지. 가장 쉬우면서 잊기 쉽다고 알려진 사항들이다. 그 사항들을 기억하려 하면서 나는 다가오는 내일부터 주어지게 될 일을 하나씩 해결하며 삶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별로 대단할 것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라지만, 사실 그것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삶일지도 모른다는 것. 물론, 모험도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크게 마음을 먹고 주어진 삶의 일부를 채운다는 생각 하에 해야지, 그렇지 않고 무작정 떠나가면 얻는 것은 특별한 모험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오히려 나쁘지 않을까.
그러니까, 무슨 방식으로 살아가든 간에 자신의 삶을 충실히 보낼 수 있도록 방향을 정해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으로 한 해를 보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새해 기념 편지를 받으면서 나는
그러한 깨달음을 하나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리나는 올해의 첫 이틀을, 어떻게 보냈을까, 나와 똑같은 소망을 가지면서 새해의 첫 이틀을 보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