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인 '루사 에랄미엔(Lusa Eralmijen)' 은 음악을 만드는 일을 주로 행하며 지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마을 일대를 순회할 시, 연주를 하기 위해 활용하는데, 요 근래
1 년 간은 마을의 밭에서 밀을 가꾸는 일에 동참하고 있어서 바빴던 탓에 작곡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가, 올해 들어 일을 끝내고 시간적 여유가 다시 생기면서 작곡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작곡을 다시 시작할 때는 1 월 8 일. 그 이후부터 틈틈이 악보에 음표를 그려 넣어가며,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8 일부터 지금까지 15 일 동안 그의 집으로는 3 번만
방문하였고, 그 때마다 집 안으로 들어가 뒤에서 그가 작곡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마다 루사는 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작곡에 전념하고 있었으며 내가 오른쪽 어깨에 기대고 있어도
신경질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작곡을 위해 주변의 다른 상황에 여념하지 않는 것일까,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루사가 작곡을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15 년 전, 우연히, 마을에 이른 거리의 악사들이 선보였던 공연을 나와 함께 관람한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즐거운 음악이 들려온다고
생각하면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있었으나, 루사는 그러하지 않았다. 그 음악을 상당히 진지하게 듣고 있었으며, 특히 음악이 이어지는 동안 악사들이 손에 쥐고 있던 비올린(Violin) 이나
비올라(Viola) 등이 움직이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때만 그러한 것은 아니어서, 루사는 음악 연주회가 있을 때마다 피아노포르테(Pianoforte) 와 같은 악기가 연주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어떻게 하면 악사들이 연주하는 것처럼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보려 하고 있었던 것.
언제나처럼 이어진 나팔과 소리 뿔, 그리고 피아노포르테에 의한 연주였으나, 그 연주가 있은 이래로 루사는 집에 들어가고서, 한 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한 동안 자신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있던 악보 종이를 꺼냈고, 그 종이에 무작정 음표를 그리는 일로 그는 작곡을 시작하였다. 물론, 음악에 대한 지식 전수는 어렸을 때 몇 년하고, 그 이래로는 하지 못했던 탓에 작곡의 수준은
조악했고, 그런 음악의 연주가 잘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작곡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계속 기술의 전수를 받았고, 그러면서 작곡 능력은 점차 향상되어 지금은 상당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주로 기타라는 이름을 가지는 악기를
이용한 흥겨운 가락과 피아노포르테의 음색을 이용한 경쾌한 가락이 주요한 특징이라며, 실제 그의 음악을 이용한 연주를 듣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바로 가질 수 있다.
그런 사람이라지만, 얼핏 보면 그는 작곡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때는 바람의 사원, 그 경비를 맡기도 하였으며, 마을에서 실시되는 행사 참여에 빠지지 않았으며, 마을에서 주어진
제빵이나 제과 일을 도우면서 때로는 제과를 위해 필요한 꿀이나 베타(Beta)
(1) 액을 직접 구해오기도 하였다-그러다가 꿀벌들의 분노를 사 위험에 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항시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는 기존의 작곡가들과 달리 놀이도 즐기고, 마을의 일에 대한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꺼내니, 다른 이들이 그가 작곡을 하는 사람이며, 때마다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자각하지 못하기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리얀(Sarijan) 은 그가 작곡을 하는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정말이냐고 놀라면서 물음을 건네기도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때로는 외관만으로는 사람이 하는 일을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얼마 전에 라넬리스 남부의 어느 마을에서는 둘시 칸나(Dulci Canna)
(2) 를 재배하는 일을
한다는 한 노인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노인 분께서는 이미 나이도 많이 드신 데다가, 체격도 여린 분이셔서 집 3 채 넓이 만한 칸나 밭을 혼자 재배하기는 무리라고 생각을 해 오고 있었지만, 그
노인 분께서는 아무렇지 않게 높다란 칸나 자루를 옮기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 자루들을 창고로 옮기고 계셨다, 내가 도와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만류하셨고, 끝내 모든 일을 혼자 해내신 힘을
보이신 분이셨다.
또 다른 사례로 다르시스 인근의 마을에서는 험악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한 남자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남자 분을 보면서 고기를 써는 일과 같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시리라 생각해
왔지만, 실제 그 분께서는 꽃을 가꾸는 일을 주로 하시고 계셨다, 마을에 처음 온 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그 분을 만났기에 인상만 보고 있으면서 헛 판단을 내렸던 것.
이들은 내가 본 대표적인 사례이고, 실제 세상에는 몇 가지 더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첫 인상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경우를 계속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고, 사람을 만나면서 첫 인상이라는 것은 중요하다지만, 때로는 첫 인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만은 없을 때가 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좋아 보였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숨겨진
악독한 면을 서서히 드러내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음악은 어제 완성되었고, 연주회는 24 일, 그러니까 내일 있을 것이며, 연주자는 직접 자신이 초청해서 오는 아침에 올 예정이란다. 그 연주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루사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더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즐거워하며 눈이 내리는 마을 밖으로 나갈 무렵, 나는 조용히 그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악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변함 없이 무리 없는 곡 구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다음 연주회는 분명 좋게 이루어질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정식으로 음악 수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곁에 머무르며
어느새 악보를 보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던지라, 그가 어떻게 곡을 구성했는지도 이제는 악보를 보면서 바로 알 수 있어서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1) - 비트(Beet), 사탕무
(2) - 사탕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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