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사흘 즈음 전, 언제나처럼 이어지고 있어, 이제는 일상처럼 되어버린 공중에서의 활 쏘기 연습을 마치고 공중에서의 사격을 위한 수레에서 내려 지상으로 착지할 무렵이었다.
하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그 사이로 회색을 띠는 구름들이 자리잡은 하늘 아래로 바람이 세차게 불며 평지대 일대에 넓게 펼쳐져 있던 초원을 이루고 있던 초록빛 풀들이 그 바람의 힘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을 그 때, 나는 활 쏘기 연습을 위해 머물렀던 마을인 라페라(Lafera) 인근의 풀밭의 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나무 밑둥 그루터기 인근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었다.
집이 있는 라페라 동부와 이어져 있는 산길, 그 도중에는 하나의 거대한 그루터기 하나가 자리잡고 있으며, 산길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여느 풀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그 거대함으로 인해
사람들이 길을 갈 때마다 그 그루터기의 모습을 한 번씩 보고 지나간다고 한다. 그 직경은 어림 잡아 봤을 때 1 메타르에 이르고 있다.
본래 그 그루터기는 산길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나무였다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루터기만 남아 산길 한 곳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 밑둥만 남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무의 본래 모습이 어떠하였을 것인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지금도 그 모습에 대한 상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 지경.
한 때, 그 나무가 먼 옛날, 마녀 시대에 그 산악 지역에 살고 있던 이들에게 '영적인 힘' 을 전해주었다는 신비로운 나무였다는 가설이 제기된 적이 있었고, 상상도까지 공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더욱이 상상도에 그려진 나무의 모습에는 웅장함 그 자체가 느껴지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며, 근거가 없다손 치더라도 그 가설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생겨날 정도였으나, 지금은
마녀 시대부터 이미 '영적인 힘' 을 가진 존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가설 자체가 부정되고 있다.
한 때는 그 무엇도 자라나지 않고 있었지만 때가 되면 변화가 생겨난다는 법칙에 예외가 될 수 없었는지 옆면에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자라나 이미 짙은 초록빛을 띠는 나뭇잎 10 여 장이
가지에서부터 돋아날 정도로 자라나 있는 모습을 보이는 밑둥. 그 밑둥을 보자마자 그 위에 올라 앉으려 하면서 처음에는 특별한 생각 없이 바람에 의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풀을 하나씩 밟아가며 접근해
나아가려 하였다.
그러다가 밑둥 근처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아래로 향해 보았다, 혹시 내가 무언가 밟아서는 안 되는 것을 밟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의한 일이었다.
그런 나의 눈앞에 보인 것은 다름 아닌 한 송이의 자그마한 꽃, 노란색을 띠는 둥그런 중심을 둘러싸며 새하얀 실과 같은 무수히 많은 꽃잎들이 원을 그리며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서
그 크기가 내 손가락 크기 정도에 이르는 아주 작은 꽃이었다. '플레바네스(Flebanes)'
(1)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 그 꽃, 그 꽃이 나무 밑둥 바로 앞에 뿌리를 내리는
풀 위에서 활짝 피어나 있었던 것이었으며, 밑둥 주변의 플레바네스는 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왼편에는 하나의 꽃송이를 이룰 정도의 꽃들이 활짝 피어나 있었다.
크지 않을 뿐더러,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꽃도 아니었으나, 그 꽃을 바라볼 때마다 은근히 끌리고는 하고 있었다, 마치 앙증맞게 미소를 짓는 작은 어린 아이와 같다고나 할까. 그런 귀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다가, 작고 연약하기까지 한 탓에 그 꽃을 어쩔 수 없는 때가 아니면 건드리는 일조차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항시 생각하고 있다.
그 꽃들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본의 아니게라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밑둥 위에 앉으려 하였고,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어 겨우 꽃들이 피어나지 않은 부근에 이르러 그 곳에서
편히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밑둥 위에 앉아서 그 위에 활을 올려놓은 채, 조용히 바람을 맞으려 하였다. 근래 들어 시원한 바람을 맞은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가-더워서 자주
물가로 내려가곤 한 이가 있을 정도였다-, 언제 비가 올지는 모른다 하더라도 여름답지 않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간만에 온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노래 하나가 있어서 그 노래를 부르려 하는데, 어딘가에서 한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 갑자기 들기 시작하여 놀라면서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려
하면서 내 주변의 어디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지 찾으려 하였으나,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내는 일은 의외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여기예요, 저 여기에 있어요.' 그 때, 그런 부름이 이전에 비해 보다 강해지기라도 했는지 더욱 선명해진 목소리가 나의 귓가로 울려 퍼지고 있었으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 역시 이전에 비해
더욱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목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계속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나는 의외의 사실에 대해 놀라는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목소리의 근원은 다름 아닌 내가 겨우 지나쳤던
처음의 자그마한 꽃이었던 것이었다.
'고마워요, 사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이대로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그 꽃에서부터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나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나, 갑자기 작은 꽃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해 당황하고 있었던 나는 그런 그 목소리에 대해
어떠한 반응도 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꽃에서부터 계속 밝은 느낌을 주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하나의 뜻을 전하려 하였다.
'이 은혜 항상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제가 죽은 이후라 하더라도, 언젠가 당신께서 보이신 모습에 대한 답례는 반드시 갚도록 해 드릴게요, 약속해요.'
당시 나는 플라바네스라는 이름을 가지는 작은 꽃이 어떻게 은혜를 갚으려 하는 지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잊지 않겠다' 라는 마음을 항시 간직하는 것이 꽃에게는
은혜를 갚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꽃에게서 들려온 목소리에 대한 납득을 행하려 하였다.
'그래, 그 내 모습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정도로 족하지. 꽃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지나친 이의 모습까지 잊어버리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겠어, 그런데 그런 이들 중에서도 특히 내 모습을 잊지
않겠다는 것은 분명 꽃에게 있어서 보통의 큰 일은 아니겠지.'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겨우 그 꽃의 모습을 기억해내며 그 때 내가 이르렀던 나무 밑둥으로 가 보았으나, 이미 꽃은 죽었는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내가 그 꽃의 곁을 떠난 이후, 1 혹은 2 일
즈음 시간이 지날 무렵, 생명이 다해 세상을 떠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다른 꽃들은 여전히 밑둥 주변에 피어나 하나의 작은 꽃송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꽃의 수명이 다르지 않다면, 분명
무언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 없었다.
그러다가 그날 밤이 되고, 집으로 올 무렵, 집의 현관문 앞에 초록색 긴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를 가지는 어린 소녀 한 명이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깨까지 내려가는 짤막한 소매를 가지고
있으며 치맛단이 발목 부근까지 내려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다리를 하얗고 반즈음 투명한 양말로 감싸고, 발을 하얀 구두로 감싸고 있는 그 소녀는 내가 놀라면서 그 앞에 이르자마자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려 하였다, 그런 그의 두 손에는 하얀 천으로 감싸여진 네모난상자 하나가 안겨 있었다.
"받으세요, 당신을 위한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거예요."
이후, 나에게 선물을 받아줄 것을 부탁하는 소녀. 내가 그 소녀에게 무언가 잘해준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조차 할 수 없었지만 선물을 받는다니 그저 좋아서 그 선물을 다른 생각 없이 받아 들었다.
이후, 그는 활짝 웃으며 "고마워요." 라는 말을 건넨 이후에 조용히 내 집 근처를 떠나다가 잠시 나를 향해 돌아서며 말을 건네었다.
"소중히 간직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저 당신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허리를 굽히며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보이는 소녀. 이에 나 역시 손을 흔드는 것으로써 답례를 한 다음에 조용히 그를 떠나 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상자를 감싸는 천을 풀어내고, 하얀
자기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상자를 열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려 하였다.
그 안에는 어렸을 적부터 갖고 싶어하였던 물건이 하나 들어 있었다, 어렸을 때 한 번 본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했던 물건, 다름 아닌 자기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토끼 장식품으로서 엄마 토끼 하나에
어린 토끼 8 형제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세트였다. 어렸을 적의 기억과 함께 마음 저편에 묻어두고 있던 소원이 그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 아이가...... 이 선물을 받는 일은 분명 내 어릴 적 소원이었고, 내가 선물을 받을 즈음에는 나조차 그 소원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텐데.'
그렇게 잠시 좋아하다가도 의아하다는 생각에 토끼가 들어있는 상자를 급히 집 근처에 놓아두고 이미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소녀를 향해 뛰어가려 하였으나, 소녀의 뒷 모습조차 이제는 나의
눈앞에 겨우 보일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는 암만 날개를 펼치며 따라가려 하더라도 무리였다.
그런 판단을 내리며 받은 선물이나마 잃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그에 대한 추격을 포기하려 하다가, 상자를 다시 안고 다시 고개를 돌리다가, 나는 좀처럼 보기 힘든 하나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나에게서 멀어지던 소녀의 등에 나비의 날개처럼 생긴 초록색 빛을 발하는 날개가 생겨나 있는 것이었다.
(1) - 계란꽃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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