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다스(Mondas) 의 남부 지대에 있는 길다란 반도에는 '비에티(Vieti)' 라 칭해지는 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먼 옛날, 비에티에는 구에린(Guerin) 이라 칭해지는 임금을 모시며 주변 일대로 줄기차게 자신들의 생활 영역을 넓혀 나아갔던 강인한 민족이었으나, 점차 사람들이 평화를 추구하기 시작함에 따라 왕국은 항시 평화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후, 지금에 이르러서는 구에린이라고 더 이상 칭해지지는 않으나, 그래도 왕국은 현존한다.
  옌친(Yenqin) 이라는 도시가 있다.. 북방에 위치한 도시 아모리(Amori) 를 중심으로 한 북방 왕조와 이 곳을 중심으로 한 남방 왕조가 대립하고, 이어서 남방 왕조가 승리하자, 왕국의 중심 도시가 된 적도 있었으나, 남방 왕조 최후의 군주 '팡다이유(Fangdaiyu)' 의 무단 통치에 북방인의 저항이 줄기차게 이어지다가 마침내 남방 왕조가 부유 대륙에 건설한 궁전이 부유 대륙 채로 파멸하고, 팡다이유가 살해당하면서 지역의 근거지가 다시 아모리가 되는 것으로서 일단락 된 바 있다.
  멸망한 옛 왕조의 수도, 거기에 적국이었던 나라의 수도였다지만, 그래도 비에티의 사람들은 그렇다 할지라도 역사적 가치가 있다면 보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신경을 기울여 보존하려 하였기에, 그 영향으로 옌친의 옛 건축물부터 풍습 그리고 궁중 산물까지 모든 것이 현재까지 온전히 전승될 수 있었다.

  옛 왕조의 근거지였던 탓인지, 옌친에서는 여러 화려해 보이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형형색색을 띠는 무늬로 그려진 지역의 전통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에 곳곳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작은 수풀 그리고 연못을 둘러싸는 정원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옛 궁전의 인근에는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박물관 안에는 궁정 시대의 수많은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이제는 전시용으로나 볼 수 있는 화려하게 치장된 궁정 의상부터 지금도 몬다스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붓과 화선지까지 다양한 물품들이 전시되니, 한 층 둘러볼 때마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날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행하게 된 비에티 지역의 한 젊은 여성과 함께 왕 그리고 왕비의 의상을 입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왕비의 옷차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내가 왕, 그리고 그 여성이 왕비의 옷차림을 하게 되었다. 나를 따라 왔던 그가 유난히 여성스러워 왕비의 옷차림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그 이유.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어리다 보니, 왕으로서 왕비를 대동하는 모습이 어색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런 체험을 한 번 정도 할 수 있었으니, 나름 좋긴 했다. 그 때가 아니면 어디 가서 이렇게 왕 노릇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두 번 다시는 힘들 듯 싶다.
  이외에도 궁내 사원에 위치한 종각으로 다가가, 그 종을 울리는 일도 하였다, 그 종각은 중요 문화재라고는 하지만, 궁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서 이용을 하는 데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 종을 세 번 치면 그 사람에게는 행운이 들어온다기에, 열심히 종을 세 번 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행운이 바로 들어올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이 일은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들 중 가장 귀중하게 여기고 싶은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깊은 순간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에도 아픈 역사가 있었음을, 그리고 정의가 이기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현재의 행복은 과거에 있었던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노력을 행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안식을 모두 희생하고, 후세의 행복을 위하려 한다. 그리고 이들이 모든 것을 바쳐 마련한 기반 속에서 후세는 행복을 위한 가치를 얻게 된다. 만약 현재의 행복이 과거의 노력에 기인하고 있다면 그 행복을 위해 노력해 준 사람에 대해서는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비에티 사람들의 옛 아픈 과거를 직접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그 과거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을 수록한 '정의 기념 박물관' 을 동행인과 함께 들른 이후, 그 박물관을 나서는 동안 무겁게 걸음 걸이를 옮기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의 모습을 묘사한 귀여운 인형을 하나 사고, 궁전을 나설 무렵,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어서 곧바로 식당을 향해 나아갔다. 여행을 위한 돈이라면 동행인의 덕으로 충분히 갖고 있어서 호화로운 궁중 요리를 체험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쌀로 만들었다는 그 지역 특유의 국수를 먹기 위해 작은 식당을 향했다. 내가 먹은 것은 닭고기가 들어간 국수. 국수를 먹는 느낌이 이전까지 먹었던 국수와는 사뭇 달랐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밀가루 국수와 쌀가루 국수의 차이에 기인한 것일까.
  벼농사를 주로 하는 그 지역에서는 쌀로 밥을 짓거나 가공해서 먹는다. 쌀로 만든 국수는 그의 일종이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내가 거주하는 서부 지역이 보리나 밀을 제배하기에 적합한 조건인지라 보리나 밀을 가공해 만든 빵이나 떡을 사람들이 주로 먹는 이유에 빗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후식은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코코넛에 새하얀 연유 크림을 얹은 음료. 왜 그러한지는 몰라도 그 지역의 코코넛으로 만든 음료는 무척 달다, 음료를 만들기 위해 사탕수수 즙을 진하게 농축시킨 시럽을 들이붓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 여기에 연유 크림까지 얹혀 있으니, 그 달콤함의 수준은 더 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