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샬란(Schalan), 리나파(Lynafa) 그리고 아세라이아 출신인 아나야(Anaja) 와 함께 치즈가 위에 올려진 떡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간만에 한 치즈를 이용해 떡을 만드는 요리를
해서,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실력이 늘었다는 칭찬이 이어져 그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를 비롯한 4 사람은 근방에 꽃이 피기 시작한 만큼, 그 꽃들을 감상하러 가자는 나의 제안에 따라 늦은 밤중이기는 해도, 꽃 구경을 하기 위해 나섰고, 그리하여 네 사람은 근방의
꽃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는 거리를 따라 걸으며, 그 거리 위로 자리잡고 있는 꽃들을 감상하려 하였다.
거리마다 들어서 있는 포르세아(Forsea) 나무. 이 나무들은 이파리가 크고 그 색 역시 선명한 초록색을 띠기에 초록빛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가장 좋은 나무들 중 하나로 여기어지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파리가 돋아나기 전에 피어나는 꽃들 역시 자그마하면서도 선명한 노란색을 띠며, 그 아기자기하게 모인 모습이 하나의 거대한 노란 무리를 이루며 하나의 노란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하니, 꽃이 필 때부터 이파리가 돋아날 때까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좋은 나무라 칭할 수 있겠다.
거리의 한 곳과 그 주변 교외 일대에서는 세리사(Cerisa) 역시 만발하다시피 피어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피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인지 한결 같이 새하얀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연분홍빛
세리사 꽃의 모습을 기대하다가 실망한 이-리나파-도 있었다.
"세리사는 가만 보면, 사람의 나이를 먹어가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해."
"정말?" 그 나무들을 지나는 도중, 샬란이 나에게 건넨 말. 이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인지라 호기심을 갖고 듣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샬란에게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
"색깔의 변화가 곧 성숙한 일면을 드러내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하얀색은 무구한 깨끗함을, 분홍빛은 성숙한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알고 있어."
이후, 나 그리고 아나야, 리나파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 대화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고 볼 수 있겠다 :
세리사 꽃은 처음 피었을 때에는 약간의 분홍빛을 띠고 있으나, 그 분홍빛은 이파리 끄트머리의 작은 곳에만 머무르는 정도이기에 사실상 꽃은 새하얗게 보여, 본래 분홍빛 꽃이었음을 이 모습만
보며 몰랐던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이러한 꽃의 첫 모습은 어린 시절의 순수한 모습, 그리고 티 없이 깨끗한 모습에 비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꽃이 지려 할 때가 되면 피카(Pica)
(1) 꽃의 모습과 닮은 분홍빛을 띠기 시작하며, 멀리서도, 가까이에서도 봄의 아름다움을 완연히 알린다. 하얀 꽃잎의 순수한
느낌은 없어지지만, 그것을 대신해 봄을 상징하는 색깔을 품으며 더욱 사람들의 눈을 이끌어 간다.
이러한 세리사의 변화한 모습은 어른이 되어가며 성숙해 가는 이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고 여기어질 수 있다. 비록 어렸을 때 특유의 순수함은 더 이상 갖지 않고 있지만, 보다 성숙한
면모를 품으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순수함을 잃었다고 그가 순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 꽃잎의 더럽혀지지 않은 면모 자체는 변하지 않은 듯이, 심성의 성질이 변화가
심성의 순선함에 변화를 반드시 불러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꽃들 사이에서 길을 걸으며, 네 사람은 지금껏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평온하게 지내온 탓인지 특별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샬란의 경우에는 사람을 달리 만나는 일 없이 그저 초목을 키우는 일에만 집중했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줄곧 이어지고 있었다. 근래 들어 산의 곳곳에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샬란의 초목 역시 며칠 전부터 씨를 심으며 키우던 분홍빛 아잘란이 피어나기 시작해, 지난 내내 꽃이 피지 않았음에 대한 걱정을 확실히 덜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리나파의 경우에는 이전의 성지 순회를 하면서 지나온 성계들에서 이전에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마을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그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들이 '낙오자' 라 칭하고 있는 이들로서, 밑바닥 세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역시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거지 소녀로서 처음 만났다가 왕궁에 우연히 초대를 받아 왔을 때, 같은 인상을 가진
이를 공주의 모습으로 다시 만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세상에 그런 일도 있는 거야?"
"응, 일반 시민으로 변장하고 있었대. 그러다가 그 때 마침 연회가 있었는데, 그 행사에 참석하는 와중에 나를 발견했던 것이지."
그에 대해 의아해 하며, 아나야가 물음을 건네자, 그에 대한 설명을 답으로써 건네는 리나파. 그러자 샬란이 바로 이전까지 이어진 이야기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다.
"공주라고 해서 항상 새장 속의 새처럼 살 수는 없다하지만....... 그래도 용감하네, 공주라면 만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그런 사람일 터인데......."
"그런 시선이 부담되어서 시민으로 변장했을 수도 있겠지."
이후, 샬란의 말에 내가 그렇게 화답을 하였다. 새장 속의 새 신세라면 그 답답함을 주체하지 못해, 자유를 찾아 날아가고 싶은 소망이 있게 마련이니까.
마지막으로 아나야는 행성 각지를 돌아다니며 봄을 맞이한 곳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온 이야기로는 어느 행성을 가더라도 봄이 오면 비슷한 종류의 꽃이 피어난다는 것이었다.
물론 행성마다 다른 종류의 꽃이 피어날 수도 있지만, 대체로 행성에 사는 꽃들은 그 특성이 비슷비슷하다는 의미.
이런 식으로 네 사람은 포르세아 그리고 세리사 꽃에 둘러싸인 채, 서로 모여 앉아 있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도중에 농담 삼아 아나야가 세리사 역시 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음을
건네자, 내가 바로 답을 하고 있었다, 설마 농담하고 있지는 않느냐고.
(1) - 복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