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 월이 시작되었다지만, 날씨만큼은 어느새 6 월에 접어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때이다. 다만, 간혹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올 때가 있어서, 그 바람 덕을 보는 때도 있기는 하다. 이런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 때, 산길과 계곡을 가로지르는 기차를 타고, 엘젠의 비교적 먼 곳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엘젠 남쪽의 초원, 그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머나먼 곳에 있는 초원의 풍경 그리고 그 초원에 둘러싸인 마을과 그 인근에 위치한 해안 도시의 모습을 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물론 작년에도 본 적이 있기는 한 풍경들이지만, 여름을 맞이하게 되는 이러한 때에 그 풍경들을 보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창가를 통해 보이는 산과 골짜기를 덮은 자연의 풍경은 이제 초록빛 이파리들만 남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 색깔도 이전에 비해 확실히 선명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이제 봄은 정말 끝이 난 것 같다는 것이었다. 5 월이면 봄이 끝나갈 무렵이라지만, 더 이상 꽃들이 보이지 않는 이상, 봄이 이어지고 있음을 믿는 이들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차 내부는 좌우에 4 명씩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의자가 좌우에 5 개씩 자리잡고 있어서 40 여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서거나 바닥에 앉으면서 가야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지만 타는 사람이 없는 탓인지 어떤 곳에서든 편안히 앉을 수-심지어 누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 이외에 타고 있는 사람이 몇 있었기에 함부로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역을 하나씩 지나면서 타는 이들의 수도 늘었다. 어느새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소녀들이 자리의 한 곳을 차지하면서 소곤소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들의 좌측 건너편에 있었기에 이들에게 큰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처음에는 자연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며 차분히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있는 사람도 없고, 비슷한 풍경만 줄곧 이어지고 있었기에 슬슬 창가만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지루함이라는 것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루함을 해결할만한 것을 하나도 가져오지 않은 나는 그저 가만히 창가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가 마침내 자리를 좌측 구석으로 옮기고, 벽에 기대어 잠들기 시작하였다.

  그 기차의 종착역은 해안가의 도시, 그 중심가. 본래는 그 전에 자리잡은 마을에 위치한 역에 내릴 예정이었지만, 깊이 잠든 채, 기차 여행을 한 탓에 그 역을 지나고, 종착역에 이르러서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나는 별로 개의치 않으려 한 것이, 어차피 해안가의 도시도 갈 곳이었으며, 초원의 마을은 다음에 들르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잠이 깰 때에도 종착역에서 깨었나 보다-.
  종착역에 이를 무렵, 하얀 블라우스와 검은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한 소녀들은 각자 내가 모르는 어디론가를 향해-각자의 집이 있는 곳이었을 터이다- 나아가고, 기차에 탄 다른 이들 역시 각자 자신들이 가야할 곳으로 떠나가면서 순식간에 내가 갈 곳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이상하게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길을 가는 곳에서 함께 길을 걷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나 혼자만 내가 있던 곳에 남게 되던데, 이번에도 대략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이번에도 나 스스로 찾아가야 했다.
  도시라지만 사는 이들은 100 여 명도 되지 않았으며, 주변 일대에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난 구역이 자리잡고 있어서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칭할 수 있을만한 그런 곳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초록빛으로 가득해진 거리를 걸으면서 거리를 따라 걷는 사람들과 더위를 잠시나마 피하기 위해 차디찬 카페(Kaffe) 를 찾은 찻집의 사람들, 그리고 거리 곳곳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히 갈 만한 곳이 있는 도시는 아니었으나, 이러한 온화한 풍경 자체가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이었기에, 특별한 명소가 굳이 필요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도시의 동남쪽 끝자락에는 항구가 자리잡고 있으며, 항구의 선착장에 자리잡은 배들과 그 배들이 머무르는 평온한 바다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름이 다가오면서 점차 강해져 가는 열기를 잠시나마 피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선착장에 묶인 자그마한 조각배 위에 누워 있으면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나의 머리 위로 갈매기들이 유난히 선명한 색을 띠는 하늘 위를 지나가고, 그 때마다 갈매기들은 마치 고양이 울음소리와 같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말을 못하는 이 갈매기들 특유의 의사 소통 수단이었을 것이다.
  기차에 있을 때만큼 지루할 정도로 차분하며, 고요하기만 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 곳만큼 좋은 휴식처도 사실 없었다. 평상시의 나무를 베고, 사탕무를 돌보며, 빵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일상에서 벗어나 멍하니 누워 있으면서 하늘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기회를 항시 가질 수는 없기에. 그래서 나는 배에서 일어나 방파제의 다른 곳으로 가며 이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