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정 동굴과 고래 박물관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바다 구경도 할 수 있음에 대한 기대를 품으며, 도착한 라넬리스 동남부의 도시, 루즈다(Luzda).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던 것이 그 도시의 기차역에서부터 자수정 동굴까지 무려 수십여 킬로메타르에 이르렀다는 점이 문제였다.
  더욱이 자수정 동굴과 주로 들르게 될 해안 구역은 서로 반대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로 역에서부터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한 곳을 가면 다른 곳은 포기해야 할 형편이었다. 전날 밤에 출발한 기차가 도착한 시각은 5 시였고, 아침 식사를 6 시 즈음에 시작하고나서 본격적으로 길을 떠나기 시작하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예정된 시각은 18 시였으니, 주어진 시간은 12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이 남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기차역에서부터 목적지들까지 걸어가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들이 만만치 않고, 목적지를 잠깐 들르는 것으로 끝내려 하지는 않았으니, 지역 몇 개 들르는 것만으로도 12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해안 지대와 반대편 먼 곳에 있는 자수정 동굴 들르는 일은 포기, 목적지를 루즈다 동부 해안에 위치한 로게티(Logetti) 만의 고래 박물관과 남쪽에 위치한 지나스(Ginas) 해변가 그리고 더 남쪽에 위치한 칸투라(Cantura) 곶의 풍차를 들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먼저 들른 곳은 로게티 만으로서, 그 일대는 먼 옛날에 배를 이용하거나 직접 잠수를 하면서 고래를 잡아들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어부들의 근거지였다. 먼 옛날, 고래잡이 업이 성행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었고, 그들을 위한 물품 상점과 여흥 공간 그리고 음식점들이 해안마다 빽빽히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고래 잡이가 성행하면서 그로 인해 어린 고래까지 무참히 잡혀가는 일이 비일비재해지고-고래라는 것이 개체가 크다보니 어린 것이라도 많은 양의 고기 공급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까-, 그로 인해 개체가 점차 줄어들어 가면서 고래 잡이도 그로 인해 쇠퇴하게 되고, 사람들도 거의 떠나가 버린 탓에 이 일대는 버려진 배와 바다 그리고 전성기 시절의 흔적을 담은 폐허들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루즈다 측에서는 폐허를 정비해 유적으로 관리하고, 또 그 시절의 한 모습을 현 시대의 사람들이 바로 보고 알 수 있도록 박물관을 설립, 로게티 만 일대를 나름 깔끔하게 꾸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로게티 만에 이르기 전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나, 흔적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에 갖고 있었을 삭막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공장 지대 유적과 옛 길의 흔적만 가도가도 보였던 탓에 내가 왜 이런 곳에 가려 했는지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었으나, 그래도 배들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이르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해안을 바라보며 맞기도 하니, 괜히 들른 것 같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다.
  로게티 만의 해안과 마주하고 있는 고래 박물관 자체는 전문 지식을 기대하고 온 이들에게는 실망스러워 보였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박물관의 이용 대상이 주로 어린이들의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필요는 있었다. 규모가 작다보니, 고래 잡이에 관한 지식을 모두 수록하기에는 모자란 면도 있기는 했다.
  이외에 로게티 만에는 고래의 유영하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는 배를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었으며, 그와 더불어 연안 여행을 할 수 있는 배도 운항하고 있었지만 배삯이 만만치 않기도 하고, 로게티 만을 방문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운항 역시 활발하지 않기도 하여, 배는 타지 않기로 하였다.

  이후에는 중심가로 작은 기차를 타고 나아가, 중심가에서 식사를 마친 이후에 다시 작은 기차로 더 남쪽에 위치한 해안가로 나아갔다. 우선 나아간 곳은 지나스라는 이름을 가지는 해변으로 도시의 남쪽 교외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하늘이 맑고, 그 하늘이 바다와 만나 흐릿한 선을 만들어 내는 광경이 묘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또, 해안의 모래밭을 거쳐, 남쪽으로 움직이면 다양한 종류의 바위들이 있는 공원과 몬다스 일대에서만 볼 수 있는 각종 열대 식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공원, 그리고 소나무들이 바다를 마주보며 나란히 서 있는 공원을 거쳐갈 수 있다. 바위 공원, 열대 공원 그리고 소나무 공원이라 칭해지는 곳으로서, 한결 같이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쉬는 정도로 이용할 수 있을 법한 곳이었다.
  본래는 지나스에 도착할 예정은 아니었지만, 작은 기차가 지나스에 이르렀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그 분위기에 내려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따라 내렸는데, 이른 곳이 원래 목표지인 지나스가 아니었던 것. 하지만 작은 기차로는 9 분 정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걸어서도 얼마 걸리지 않는 곳일 것이라 여기면서 지나스를 시작으로 세 공원을 거쳐 원래 목적지였던 칸투라 곶에 이른 것이었다.
  지나스는 칸투라에 이르러서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돌아오면서 들를 예정이었으나, 지나스가 아직 때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탓에 원래는 지나스에 먼저 오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것이 옳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하였다.

  칸투라 곶은 라넬리스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라넬리스 동부 일대에는 이런 곳들이 한 둘이 아닌지라 신뢰성이 있는지는 의문스럽기는 하다. 관련된 시설이 많고, 또 지나스와 칸투라 그리고 이들이 속한 도시인 루즈다의 역사가 오래되기도 하여, 이 역사를 반증하는 석상들이 여럿 서 있었다.
  다만, 이 석상들은 고대 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후세 사람들이 고대인들의 업적을 기리고,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독특한 느낌으로 만들어진 탓에 고대 역사의 증거가 될 수는 없어도 그 독특한 느낌을 보는 재미로 감상할 수는 있었다.
  해안가 사이로 펼쳐진 꽃밭-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 한 가운데의 풍차와 남쪽 너머에 위치한 소원탑-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돌탑-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지만, 바다의 모습과 바다를 즐기기 위해 온 사람들의 모습이 더 보고팠던 나에게는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다.
  지나스 해변도 그러하였지만, 칸투라 곶 역시 푸른 물결에 바닷물이 바위에 부딪치는 광경이 잇달아 보여서 그러한지, 바닷물이 하늘 아래에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에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그 동안의 도보 여행에서 느꼈던 더위를 잊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는데, 그 정도가 다소 심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팔과 다리에 찬 기운이 전해지기도 했었다.

  이런 여행은 17 시 즈음에 다시 작은 기차를 타고, 루즈다 기차역으로 돌아와, 기차역을 통해 엘젠 산맥 일대로 나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돌아가는 기차에서는 그 동안 들렀던 곳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그에 관한 그림을 그리는 데에 열중하였으니, 그 광경을 계속 기억에 남기기 위한 일이었다. 다만, 이 작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 정작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는 잘 쉬지를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