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흐리고 천둥과 함께 격렬히 비가 내리는 때가 되어서야 글을 쓰게 된다. 그러면서 지난 며칠 전에 있었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적으려 하니, 기분이 상당히 묘해지게 된다.
  지난 며칠 전에 내가 먼 곳으로 떠나 있을 무렵, 첫 날은 흐리지만 뜨거운 햇살이 거침없이 하늘에서 내려, 무척 더운 나날이었고, 두 번째 날 역시 맑은 날에 바람이 불 때에는 나름 시원하기는 했어도, 더운 때가 많아 땀을 많이 흘리고는 했었는데,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무척 흐리고, 오후에는 비도 와, 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러하다 보니, 지난 며칠 전에 떠났을 때에는 무척 더웠었는데, 라고 무작정 단정지어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지난 며칠 전에 여름 여행으로는 참 좋은 곳이라 알려진 라넬리스 동부 해안 지대에 이르렀다. 그 지대에 위치한 해안 도시인 '에이다르(Eidar)' 에 이르자마자 우선 바다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길을 나서기 시작하였다. 가능한 빨리 해변가로 가 보고 싶은 생각에 기차역 인근의 건물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옥상 위로 올라가서는-옥상 위로 오르는 것이 허가되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람 없는지 지켜보고 올라갔다- 그 옥상에서부터 비행을 개시, 동쪽을 바라보며 그대로 해안가를 향한 비행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에이다르 동부 교외의 해안. 그 해안에 이르자마자 우선 해안을 바라보고, 그 해안을 따라 걸어 다니기 시작하였다. 물이 맑아, 바로 아래의 바닥이 그대로 보일 정도. 그 맑은 물이 물결치는 모습을 보면서 한 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을 물을 보며 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곧, 당연히 이 물은 바닷물이고, 마시면 오히려 더 갈증이 생기는 물임을 떠올리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물을 지나쳐 가기는 했다.

  동부 교외 해안 지대의 남쪽은 모래 해안의 물 사이로 크고 작은 돌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해안가에서 바다를 향하는 물길을 작은 게들과 물고기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물이 워낙 깨끗하다 보니, 그냥 들어가도 상관 없을 것 같아 보이기는 하였으나, 조그마한 게들이 바다 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물 속에 발을 들이밀면 게의 집게에 발이 물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사리 물 속으로 발을 들이밀지 못했다.
  북쪽 너머로는 모래밭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해변가가 자리잡고 있고, 그 해변가로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공을 주고 받는 모습부터 해변가의 모래밭에서 모래를 파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남쪽의 바위가에 머무르는 것이 더 좋았고, 한 동안 그 바위가에 머물렀다-혼자 바닷가 모래밭에서 놀기 곤란한 면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크고 날카로운 바위 위에 올라서서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다가, 두 팔 벌리고, 한쪽 발로 버티며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을 그 때, 누군가 나를 알아본 듯이 나를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낯선 목소리가 아니라,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이임을 알 수 있었다.
  "나리, 거기서 뭐해? 춤 연습하는 거야?"
  나에게 말을 건넨 이의 모습, 그 모습을 보니, 오른쪽에만 팔목 너머까지 이어지는 나팔형 소매가 달린 하늘색 상의와 긴 다리를 거의 드러내는 짤막한 치마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갖추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리 낯설지 않은 이의 모습, 나와 같은 마을에 사는 라레미아(Laremia) 였다. 아무래도 내가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호기심에 우연히 다가가면서 나를 발견한 모양.

  잠시 서로 간에 잘 지냈는지에 대한 안부 인사를 주고 받다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 이후로 나와 라레미아 둘이서 자세 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부터 허리를 굽히거나 한쪽 다리를 들며,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고, 뒤이어 라레미아도 바위 위에서 여러 자세를 취하기를 반복했다.
  이후, 나와 라레미아는 북쪽 해안가로 나아가, 사람들 있는 모래밭과 바다에서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며 서로 이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모래밭에 갔다가, 그 이후에는 바다에 들어가기도 했다. 공놀이도 했었다.
  "나리!!" 그렇게 한참 동안 놀다가 문득 떠오른 바가 있었는지, 라레미아가 나를 거세게 불렀고, 이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에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라레미아가 나를 부른 경위라면...... 한 가지였다, 내가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대략 야해 보였다는 것, 나는 뭔가 재미있는 자세를 취해 보려 한다는 것이 다소 얌전한 성격의 라레미아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 이었으나, 그런 야한 자세는 라레미아도 나 못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 재미있게 놀다가 바닷가 부근의 여관에서 밤을 보내고, 둘째 날에는 해안가를 떠나, 그 근방의 강가를 따라 나 있는 산길을 따라 걸었다. 날이 대략 흐렸던 첫째 날과 달리, 둘째 날에는 밤중에 비가 내려서 그러한지, 날이 무척 맑았고, 그래서 푸른 하늘의 모습을 비추는 강과 초록빛 초목의 모습이 조화된 경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평상시에 그런 경치를 좋아하는 라레미아에게도 만족스러웠던 모양.
  그렇게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도시와 해안가를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는 도시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었으나, 활발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해안이 더 좋았고, 이는 라레미아도 다르지 않았다. 셋째 날에는 오후부터 비가 많이 내리는 관계로 여러모로 아쉬운 여행이 되기도 하였으나, 그럼에도 3 일 모두 나름 즐거운 식시간이 많았던지라 무척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친구와 같이 있어서 더욱 즐겁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