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사당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마라트(Marat) 호수에 대해서는 나름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여름에 바다라면 가을에는 호수이지 않겠는가. 점차 노릇, 불긋해져가는 이파리들과 절정의 계절을 앞두고 풍성해져 가는 억새들의 모습을 맑은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의 색을 담은 호수의 모습과 함께 감상하는 것은 가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는 무척이나 각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기대감을 품으며 아침 일찍 소로에나를 떠나 엘젠 산맥을 향해 나아갔고, 그리 오래지 않아 마라트 호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수의 모습을 사전에 보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그 호수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는 일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활발한 분위기를 가지는 곳은 아닌지라 그 분위기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으나, 남쪽 호반에 이르고 나니 이러한 나의 기대와는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어라? 여기가 이렇게 분주한 곳이었던가......?"
  마라트 호수로는 여러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었으며, 그 중 다수는 호반을 따라 걷고 있었다. 대다수는 마라트 호수에 이른 이들로서, 단순히 호수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온 이들 뿐만이 아니라 인근 산악 지대를 오르기 위해 온 이들도 적지 않게 보이고 있었다.
  "그런가, 여기가 소로에나나 아세라이아와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서......?"
  마라트 호수는 바람의 정령들이 주로 거주하는 구역인 아세라이아 그리고 소로에나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인 외지 구역이었다. 아세라이아나 소로에나에서 시간 부담 없이 여행을 하겠다면 주로 선택하는 곳들 중 하나가 마라트 호수인만큼, 사람들이 가볍게 여행을 하기 위해 방문하려 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들르든, 적게 들르든 간에 정령들이 산이나 호수에 나쁜 짓을 하거나 할 리는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드나드는 정도에 관계 없이 좋은 풍경은 좋은 풍경이고, 그래서 기대는 하지 않았던 조금은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동쪽에서 역 시계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고, 서쪽에서 시계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나는 역 시계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해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두 갈래 길이 있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처음 호수가에 이르면서 상하로 뒤집어진 C 자 모양으로 동쪽 방향에서부터 길이 이어져, C 의 끝 부분에 해당되는 북쪽 건너편에서 길이 막힐 것이라고 호반의 길에 대한 생각을 했었음이 그 이유였다-두 갈래 길이 있고, 호반의 길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처음 호반의 길을 걸으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억새들이 호수와 그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봉우리들 바로 앞에 보이는 길목을 지나게 되었고, 그에 이어 초목 지대 속에 있는 약초들을 주로 취급하는 찻집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찻집에서 쓸 돈이 없었던 탓에 찻집을 실제로 들르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호수를 바라보며 약초와 함께 차를 마시는 풍경을 상상해 보니, 마을의 찻집에서 차를 마실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날 것임은 분명할 것만 같았다.
  그 찻집을 지나친 이후, 한 동안 호반 근처의 산길을 지나다가, 그 산길이 끝날 무렵에는 비탈길을 시작으로 한 목제 다리가 길게 이어진 구역을 걷게 되었다. 그 목제 다리는 그 기반이 수저에 있는 형태가 아닌 거대한 배 여럿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로서, 그 다리를 걷는 동안 마치 배 위에 있는 것처럼 다리의 표면이 천천히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다리 바깥쪽에 호반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였으나, 그 호반이 사람이 걷기 힘들 정도로 좁게 이어지고 있었던 탓에 걷기에는 무리인 감도 있기는 했다.
  그 나무 다리 길을 걷고 있을 무렵,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나와 우연히 동행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나이 지긋하신 수녀님이시고, 다른 이들은 다양한 나이대의 여인들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어떤 이들일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였으나, 그들의 여행에 묘한 방해가 될까봐 이들에 대해 물음을 건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무 다리 건너에는 숲길을 모사한 형태의 길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길의 끝에 길의 시작점이 있었으니, 이것이 호반 산책의 첫 번째 끝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한 바퀴 호반 길을 더 돌면서 처음에 무심결에 지나쳤던 풍경들과 푸른 하늘 그리고 그 하늘 위에서 찬란히 빛을 발하는 태양의 모습에 눈을 두며 여유롭게 걸으려 하였다. 태양의 빛을 발하는 모습이 소정령의 눈에 마치 하늘 위에 떠오른 거대한 십자가의 모습과도 같아 그것이 인상적이었다.

  산책을 몇 번 하다가 그 산책을 마치고서, 나는 잠시 호수 주변의 수풀, 산 일대를 돌아다니다가 집을 향해 날아가려 하였다. 그 전에 나는 이전에 누구인지 궁금하였던 여인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수녀님께서 속해있는 수도원이 운영하고 있는 유아원에서 보육원으로서 일하시는 분들이셨다고 한다. 직접 확인하거나 하지는 않았, 아니 못했고, 이들의 대화, 그리고 이들이 갖고 있었던 안내판에 쓰여진 그들의 소속을 보면서 알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날이 저물고 별들이 하늘 위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