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갈 곳이 없어서 4 일만에 다시 찾아온 엘젠(Elsen) 의 산길은 이미 늦은 가을을 지나, 산악의 그 긴 겨울 나날, 그 첫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을이 끝나가면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노랗게 물들었던 산길의 나뭇가지에는 이미 이파리가 남아있지 않았고, 이파리들을 그 세찬 바람 속에서도 지켜주고 있던 단풍나무들의 이파리들 역시 그 차디찬 바람결에 화려했던 모습이 바래져 있었다.
  주변 일대의 산악은 노란색, 초록색이 그래도 남아있기는 하였으나, 노란색은 낙엽송의 생기 잃은 이파리들이요, 초록색은 소나무, 전나무의 이파리들일 따름으로, 이외의 모든 나무에는 잎이 남아있지 않아 산악의 대부분은 갈색을 띠었다. 소로에나, 아세라이아의 산악 풍경과 마찬가지로 눈이라도 오지 않는 한, 달래기가 힘들어 보이는 쓸쓸한 풍경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며칠 전에 비가 온 덕인지 하늘은 지면 부근까지 선명한 색을 띠고 있을 정도로 맑았으며, 그 위로 하얀 구름들이 여럿 머무르고 있으면서 푸른색과 하얀색의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이 날따라 하늘은 유난히 기묘한 형상들을 푸른 바탕 위로 그려내고 있었다. 하늘이 구름을 통해 묘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 그 날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지만 한 동안 그러한 모습을 보거나 하지는 못했고, 이전까지는 보지를 못한 모습이기도 하였기에 흥미롭게 그 모습을 올려다 보았었다.
  남쪽 하늘에는 기묘한 수풀의 모습을 이루는 띠 구름들이 있었고, 북쪽에 가까운 하늘에는 마치 사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작은 구름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구름은 한 동안 사자의 모습을 유지하다가 점차 그 형상이 비틀어지는 듯하더니 점차 흩어져 가며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더니 잠시 후, 이번에는 그 옆의 구름이 흩어져 가는 구름을 흡수해서는 짐승 위에 뱀의 형상에 가까운 입을 가지는 괴물의 모습을 이루더니, 그 상반신의 형상이 흐트러지면서 역시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져 갔다. 금방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 괴물의 형상은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한편으로는 흥미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왜 괴물의 형상이었을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이전에 내가 본 특이한 구름의 모습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구름의 모습을 떠올려보기 시작하였다. 구름을 그렇게 집중하면서 보거나 한 일이 거의 없었던지라 잘 기억이 나지 않기는 하였으나, 부채, 깃털, 날개의 모습을 지난 가을 초 무렵, 같은 산길에서 본 기억이 있기는 하였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흐린 날이 많았던지라 그렇게 기묘한 구름을 보기는 힘들었고, 구름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무늬의 형상이나 커다란 구름 그리고 이들이 서로 모여가는 모습을 더 많이 보았을 따름.

  길을 가면서 바라보는 강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고, 하늘의 모습은 지난 며칠 전에 비해 더욱 아름다워져서 이를 비추는 강은 더욱 파랗게 보였다. 추워진 날씨 탓으로 강변의 억새풀은 이미 엷게 말라 있었다. 그래도 그 모습이 겨울이 다가오는 모습 같아 묘한 느낌을 주게 하고 있었으나, 산길 다른 한편에서는 여러 풀들이 말라 죽은 모습을 보여 여름 때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죽어가는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의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내년 즈음에는 다시 살아나는 모습, 기대할 수 있을까.'
  그 말라버린 모습을 보면서 내년 봄 즈음에 다시 한 번 올 기회를 마련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내년에는 저 생기를 잃은 초목들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겠지.
  날이 춥고, 또 풍경이 아름답지 못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시기인 탓인지 산길을 찾아오는 이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저지대의 맑은 강가를 걷고, 강물 위에 머무르는 새들의 활발하게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아도 혼자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여유로움 속에서도 차가운 계절을 맞이하는 자연이 보여주는 쓸쓸함을 달래줄 수 있는 무언가의 부재가 그 아쉬움의 근원이었다.
  '이러할 때, 누군가 나와 대화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서 생각난 이가 하나 있었다, 에르시아(Ersia). 그라면 나와 함께 있으면서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떠날 때에는 정작 그를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에르시아를 꼭 데리고 가야 하겠다.'
  그래서 엘젠 산맥의 마을 세르피(Serfie) 에 근접할 즈음에는 늦가을이 끝나갈 무렵의 쓸쓸한 풍경을 달랠 겸, 말 상대가 될 수 있는 에르시아를 데리고 가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 생각을 잊지 않을 수 있다면 다음에 에르시아를 데리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요즘에는 가끔씩 자잘한 기억을 잊을 때도 있는지라 기억하겠다고 해서 기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스럽다.

  세르피에 이르자마자 내가 간 곳은 이전에도 간 적이 있던 작은 가게로서, 그 가게에서 먹은 적이 있던 꽈배기 튀김과 크림빵의 맛을 잊을 수 없었던 것. 실제로 강을 마주보는 산길을 걷고 있으면서 이번에 꽈배기 튀김과 크림빵을 살 때에는 여럿 사서 에르시아나 유네아(Junea) 등에게도 마련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도착할 당시 17 시가 넘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었는지 이미 가게가 일을 하지 않고 있어서 그 점이 아쉽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