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샤드(Lushad) 는 10 월이 막 왔을 시점에서는 아직 가을 분위기는 나지 않고 있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과 공기의 느낌이 가을 분위기를 어느 정도 전해주고 있기는 하였으나, 날이 밝으면 날씨가 더웠고, 여전히 주변 일대는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루샤드로 오면서 기대했던 것은 루샤드 남부에 있는 난도아(Nandoa) 산의 가을 풍경이었으나, 막상 난도아 산을 오르려 하니, 그 산길에서 가을 풍경을 느끼거나 하기는 어려웠다.
  난도아 산은 여러 고대 유물들이 널려 있다고 알려진 루샤드에서도 독보적으로 많은 수의 유적 및 유물들이 널려 있어 '고대 문화의 보고' 라 칭해지는 곳이었다. 실제로 난도아 산의 전경을 알리는 지도를 가만히 보니, 산 곳곳마다 고대의 사당 및 신전의 모습이 보였고, 신상의 모습도 곳곳에 있어서 유적의 모습을 볼 수 있음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었다.
  진입로를 거쳐 산길을 오르다 보니, 갈림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진입로를 기점으로 왼편의 길목은 정상까지 대략 4000 메타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고, 오른편의 길목은 3300 메타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산길인 만큼, 보기보다 오래 걸어야 했음은 분명해 보였으나, 그래도 남은 거리가 더 적은 편이 더 빨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기었고, 그래서 우측의 길목을 택해서 그 길목을 따라 나아가기로 하였다. 게다가 그 길목 너머의 어딘가에는 식수대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 길을 통해 식수를 마실 수 있음에 대한 기대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나아가기를 1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길을 따라 나아간 것을 후회하게 되었으니, 비행 없이는 험난하기 이를데 없는 바위길과 험난한 산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음이 그 이유였다. 게다가 산길 곳곳에 있는 것은 몇몇 옛 가문의 묘지들 뿐, 고대의 유적이나 유물을 찾거나 할 수는 없었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었는데.
  한 동안 그저 길을 걸어가다가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처음 표지판을 보고, 그 이후로 한 동안 표지판을 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표지판에 쓰여진 거리는 이전의 표지판에서 보았던 거리와 겨우 600 메타르 정도만 차이가 났다. 1 시간 남짓을 걸었는데, 그러하니 그 산길에서는 시속 600 메타르로 걸었던 셈으로 그 험한 산길을 오르다가 발이 아파서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평지에서 걸을 때보다 같은 거리를 걸으며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 사실, 같은 지점 간의 거리가 다르고, 더 짧은 길이 있다면 분명 무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는 했는데, 큰 차이도 아니었다는 점도 있어서 그 점을 미처 간과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길로 돌아가서 그 길을 따라 걸어가려 하였으나, 1000 메타르 정도 걷고, 샛길에 있다는 사당의 탑을 찾아 나섰다가 돌아가려 하니, 어느새 16 시가 넘어 있었다. 낮이 짧아진 만큼, 16 시 이후에는 산을 내려가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바로 산을 내려갔다. 산을 내려가니 진입로 부근까지 소요된 시간은 대략 10 분 정도였다. 그 오랜 시간 걸려 올라온 길을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이 10 분이라니, 암만 내려가는 게 더 편해서 그렇다고 해도 허망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괜히 거리만 보고 험한 산길을 걷느라, 시간만 보냈다 싶은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나는 루샤드의 서쪽 부근에 있는 구역인 바렌(Varen) 구역에 이르렀고, 그 구역에서 한 동안 시간을 보냈다. 바렌 구역은 사실 벚나무가 너무도 많은 곳으로서, 봄이 어울리는 곳이기는 하나, 밤을 위해 다리와 수풀이 빛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그것이 또 장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서 바로 관심을 가져서 난도아 산과 더불어 가기로 했던 곳.
  호수는 먼 서쪽 교외까지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 도중에는 사당도 있었다. 사실 시간을 투자하면 걸어갈 수 있기는 하였으나, 바렌 일대를 걷고, 호숫가 일대를 거니는 동안 이미 시각은 19 시에 이르렀고, 날도 많이 어두워진 탓에 도중의 언덕길 나무 다리를 지나간 이후로는 다리 걷기를 포기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암만 그래도 늦은 밤, 추워지는 때까지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호수의 수면에 비친 공원의 온갖 장식이 빛을 발하는 모습에 정말 넋을 잃었었고, 그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너무나 즐거웠다. 산에서는 고행에 비해 큰 보람을 느끼지 않았고, 돌아가는 도중에 지나쳤던 고대 왕의 능묘들을 보며 그것들을 지나치며 감상하는 즐거움을 가지는 편이 더 나았다고 생각하며 후회하고 있었는데, 그 감정을 일시에 녹여 없애는 효과를 그 야경의 감상이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야경의 모습을 보기 위해 오늘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렌 구역의 또 다른 한 곳에는 바렌에서 개최되었던 루샤드 도시 창건 기념제의 개최지가 되었던 루샤드 창건 기념 공원이 있었으며, 그 공원의 한 곳에는 내가 가고파 했던 루샤드 빛의 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대에 있었던 성탑의 모습을 음각화한 듯한 테두리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음이 특징이었던 그 빛의 탑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 그 위로 올라가고픈 생각도 하고 있었으나, 내가 방문했을 시점은 너무 늦은 때였는지, 공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사실 그 기념 공원의 폐장 시각은 18 시로, 그 곳에 올 때는 20 시가 넘었으니, 이미 사람들은 떠나고, 공원은 비워졌을 것임은 분명했을 터. 이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왔음이 실수였다.
  그래도 빛의 탑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라서 멀리서나마 그 탑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바로 그 공원을 떠나기로 하였다. 길 건너편에서는 장터가 펼쳐져 있었으며, 장터 한 곳에는 거리 공연도 펼쳐지고 있어서 잠시 구경하기도 하였다. 이후, 나는 루샤드 중심가의 기차역이 위치한 그 주변 일대로 돌아가려 하였다.

  루샤드 서부의 바렌 구역은 여러모로 머무르기에 좋은 곳이기는 하였으나, 숙박비가 비쌀만한 곳들이 대다수였던지라 그 곳에서 숙박을 하거나 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곳곳에 여관이 있을 것만 같았던 루샤드 기차역 부근으로 돌아가려 하였던 것. 그리고 나는 거리 한 곳에 있는 여관을 발견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바로 숙박을 하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 올 때부터 숙박을 할 때까지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여행이었고, 이틀째 역시 곳곳의 명소를 둘러보며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냈었다. 그야말로 좋은 시간으로 가득한 느낌이 있는 2(3)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