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tan's Ravens-
  우주에는 수많은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각자의 창조신이 존재한다. 실재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창조신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를 기반으로 한 신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설령, 신앙이 변하더라도 그 기반이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 창조신 중에는 평화를 중시하는 자비로운 신이 있는가 하면, 싸움을 강조하고 죽음을 찬미하는 잔혹한 신도 있게 마련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고향에서 받들어지는 신은 잔혹하였다. 잔혹함의 극에 이를 지경이었다. 우리들의 근간이 된 신들의 설화는 태초의 신 보탄(Wotan) 이 태초의 거인을 죽이고 그 몸을 해체하여 세계를 창조하였다는 데에서 시작된다. 보탄은 거인의 몸을 해체하고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빛을 전해주었다. 세계를 창조하는 수단이 잔혹하였음은 세계에 있어서 비극이었다. 그 비극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비참하게 죽었고, 살아남은 일족은 보탄과 그 일족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세계를 창조하였으나, 저주로 인해 평온할 수 없었던 보탄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과 그 일족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불꽃과 얼음의 세계에서부터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에 각지에서 전사들을 불러오기 시작, 그 전사들을 불러오기 위해 인간들의 세상에서 사람들이 무의미한 증오를 하게 만들고, 그 증오로 사람들이 서로 창검과 총탄으로 서로를 피 흘리게 하였다. 하지만 자신은 전쟁에 관여하지 않았다. 자신이 수하로 부리는 죽음의 까마귀들을 불러와 이들의 전쟁에 끼어들게 하고, 병사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렇게 싸움터의 시체에서 불러들인 자들을 보탄은 이후에 있을 전쟁을 위한 도구로 내놓는다는 조건을 제시하면서 까마귀들이 자신의 먹이감으로 소유하도록 하였다. 까마귀들은 시체의 고기를 보면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하지, 다른 이에게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보탄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사람들은 깨달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보탄의 뜻 아래에 죽음에 이르면 명예의 전당에 이를 수 있다고 믿어오며 전쟁터로 나서고, 죽고, 그리고, 까마귀들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후회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간혹 삶과 평화가 주는 고마움을 잊어버리고는 한다. 그리고 신앙, 명예, 신념, 의리를 위해 쉽게 전쟁을 일으키고, 젊은이들을 까마귀들의 저주가 깊이 드리워진 전쟁터로 내몰고는 하였다. 보탄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자비와 용서를 추구해야 하는 신앙을 선택하여, 그 신앙에 의거한 평화를 추구할 수 있었음에도.......
  신앙을 버렸다고 보탄이 악마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보탄은 그 신의 모습으로 이 세계에 계속 살아 있다. 그리고 살육을 불사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추구하려는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에 저주를 내려, 젊은 생명들과 자신까지도 까마귀들의 먹이가 되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은 발할라라는 이름의 묘지에 묻힌 채, 그렇게 잊혀져 간다.

  잔해 및 파편 수거와 물품 처리까지 끝낸 에리사 일행은 다시 에리스로 돌아왔다. 함대가 남기고 간 잔해의 총 중량은 수십 여 킬로톤. 에리사 일행으로는 모든 처리가 버거웠기에 은하 행성 연합군과 행성 연합 내 잔해물 스크랩 업체에 협력을 요청하였고, 연합군과 다수 업체들이 참가한 끝에 6 일만에 물품 수거를 끝낼 수 있었다. 여기서 에리사 일행이 수거한 물품의 총량은 1/5 에 해당되는 4.5 킬로톤. 여기에 업체들이 내놓은 물건들까지 합쳐 총 7 킬로톤의 물품을 그란 젤레바 대는 대량의 수송선에 싣고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일행이 얻은 총 금액은 7 억 6 천만 데나리온. 그리고 기부금으로 절반 가량인 3 억 5 천만 데나리온을 주고, 미사일 등의 탄약 및 장비 구매 금액을 들이면서 4 억 데나리온 가량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서, 아쿠에리아에 위치한 행성 연합군 본부에서 플라즈마 라인과 가장 가까운 에리스에서의 큰 위협을 막아낸 공로를 치하 받고, 또 그에 대한 보상금까지 받기까지 하고 나서야 일행은 8 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에리스에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 행성 에리스, 안타키아 대륙 서부 해안지대 ###
  적도 지대, 서경 58 도에 위치한 작은 대륙 안타키아(Antakja) 의 해안 지대. 빙한 지대가 대부분인 에리스에서도 남북위 60 도 이상이 아닌 곳이라면 여름 기후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다. 온기가 오면, 초록빛 초목이 어느 정도 생기를 되찾는다. 특히, 적도 지대에서는 온대 지역의 여름과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곳에 이른 만큼, 일행은 모두 가벼운 옷차림을 하면서 해안의 호텔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루시아가 더욱 큰 호텔을 마련할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으나, 그 제안을 저스틴과 에리사가 거절하였다. 고급 호텔에 숙박함으로서 생기는 심적 부담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 그리고, 자신은 부유한 생활과 어울리지 않으며, 고급 호텔에 위치한 곳 특유의 분주한 모습에서 편안함을 얻을 수 없다는 저스틴과 셀리나의 이야기도 있었기에, 일행은 비교적 조용한 편인 안타키아에 위치한 보통 수준의 호텔에 머무르게 되었다.
  호텔에 이른 후, 전투와 잔해 수거 작업으로 인하여 피로하였던 에리사는 비로소 마음을 편히 가지면서 해안가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남은 작전 지역이 있음에 대한 심적 부담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휴식을 취하는 동안만큼은 그 부담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 하였다.
  주어진 일주일 간의 시간. 그 첫 날의 에리사는 해안에서 조용히 사색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는 하였다. 때로는 해안을 조용히 걷기도 하였고, 때로는 해안의 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수평선으로 시선을 향하며 바다 앞에 서 있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에리사는 평온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수심이 어린 표정을 조용히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으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Skuld, die Norne-
  "꽃을 가득히 가져왔어, 언니."
  온화하게 내리는 태양 빛으로 밝은 초원의 한 곳. 나는 두 언니와 함께 예언자의 신전이라는 작은 신전에서 살고 있었다. 그 신전에서 나는 두 언니로부터 배움을 받으며 꽃과 풀 그리고 눈과 함께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두 언니는 그에 어울리는 순선한 모습을 보이면서 나를 이끌어가고는 하였다. 두 언니의 본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람들로부터 우르드(Urthr), 그리고 베르단데(Verdanthe) 라 칭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따름이었고, 그들 역시 자신들을 그렇게 칭하고 있었다.
  두 언니는 무녀로서의 역할을 하는 이였다. 한 사람은 존재의 운명을 결정짓는 자, 그리고 한 사람은 존재의 현상을 알리는 자. 그래서인지 두 언니는 항시 하얀색 혹은 푸른색 망토를 하얀 투니카와 함께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였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도 두 언니, 특히 큰 언니는 나를 바르게 인도하려 하였다. 내가 맡게 될 역할이 존재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존재는 미래가 결정되었다고 생각할 때, 불안에 빠지기 쉽다는 말을 하면서 항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여러 번 숙고해야만 한다는 말을 잊지 않고 강조를 하고는 하였다.
  큰 언니는 나의 앞날에 대해 무언가 걱정을 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리고 무녀로서 내가 서서히 각성해 갈 때마다 그 걱정은 점차 분명해져 갔다. 하지만 나는 큰 언니가 무엇으로 인해 걱정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때마다 큰 언니를 위로하면서도 나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는 하였다. 하지만 크나큰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는 하였다.

  상념에 잠긴 에리사를 향해 왼편에서부터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손에 짧은 지팡이를 들고 있는 소녀. 무릎까지 내려가는 긴 감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키가 크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하얀 셔츠와 청재킷, 그리고 타이트한 청바지로 이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는 소녀. 일전에 에리사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세레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였다. 그는 에리사를 발견하고, 그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아차리자마자 그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에리사의 근처에 이른 후에 세레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3 번 정도 불러서 에리사가 자신을 향해 돌아서자, 소녀는 밝은 목소리를 내면서 물었다.
  "여전히 이 추운 곳에 자리잡고 있구나, 더욱 좋은 휴양지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아니, 루시아가 이 곳에서 쉬고 싶다고 말해서."
  그 물음에 에리사가 미소를 띠며 차분한 목소리로 화답하였다. 그리고 여러 나날 동안 힘들게 일하면서 저스틴 등의 일행도 다들 지쳐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이에 밝은 목소리로 폐기된 물건 수거까지 하려니 많이 힘들기는 하였을 듯 싶다고 말하고서 곧바로 그에게 물었다.
  "지금껏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로 답하는 에리사. 하지만 이미 그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추측을 하고 있던 세레나는 아무것도 아닐 리가 없지 않느냐고 물음을 건넨 다음에 그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밝혀달라고 부탁하면서 밝혀준다면 그에 관해 도움도 주겠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알았다고 답하는 에리사. 그리고서 자신이 하고 있던 생각에 관해 간단히 언급을 하였다.
  "옛 일을 떠올리고 있었어."
  "또, 그 일을 떠올리고 있는 거냐." 이에 다소 한심하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는 채, 화답을 하는 세레나. 그리고서 이제는 잊으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에리사는 그래야 함이 옳겠지만, 가끔 전장이었던 곳 근처에 이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기도 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세레나에게는 하지 못한 남은 이야기가 있는데, 혹시 들을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듣고 싶은 생각 있어? 있다면 나에게 그에 대한 말을 해 줘."
  "아니." 이에 세레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답한 후에 일부러 찾아오기까지 하면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리고서 인근에 가게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호텔 근처에 편의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고 답하는 에리사. 그러자 잘 됐다고 말하고서 그 곳으로 가겠음을 밝혔다. 이에 같이 가겠다고 말하는 에리사. 그리고서 가게를 향해 세레나와 동행하였다.

-Skuld, die Walkuere-
  7 세가 되던 어느 날이었다. 구름이 가득해 하얗게 보이는 하늘 아래에서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초원에서 꽃을 보살피면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갑주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큰 언니인 우르드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에르다(Erda) 의 후손으로서 그 사명을 이어가야 한다는 말이 갑주를 입은 무리에게서 들려왔다. 큰 언니는 그 이후,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돌려보냈지만 나의 곁에 이르렀을 때에는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괜찮다고 말한 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정식으로 무녀가 되었으며 미래를 알리는 무녀를 상징하는 검은 망토와 하얀 로브를 수여 받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신전을 떠나야만 했다. 큰 언니를 향한 무언의 협박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결국 그 곳을 떠나 발할라라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동안 큰 언니는 슬피 울면서 나를 배웅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큰 언니에게 걱정하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발할라라는 곳에 머무르면서 '전장의 운명을 주도하는 자' 로서의 수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원하고 있음의 여부에 관계없이, 전장에서 제국 내 세력의 전쟁에 관여, 하나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세력에 속한 병사들의 혼을 발할라로 이끌어오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죽어 가는 모습은 전설에서처럼 영광스럽지도, 찬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집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가족들이, 연인들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평화를 갈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이었기에 그 죽어 가는 모습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의 슬픔과 원망 어린 목소리는 나의 마음에 닿아 그 마음 속에 계속 머무르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류탄 하나만 들고 전장으로 끌려와 죽임을 당하면서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히 잠들고 싶다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난 이후, 나는 그 자리에서 마음의 충격을 받아 한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다.

-Die Rabemaid-
  전투는 다양한 유형을 가지며, 그 유형마다 비참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나마 병사들만 다치고 죽는 상황이라면 이만큼 다행스러운 일도 없다. 더욱 비참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다가 총검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전사도 아니었기에 보탄의 선택을 받을 수 없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헬라(Hela) 라는 시설에 수용되어 보탄을 위한 생체 병기가 배양되는 숙주가 되어야 했다.
  발할라에 머무르는 발키르야는 모두 35 명. 이들은 인간을 병기로 다루려 하는 제국의 정책에 의해 움직이지만, 그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35 명 중에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의 의지를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게다가 그런 희생을 불러오게 하면서도 제국의 지배자들은 나를 비롯한 발키르야들을 마치 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처럼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발키르야들은 발할라를 떠날 수 없었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발키르야들을 전쟁터에 죽음의 저주를 내리는 이들이라 부르며 미워하였다. 그리고 누구도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전쟁터로 내몰린 젊은이들이 발키르야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고 믿고 있었고, 그래서 발키르야들 중 몇 명은 남편을, 아들을 살려내라는 원망 어린 목소리를 듣기까지 하였다.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지만, 결국 모든 책임은 발키르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발키르야를 만났던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음에 이르는 일이 숱하게 일어나면서 더욱 사람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떠나간 사람들이 결국에는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래서 35 명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서로를 자매라 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죽으면 지옥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을 발키르야들은 죽은 이후에도 함께 살아가자고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에리사, 뭔 생각을 그리 하고 있어?"
  편의점에 이를 무렵, 세레나는 에리사의 멍한 얼굴 근처에 오른손, 손바닥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는 에리사. 그리고서 세레나에게 이끌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편의점 안에서 세레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슈납스 한 병을 꺼내고서 에리사에게 가지고 싶은 것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다른 말 없이 탄산음료 병을 하나 드는 에리사. 그리고서 이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돈 계산을 한 이후, 세레나는 음료수 병이 들어있는 봉지를 왼손에 들고 편의점을 나섰다.
  해안에 이른 후,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으면서 슈납스 병의 마개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 따는 세레나. 그리고 반 병 분량의 액체를 바로 들이키고서 몸에 열이 나는 상태로 병을 왼손에 든 채, 바다로 시선을 향하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에리사가 다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이며 물었다.
  "세레나, 그렇게 마셔도 되는 거야?"
  이에 어차피 살만큼 살았는데 생에 무슨 미련이 있어서 술을 조심스레 마셔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하는 세레나. 그리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이전에 슈납스를 잘 들이키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잘 있는지 모르겠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묻는 에리사. 그 물음에 세레나는 한 번 씨익 웃는 표정을 짓더니 다소 밝아진 표정을 지으면서 언급을 하기 시작하였다.
  "뭐하던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은 욥(Job), 그리고 성은 로이퍼(Laeufer) 라 하는 그런 존재이지. 그러니까, 욥 로이퍼야. 뭐하다가 군에 끌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술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마시던 그런 사람이었지. 그 사람이 마시던 게 바로 이 슈납스야. 독한 술이라고 하던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한 괴로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으려고 매일 한 병 정도는 마셨던 것 같아."
  "그렇게 마시면 전투를 행하는데 지장이 생기는 것 아냐?"
  "그러니까, 본래 군에서는 제재를 취하지. 하지만 어느 순간, 그 통제도 무실해지더라고. 전투가 없는 기간에는 한 병 정도는 마실 수 있도록 허가가 된 모양이야. 무엇보다도 식사를 한 이후에 그 술 한 잔을 마시면 속이 풀린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말야."
  그리고서 욥이라는 사람에 대해 경박하지만 유쾌한 사람이었다고 언급하고서 한편으로는 원하지도 않는데 전쟁터로 끌려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았다고 그에 대한 말을 하면서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Schsnaps-
  슈납스를 마시는 병사를 향해 다가가고 있을 무렵이었어, 그 때 그 욥이라는 병사가 나를 바라보더니 천국에서 온 미녀가 아니냐고 묻고서, 자기를 천국으로 데려가라고 말했었지. 그런 그를 겨우 막사 안으로 이끌고 온 이후로 나는 잠시 그 막사에 머무르며 그들과 함께 생활했지. 그들과 같은 군복을 입고서 말야.
  나도 술을 못하는 이는 아닌지라 욥과 그 동료들이 마시는 각종 술을 나도 한 잔 정도는 마셨고, 그들과 함께 막사 내에 어울리기도 했지. 성 관계 같은 것은 안 했어, 다들 성욕이 들끓는 것은 어찌 못하는 듯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다들 심성은 선하였기에 문제될 일은 없었지.
  정말,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즐겁고 유쾌한 삶에 감화를 많이 받았었지. 그리고 그들이라면 군을 떠나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어?"
  "....... 우리 같은 발키르야 혹은 발퀴레들을 만난 이들이 다 그렇지, 죽었어."
  이에 세레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답하였다. 그리고 에리카(Erica) 와 나타샤의 복귀 통보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어서 다른 수 없이 떠나야 했다고 말하고서 몰래 갑주를 챙겨 입고 떠나갔음을 밝혔다. 그 이후, 발퀴레들이 지원하는 쪽의 군사들이 그 거점을 함락시켰을 때 그들의 근황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우울해진 표정을 지으며 자신은 그 때 앞장서지 않았다고 말하고서 후일 그 거점에 이르렀을 때 막사가 파괴되고 그 곳에 있던 병사들이 전원 전사했음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그 병사 역시 죽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리고서 말하였다.
  "내 의지대로 전장에 있을 수 있었다면, 욥의 편이 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자매들과의 인연이 있어서, 또 임무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 거야. 신념의 태만은 죄이겠지만, 그들을 적대하며 서로 죽이는 짓거리만큼은 할 수 없었기에 결국에는 그들의 적이 되고 말았던 것이지. 그 심정을 이제라도 그 사람들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서 슈납스 병의 남은 액체 중 반을 또 들이키고서 차라리 정을 주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서 그들에 대해서는 계속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 이후, 그는 이전에는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있는 한 남성을 만난 적도 있었고, 그는 또 우군이었는데, 어느 전투 중에 그의 전사 통지서가 그 아내를 향해 다가간 적이 있었다는 언급을 하기도 하였다.
  "잊을 수 없어서, 그 기억들을 품고 있는 것이로구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에리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세레나는 그렇다고 말하고서 통치자들은 한 번 저지르면 끝이지만, 자신은 그 광경에 대한 기억을 계속 품으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 후에 그 괴로움은 영혼이 머무르는 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말을 하였다.
  "더불어, 그 친족들의 원한도 덤으로 짊어져야 하지. 여러모로 괴로운 일이야."
  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음을 밝힌 다음에 클레어가 만났던 한 일가에 대한 것이라는 언급을 하고서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수프나 죽으로 연명한 적이 그에게 있었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서 여느 시골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할머니와 손자, 손녀로 이루어진 가족들은 순박하고 또 천진한 사람들이었음을 밝혔다. 그 이후, 에리사가 놀라면서 "설마?" 라고 묻자, 세레나는 예상한 대로, 라고 말하고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클레어가 떠나간 이후, 하필이면 대전차 탄을 절구로 알고 곡식을 빻으려다, 그 탄이 폭발하면서 일가 전체가 몰살 당한 거야. 그 사실은 어쩌다가 나도 알게 됐지만, 클레어만은 모르고 있어. 그러면서 자기는 그 일가는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지."
  그리고서 알려서 좋을 것이 없으니, 알리지 않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하였다. 그 무렵, 저스틴이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으면서 에리사의 오른편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건네었다.
  "에리사, 어디 가 있는가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어서 돌아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리고 에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스틴의 곁에 이르렀을 무렵, 저스틴은 술병을 들고 앉아있는 세레나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그리고서 그에게 물었다.
  "세레나로구나, 그들과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응, 그러다가 잠시 나갈 일이 있어서 에리사와 함께 있었지. 에리사가 옛 생각을 하기에, 말 상대 역할을 조금 하기도 했고. 간만에 만나니까 정말 반갑더라."
  저스틴의 말에 세레나는 바로 화답을 화고서 그에게 물었다.
  "언니, 다른 이들은 무사하지요?"
  이에 저스틴은 그렇다고 답을 한 후에 그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러자 세레나는 다행이라고 말하고서 클레어, 루시아의 모습도 보고 싶은데, 혹시 함께 모여 바다로 갈 일이 생기면 자신도 불러와 줄 것을 요청한 후에 해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 하였다.

  그 이후, 저스틴은 에리사와 동행하며 호텔로 돌아가려 하다가, 에리사에게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였다.
  "물품 수거 중에 네가 만들었다는 목걸이는 셀리나가 잘 가지고 있대, 물건 만드는 손재주는 여전히 뛰어난 것 같다고 셀리나가 칭찬을 많이 했었어."
  이에 에리사는 미소를 띠며 "그랬구나." 라는 말을 건넨 후에 몇 개 더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저스틴은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은 누구에게 줄 것이냐고 묻자, 바로 저스틴에게 시선을 향하며 저스틴에게 주고 싶다는 언급을 하였다. 그리고서 그에게 물었다.
  "왜? 싫어?" 그러자 저스틴은 그렇지 않다고 화답하고서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려는 에리사에게 과거의 일로 침울해 하지말고, 또 그 과거에 연연하지 않도록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말하였다.
  "과거를 반성하고,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이상으로 과거에 집착할 필요는 없잖니."
  그 이후, 저스틴은 온화한 목소리를 내면서 세레나와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에 에리사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고 답하고서 그 중에는 클레어가 만났다는 어느 할머니와 그 손자 및 손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음을 밝히고서 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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