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젠(Elsen) 산맥의 서부에는 큰 뱀의 형상을 한 거대한 호수가 자리잡고 있다. 그 호수를 따라 호수가로는 기나긴 산길이 나 있어서 그 길을 따라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그 호수는 근방에 있는 카이파(Kaipa) 역에서 걸어서 30 분 즈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카이파 역은 엘젠 산맥을 관통하는 제슈푸르(Seespur) 열차가 개통한 이래로 여러 사람들이 그 호수의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제슈푸르 열차를 통해 들르고 있다. 여름이다보니, 이 중에는 가볍게 차려입은 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친구들끼리 같이 여행을 떠난 이들도 있었는지, 내가 앉은 자리 근처에서는 젊은 남녀의 활발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나이 드신 분들 옆에 있어도 좋지만, 그래도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편이 더 낫지, 그들의 활발한 기운을 이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가벼운 옷차림-유난히 짤막한 바지를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였다-을 한 이들의 활발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모습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으면서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때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혼자 여행하는 나에 대해서는 별 생각하지 않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때,
  "저 젊은 애들 중에 힐끔힐끔 너를 보는 애들도 있는 것 같은데."
  라고 말하는 바로 옆, 통로를 향하는 자리에 앉은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로 인해 놀라고 당황하면서 사실인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께서는 사실이라고 말하고서 한참 동안 껄껄 웃으시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여기 있는 애들 중에 이렇게 짧은 치마를 입은 긴 머리카락의 아가씨는 한 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 당시 나의 옷차림은 평상시에 입는 것 그대로였다. 끝자락으로 갈 수록 넓어지는 나팔형 긴 소매가 달려 있는 초록색 상의와 짤막한 초록색 치마. 그리고 허리에는 푸른색 띠를 두르고 있었다. 마을에서 평상시에 입을 때에는 이러한 나의 옷차림에 대해 별 달리 하는 말이 없어-물의 정령들 중에는 이 이상 가볍게 옷을 입고 다니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닐 수 있었지만 기차를 탈 때에는 여타 사람들도 함께 있는 만큼,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치마 안에 짧은 바지라도 입고 올 걸.'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시 내 옷차림을 너무 대충했다는 생각에 후회하기도 하였지만 긴 여행에 지친 이들이 하나둘씩 '의식을 잃어가면서' 그 덕분에 그로 인해 부끄러워지는 일 없이 목적지인 카이파 역에 이를 수 있었다.

  카이파 역에 이른 이후로는 곧바로 뱀처럼 생긴 거대한 호수에 이르러, 호수를 따라 난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이전에도 한 번 들른 적이 있기는 했으나, 다시 들러도 참 좋은 곳인 걸 부인할 수 없었다. 청록색을 띠는 물은 바람에 흔들려 잔잔히 물결치며 투명한 그 결이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있었고, 여기에 강렬한 열기를 품은 태양의 빛이 수면을 비추어 투명한 물결 사이로 새하얀 무늬를 더하고 있었다.
  그 청록빛 물결 위로는 수없이 많은 초록의 무리로 덮인 산들이 호수와 호수가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으면서 호수의 물과 색의 조화를 이루었으며, 그 건너편의 내가 걷고 있는 길에는 여러 초목들이 길가에 서 있어서 청록빛 물결만 보이는 경치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산과 호수 그리고 건너편의 나무까지 보이는 모든 것이 하늘과 길 그리고 길가의 목제 난간을 제하면 모두 초록색이었다. 그야말로 초록색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래, 이런 풍경도 참 좋아.'
  평상시에는 물이 보이는 곳에는 모래밭과 하늘의 모습만 보이는 해안의 모습을 자주 보고는 하였다. 모래밭과 방파제 그리고 하얀 등대를 제하고 나면 모든 것이 푸른색인 그야말로 푸른색 세상. 그 푸른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기는 하나, 평상시에도 자주 보는 것이 아닌 초록빛 세상을 보는 일은 나에게 색다른 경험이 되어 주었다.
  태양의 빛이 강렬해 무척 덥기는 하였으나, 간간히 호수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그 더위를 잊게 해 주기도 하였다. 단순히 걸어가기만 하더라도 바로 옆에 초록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호수와 산 그리고 나무가 있으니, 그 경치를 바라보며 그 자연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 그 호수가였다. 또, 반대편을a 돌아보니 그 반대편에는 호수와 길을 내려다보는 듯이 산이 하나 자리잡고 있는데, 그 위로 너무도 맑은 푸른 하늘과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듯한 구름의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오고 있었다.
  길을 걷기만 해도 좋은 그 길을 따라 10 킬로메타르 가량이나 걸었으니, 그야말로 갈 수 있을만큼 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풍경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기는 있었으니, 마땅히 쉴 만한 곳이 거의 없다시피 했음이 그것이었다. 그늘진 곳,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길 가는 도중에는 거의 발견하거나 하지를 못했었다. 다만, 여행을 마칠 즈음, 상점을 하나 찾아서 그 그늘을 이용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